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호 경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헤라클레스의 선택(Heracles’ choice)’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프로디코스(Prodicus)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청년이었던 헤라클레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어느 날 그의 앞에 두 여신이 나타났다. 카키아(Kakia·해악)와 아레테(Aretē·미덕)였다. 카키아가 말했다. “당신에게 가장 쉽게 즉각적으로 즐거움, 쾌락, 이익을 줄 수 있어요. 저를 따르세요.” 그러자 아레테가 말했다. “헤라클레스! 노고, 절제, 돌봄이 없이는 어떤 즐거움과 성과도 얻을 수 없어요. 잘 판단하세요.” 그는 아레테를 선택했다. 그래서 그는 아레테에 따라 자신을 알려고 노력했고, 욕망과 쾌락을 자제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중요한 것을 판단·실행하면서 삶의 진정한 즐거움을 성취할 수 있었다.
카키아는 즉각적 쾌락과 이익을 추구하는 삶을 가리킨다. 반면 아레테는 즉각적 쾌락을 자제하며 자신을 알고 돌보며 미덕을 추구하는 삶을 의미한다. 즉 카키아는 쾌락과 욕구충족의 길을, 아레테는 절제와 자아실현의 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자녀가 어떤 길을 가도록 이끌어 주어야 할까? 당연히 아레테의 길이다. 어느 부모가 자녀가 무절제하게 자신의 욕구만을 즉각적으로 충족하는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모든 부모는 자녀가 메타인지를 발휘하기를 바란다. 자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이성적 판단에 따라 즉각적 욕구를 자제하기를 바라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배우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녀를 카키아의 길이 아니라 아레테의 길로 이끄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은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망각하게 했다. 어린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사주며 카키아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스마트폰은 카키아의 길을 열어준 강력한 도구였다. 이를 두고 애나 렘키(Anna Lemki)는 '도파민네이션(Dopamine Nation) -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2022년, 김두완 역) 머리말에 이렇게 적고 있다. “오늘날 큰 보상을 약속하는 자극들은 양, 종류, 효능 등 모든 측면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했다. 디지털 세상의 등장은 이런 자극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스마트폰은 컴퓨터 세대에게 쉴 새 없이 디지털 도파민을 전달하는 현대판 피하주사침이 되었다.” 이처럼 스마트폰은 지속적인 자극과 보상을 통해 청소년의 뇌 보상 경로에 끊임없이 도파민을 공급한다. 스마트폰에 의해 매개된 쾌락 도파민이 청소년의 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충동 억제, 계획, 자기 통제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한 청소년이 아레테의 길을 가기 어려운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8월 27일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은 청소년을 카키아의 길이 아니라 아레테의 길로 이끄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스마트폰 소지·사용과 관련된 초·중등교육법의 새로운 제20조의5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수업’에서 원칙적 금지이고, 둘째는 ‘교내’에서 제한이며, 셋째는 ‘학칙’에 의한 교내 제한이다. 이는 ‘수업 중 금지’와 ‘학칙에 의한 교내 제한’으로 요약될 수 있다. ‘수업 중 금지’와 관련해서 제20조의5 ①은 '학생은 수업 중에 휴대전화 등 스마트기기를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며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장애가 있거나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 등이 보조기기로 사용하는 경우, 교육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긴급한 상황 대응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는 예외로 했다. ‘학칙에 의한 교내 제한’과 관련하여 제20조의5 ②는 교내에서 스마트기기의 사용·소지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으며 제20조의5 ③은 교내에서 스마트기기의 소지·사용을 제한하는 경우 제한 기준, 방법, 스마트기기의 유형 등을 학칙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듯 초·중등교육법 제20조의5에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카키아의 도구인 스마트폰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진정한 방편이 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 금지보다는 허용을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수업 중 금지’와 관련된 제20조의5 ①은 모든 것을 금지하고 허용하는 것을 규정하는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에 의한 것이다. 수업 중에 스마트기기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지만 세 가지 허용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학칙에 의한 교내 제한’과 관련된 제20조의5 ②는 보편적으로 허용하고 금지하는 것을 규정하는 포지티브 시스템(positive system)을 따르고 있다. '학교의 장과 교원은 학생의 학습권 보호와 교원의 교육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교내 스마트기기의 사용·소지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교내 스마트기기의 사용·소지에 대한 원칙적 허용을 의미한다. 이는 보편적 허용을 전제하고 학칙을 통해 제한하는 포지티브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제20조의5 ①과 ②를 종합해서 보면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의 원칙적 금지와 ‘교내’에서 스마트폰 소지·사용의 보편적 허용이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순은 결국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소지를 허용하는 학칙의 제정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2022 교육과정에서 대부분 교과 수업이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학습 내용과 방법을 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더 그렇다. 제20조의5 ①의 예외인 ‘교육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초·중·고 학교급별 수업에서 다반사로 생길 수밖에 없다면 스마트폰과 디지털기기의 사용은 학칙을 통해 허용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20조의5 ①은 겉으로만 ‘금지’를 내건 네거티브 시스템이고, 제20조의5 ②에 따라 ‘허용’이 정당화되는 포지티브 시스템이 작동하는 셈이다.
