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미국할랄협회(American Halal Foundation)와 글로벌 통계기관들이 발표한 2024년 세계할랄산업 규모는 무려 2조9300억 달러(약 4070조원)에 달했고 연평균 12.42% 성장을 거듭해서 10년 후인 2034년경에는 9조4500억 달러(약 1경3124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슬림 인구 21억명에 57개 이슬람협력기구(OIC) 회원국을 가진 이슬람 세계의 급속 팽창을 고려하더라도 쉽게 상상이 안 되는 어마어마한 시장 규모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식음료 부문이 67%, 제약이 22%, 화장품이 10% 정도를 차지했다. 글로벌 식품 체인인 맥도널드가 할랄 버거를 출시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 KFC도 영국 전역에 100여 개 '할랄 버거' 전문매장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버거킹, 도미노, P&G, 카르푸 등 다국적기업들이 앞다투어 할랄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터키,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를 선두로 이슬람 국가는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캐나다, 중국, 일본 등도 발 빠르게 할랄산업 진출과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주목할 사항은 향후 15년 내 전 세계 인구 중 약 3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무슬림 고객들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할랄제품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미래형 산업으로 우리 기업이 할랄시장에 남다른 관심과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종교적 할랄과 할랄산업의 새로운 변화
가장 중요한 할랄시장의 특성과 인식은 과정의 투명성은 물론 청정과 영성을 부여한 신뢰 상품의 거래라는 점이다. 현재 유럽이나 심지어 우리나라에서조차 할랄 고기를 파는 정육점 이용 고객들이 무슬림보다 일반인들이 더 많다는 통계는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그 밖에도 바다에서 생산되는 모든 먹거리는 종교적으로는 할랄 음식이기 때문에 자유로이 식용할 수 있으나 연체동물, 비늘 없는 생선, 갑각류 등은 종교적 금기가 아닌 유목사회가 갖는 문화적 혐오 때문에 아랍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다. 물론 돼지고기나 개고기, 육식 동물 등 이슬람에서 식용을 금하고 있는 동물들은 도살 방식에 상관없이 금기시된다.
이처럼 할랄문화의 바탕에는 절제 있는 소비와 생태적 윤리의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친환경, 동물복지라는 새로운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과 상통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랄은 음식이 중심이 되지만 산업 전반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경작(비료), 사료 분야에서 출발해서 도살과 처리 과정, 유통, 포장, 정의로운 거래, 구입자금의 투명성 등과 같은 일련의 '외적-내적' 순환 메커니즘 전체가 할랄의 유효성에 부합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동물 사육 과정에서 소위 행복한 조건에서 길러진 가축이어야 하고 잡는 가축의 연령, 건강 상태, 임신 여부, 개체 수 균형 등을 고려하면서 도살한다. 사료 자체에 할랄이 아닌 동물성 성분이 포함된다든지 제조와 유통 과정에서 이슬람 율법에 위반되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포장과 유통의 할랄 기준도 매우 엄격한데, 돼지고기를 포장했던 기구나 운송했던 차량에 할랄 고기를 실으면 유효성이 사라진다. 의약품과 화장품에도 젤라틴이나 동물성 유지 성분, 알코올 정제 과정이 포함되어 있으면 이슬람 율법을 다루는 할랄검증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섬유나 제화산업도 마찬가지다. 모직이 포함된 섬유라면 어떤 동물의 털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하고, 구두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상점에서 사용하는 돼지털로 된 옷솔 재료, 화학섬유, 알코올 관련 제품, 호르몬과 항생제 첨가물, GMO 제품, 도살된 가축이 울타리 없는 곳에서 방목되었는지 여부 등이 모두 할랄산업의 인증 기준으로 고려된다.
