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성일 "'살인자 리포트',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선택권 주는 작품"

영화 살인자 리포트 배우 정성일 사진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영화 '살인자 리포트' 배우 정성일[사진=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영화 '살인자 리포트'는 연쇄살인을 고백한 정신과 의사와 그를 취재하려는 기자의 밀실 인터뷰로 진행되는 '심리 게임'이다. 배우 정성일은 그 심리전의 중심에 선 인물 살인을 자백하는 의사 '영훈'을 연기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공기를 뒤흔드는 힘을 보여준다.

"대본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영훈은 행동보다도 태도와 분위기로 설명되는 인물이라, 말투 하나, 몸짓 하나까지 고민했죠."

정성일은 이번 작품을 통해 보이지 않는 감정의 결을 연기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한다. 그는 또 한 번 익숙한 얼굴을 낯설게 뒤집으며, 자신만의 스릴러를 완성해냈다.

"'영훈'은 나쁜 놈이죠. 다만 연기 하는 배우 입장으로 (감정) 이입 해야하고 분석해야하니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역할 특성상 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전문성이 드러나기 보다는 기자 '백선주'를 설득하고 이 판을 설계하는지에 대한 치열함이 조금 더 드러나길 바랐습니다." 
영화 살인자 리포트 배우 정성일 사진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영화 '살인자 리포트' 배우 정성일 [사진=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정성일은 영훈을 연기하며 가장 경계했던 지점을 미화라고 단언했다. 연쇄살인범의 행위를 일종의 통쾌함이나 대리만족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순간, 영화가 지닌 질문은 무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끝내 영훈을 다크 히어로로 호명하지 않았다. 대신 끝까지 관객 스스로 선택하도록 여지를 남겼다. 

"영훈이라는 캐릭터가 자칫 미화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크 히어로처럼 비치지 않도록 늘 조심했죠. 보는 분마다 감정이나 기준이 다르니까 영화는 마지막까지도 선택권을 관객에게 던져 놓는 것 같아요."

영화의 대부분이 한정된 공간, 밀실 안에서 벌어지는 만큼 정성일은 리딩 단계부터 "얼마나 열어 두고, 어디까지 헤집고 다닐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인터뷰의 첫 장면 문을 열고 선주를 맞이하는 영훈의 태도 역시 배우 스스로 수많은 가능성을 탐색하며 조율한 결과다.

"사전 리딩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죠. 어떤 걸 표현하고 말고를 떠나서 해보고 싶은 방식들이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선주가 말을 하면 영훈이 살짝 고개를 기울이는데 처음에는 제가 그걸 많이 기울였어요. 방에 들어가면 놀고 싶고, 헤집고 싶잖아요. 그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수 있을까 시도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감독님이 '조금만 줄여볼까' 하시더라고요. 아, 이 사람 쉽지 않네 싶었죠. 그런데 그렇게 말해주는 방식에서 신뢰가 느껴졌어요. 더 넓게 써볼까, 이 공간 안에서 어디까지 열 수 있을까, 그게 좋았죠."
영화 살인자 리포트 배우 정성일 사진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영화 '살인자 리포트' 배우 정성일[사진=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인터뷰가 진행되는 배경은 호텔 스위트룸. 구조적으로 제한된 공간 안에서 오직 대화만으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배우에게도 연출자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정성일은 그 안에서 변화를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밀도라고 말했다.

"어떻게 해도 안 되는 부분은 있어요. 조명이나 배경 같은 시각적인 부분은 감독님이 만들어 주시는 거고, 그런 변화가 있더라도 저와 상대가 만들어내는 밀도가 없으면 공간 안에서 아무리 바꿔도 소용없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연기뿐이에요. 관객들이 이 인물을 보면서 어떤 질문을 떠올릴까, 그런 걸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왜 이렇게 여유롭지?' 같은 궁금증이요. 그 여유가 상대가 들어올 공간이기도 하고, 그런 틈을 통해 관객이 끼어들 수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템포도 일부러 변칙적으로 가져가고, 리듬도 흔들어 봤죠. 그게 어쩌면 관객에게 지루함 대신 긴장을 줄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어요."

정성일은 오랜 무대 경험이 오히려 이번 영화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말한다. 밀실 구조와 정적인 카메라, 제한된 동선 속에서 그가 느낀 건 낯섦보다 익숙함에 가까웠다.