나아가 할랄은 단순히 허용과 금기라는 형식적 이분법 논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를 들면 식품 마트에서 일반 돼지고기와 할랄 양고기가 같이 판매될 수 없다. 판매자가 꼭 무슬림일 필요는 없으나 출입구가 분리되어야 하고 판매자가 서로 교차 근무해서는 안 된다. 할랄과 하람의 구분에서 공간의 영적 오염 여부도 매우 중요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할랄식품들이라 해도 이미 오염된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그 유효성이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앙심이 깊은 무슬림 고객들은 위생용으로 사용되는 알코올 손소독제나 알코올 분무기 청소 같은 행위에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어떤 인삼제조 회사가 인삼 가루의 건조나 소독 과정에서 알코올 정제 과정을 거쳤다는 상품 설명서 때문에 중동 수출이 금지되기도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무엇보다 수쿠크라고 불리는 전반적인 이슬람 금융 시스템에도 할랄 원칙이 작동하는데, 할랄금융의 특징은 자금 흐름의 투명성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육가공, 동물유제품, 알코올, 비할랄 통조림 산업 등에서 유입된 자본이나 금융거래가 할랄 산업 분야로 흘러들어가면 금융 거래 자체가 문제될 수 있다. 그래서 이슬람 은행에는 이를 계도하고 살피는 할랄율법위원회가 상설기구로 설치되어 있다.
소규모 할랄인증은 한국이슬람중앙회(KMF)에서 발급하고, 대규모 인증은 수출 대상 국가의 할랄 인증을 직접 취득해야 한다. 문제는 이슬람 국가의 통일된 할랄인증제도가 부재한 상황이 우리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세계 3대 인증기관인 말레이시아 JAKIM(말레이시아 이슬람 개발부), 인도네시아 BPJPH(할랄제품보장청), 싱가포르 MUIS(싱가포르 이슬람 위원회)를 중심으로 아랍에미리트 MoIAT(첨단기술부), 사우디아라비아 SFDA(사우디 식약청) 및 SHC(사우디 할랄 센터), 터키 TSE(터키 표준 협회) 등이 대표적이다.
K-Food와 할랄식품의 만남과 재창조
최근 들어 한국의 많은 기업들도 할랄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할랄인증을 획득한 상품 수출과 할랄금융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대외무역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구조에서 지구촌 4분의 1 시장인 21억 고객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것은 글로벌 무역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내에도 무슬림 체류자가 20만명 이상 있고, 100만명 넘는 이슬람권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현재 농심, 삼양식품, CJ제일제당, SPC그룹, 팔도, 풀무원, 아모레퍼시픽, 한국콜마 같은 회사들을 필두로 수많은 기업들이 할랄인증 상품들을 수출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이슬람 국가를 대상으로 한 한국 농식품 수출 규모는 2024년 약 11억 달러였으며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2022년 9억4000만 달러에서 크게 성장한 수치다. 할랄인증 기업 수도 2024년 6월 기준 약 370개에 달하고 있다. 이 중 식품 기업이 약 330개, 화장품 기업이 35개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이슬람권에서 열풍처럼 확산되고 있는 K-컬처 인기를 바탕으로 우리 기업들은 라면, 만두, 유제품 등 주력 제품에 대해 할랄인증을 획득하고 현지 맞춤형 제품을 개발하며 적극적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제는 K-푸드에 대한 글로벌 트렌드를 기반으로 한국의 전통음식이 할랄 음식에 가장 잘 부합할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자연 친화적인 전통 밥상과 유기농 양념, 나물, 채소 등에 할랄 쇠고기와 치킨을 조합한다면 최고의 K-할랄 음식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비빔밥, 불고기, 잡채, 김밥, 떡볶이 등에 약간의 종교적 배려만 한다면 모두가 최고의 할랄인기 품목 후보군이다.
할랄산업 육성과 확산에 기여하는 민간기구인 세계할랄포럼(World Halal Forum)에 의하면 앞으로 인류는 새로운 개념의 생활 패턴으로 음식에서도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것은 자연(Natural), 유기농(Organic), 건강(Healthy), 안전(Safe), 공정한 거래(Fair Trade), 생태윤리(Eco-Ethical)라는 개념이 보편화되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정확하게 K-푸드와 할랄의 음식철학과 일치한다. 할랄은 이제 이슬람권 시장 공략 차원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욕구 지향이라는 글로벌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