"전혀 다른 느낌이라기보단 익숙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었죠. 무대라는 공간 자체가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이번 촬영도 저에겐 편안했어요. 영화지만 공연에서 볼 수 있는 매력들이 있었고, 공연 같지만 또 영화인 거고요. 동선이나 소품처럼 익숙한 요소들도 있었고, 거기에 카메라라는 장치가 더해지니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는 여지도 생겼죠. 저한텐 너무 재밌고 자유로운 경험이었어요. 익숙한 무대 같은 공간이지만, 영화라는 다른 환경들이 있으니까 더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영화 살인자 리포트 스틸컷 사진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영화 '살인자 리포트' 스틸컷 [사진=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촘촘한 긴장감이 흐르는 1:1 밀착 구조에서 액션과 리액션의 호흡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성일은 "상대 배우에 따라 연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며, 이번 작품에서 조여정과의 호흡이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강조했다.

"저는 상대 배우에 따라 변화가 많이 생기는 편이에요.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제 감정도 더 올라올 수 있고요. 그래서 촬영 전에는 대본을 공연처럼 완전히 외우고 갔어요. 현장에서 조여정 배우와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생긴 게 많았죠. 영훈이라는 캐릭터는 사실 백선주라는 인물 덕분에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만약 다른 배우였다면 전혀 다른 영훈이 나왔을 거예요. 조여정 배우는 베테랑이고 정말 잘하는 배우잖아요. 긴장감도 있었고, 덕분에 저는 그 안에서 그냥 주고받기만 하면 됐어요. 다른 건 신경 쓸 필요가 없었죠. 너무 좋았어요."

극 중에서만큼은 긴장감이 팽팽했지만, 촬영 현장 밖 두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정성일은 조여정과의 작업을 떠올리며 웃었다. 촘촘하게 맞물린 호흡만큼이나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동료였다고 했다.

"둘이 허당이에요. 바보들이에요. 극 중에선 되게 차갑고 치밀해 보이지만, 세트 안에선 진짜 숨도 못 쉴 정도로 치열했거든요. 감독님도 계산적으로 치밀하게 디렉팅하시고, 저희도 감정적으로 치열하게 맞붙었는데… 컷 소리 나고 세트 밖에 나오면 그 숨 막히던 게 확 풀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선 무조건 웃어야 해요. 웃고 환기해야 살 수 있었어요. 거의 개그콘서트, 코미디 빅리그였죠. 누가 누가 더 웃기나 내기하듯이. 조여정 배우가 리액션을 너무 잘 해주니까 감독님이 한번 웃기고 저도 또 웃기고, 그렇게 계속 웃다가 결국 서로 바닥까지 다 드러낸 거 같아요. 서로 가식도 없고 결이 잘 맞았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들이었고, 그걸 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진짜 너무 좋은 친구들이죠. 없어서는 안 될 친구들 같아요."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하도영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후, 정성일의 행보는 단숨에 대중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만큼 차기작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도영 이후에 들어오는 역할들은 다 결이 비슷했어요. 굳이 하기 싫다는 건 아니지만, 자꾸 비슷한 걸 반복하게 되니까 '내가 이걸로 하도영을 넘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죽을 때까지 정장만 입고 살아야 하나 그런 농담도 하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조금 더 밖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포지션이 있으면 선택하려고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훈이라는 캐릭터는 같은 정장을 입더라도 튈 수 있는 방향이 많은 인물이었어요. 그 점이 저한테는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사진에투지엔터테인먼트
[사진=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연기를 오래 할수록 오히려 더 어렵다고 느낀다는 그는 최근 재충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대학로로 향했다. 스스로를 '다시 공부하러 간다'고 말하는 정성일의 태도에는 배우로서의 겸손과 생존에 대한 긴장감이 동시에 배어 있었다.

"요즘 재충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그래서 대학로로 가는 거예요. 연출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요즘 친구들은 어떤 방식으로 연기를 접근하는지… 그런 걸 보러 공부하러 가는 거죠.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 일이 답이 있는 일이 아니니까, 고민 안 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건, 예전에는 내가 볼 수 있는 시점이 한두 개였다면 지금은 경험이 많아지고 보이는 게 많아지면서 선택지가 훨씬 넓어진다는 거예요. 그중에서 어떤 걸 선택하느냐는 결국 현장에서 제로백으로 맞닥뜨리면서 결정하게 되더라고요."

정성일은 이번 작품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형식의 새로움'을 꼽았다. 연극 무대에서 시작한 배우로서 영화 속에 녹아 있는 무대적 호흡이 오히려 자신을 끌어당겼다고 말한다.

"아마도 몰입도 있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게 제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형식이고, 제가 좋아하는 무대의 감각이 섞여 있으니까요. 1:1로 상호작용하고 그 긴장을 오롯이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 분들도 특별한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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