이는 자동차 운전이 유용하다고 판단되어 보편적으로 허용하지만 음주 운전을 금지하는 포지티브 시스템 논리를 따르는 것과 같다. 제20조의5의 입안자도 스마트폰의 소지·사용을 유용하다고 판단하여 보편적으로 허용하면서 ‘학칙’을 통해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제20조의5에 반영된 이러한 포지티브 시스템은 일선 학교로 전가되어 있다. 학교는 제20조의5 ③에 따라 보편적 허용을 전제하면서 소지·사용의 제한 사항을 ‘학칙’으로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학교 자치를 존중하는 접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학칙은 민주적으로 잘 정해질까? 학칙도 법에 규정된 절차를 따라야 한다. 초·중등교육법 제8조(학교장의 학칙 제·개정),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학생, 학부모, 교원의 의견 수렴), 제31조·제32조(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 조항에 따라 의견 수렴, 초안 마련, 학교운영위원회(학부모 위원, 교원 위원, 지역 위원으로 구성) 심의, 학교장의 확정 및 공포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적 절차가 있지만 학칙 내용에 대한 최종적 결정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아니라 학교장이 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학교장은 학생을 아레테로 이끌어 주는 학칙을 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학칙을 정할 때는 교육과정을 고려해야 해서 학교의 ‘수업’ 중에도 스마트폰과 스마트기기를 소지·사용할 수 있는 학칙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등 교실에서는 스마트폰과 스마트기기의 사용이 허용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초등 교실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으로 인해 스마트폰 소지·사용이 허용된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초등학생의 교육에 스마트폰은 필요 없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현장의 교사라면 누구나 스마트기기 없는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이 눈을 마주치며 독서, 대화, 활동이 일어날 때 아이의 문해력, 사회성, 신체 건강이 좋아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초등학생의 눈은 디지털기기의 스크린이 아니라 사람의 눈을 향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성장 잠재력이 깨어나고 아레테의 길이 열린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2022 개정 교육과정(초등교육과정)에서 국어, 과학, 수학과 같은 중요한 교과에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는 학습을 반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생각된다.
앞에서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판단해 보면 초·중등교육법의 제20조의5는 우리 자녀를 아레테로 이끌어 주기에는 두 가지 결함을 가지고 있다. 첫째, 제20조의5로는 초등학교에서의 스마트폰 소지·사용의 금지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중·고등학생과 다르게 초등학생은 디지털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향후 중등교육에 필요한 지적 능력, 몸의 건강, 사회성 등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이러한 지적·신체적·정서적 성장을 방해한다. 향후 법 개정에 '초등학교에서 스마트폰 소지·사용을 금지한다. 수업에서 교육 목적의 스마트기기만 허용한다'와 같은 규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제20조의5가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네거티브 시스템을 포함하지만 교내 소지·사용에 대한 포지티브 시스템을 취하면서 허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법 개정은 네거티브 시스템에 따른 일관된 법적 논리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교내 스마트폰 소지·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만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 두 가지 결함을 보완한 사례가 있다. 2022년 개정되어 현재까지 유효한 독일 바이에른주 교육법(BayEUG) 제56조 5항이다. 이 조항은 네거티브 시스템에 따라 일관되게 스마트기기의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예외를 허용한다. 제56조 5항의 1은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학생에게 디지털기기의 사용은 다음의 경우에만 허용된다.' 이 규정의 전제는 ‘금지’이다. 금지에서 출발해서 두 가지 예외를 허용한다. 첫째는 수업이나 학교 행사에서 교육 목적으로 교사의 개별 허락에 따른 경우이고, 둘째는 ‘학교 포럼(Schulforum, 학교운영위원회와 유사)’의 동의를 얻은 학칙에 따라 수업 이외 상황(쉬는 시간, 복도, 운동장 등)에서 허용되는 경우이거나 교사가 개별적으로 허락한 경우이다. 제56조 3에 따라서 초등학교와 특수학교에서 스마트기기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이다. 단지 수업 중에 교사가 허락하면 가능하다. 예외적 허용 규칙을 학교 포럼을 통해 정할 수도 없다. 수업 중 교사가 허락한 외에는 무조건 금지인 셈이다. 이로써 아이는 최소한 초등학교 4년 동안만큼은 스마트폰으로부터 보호된다.
독일 바이에른주 교육법(BayEUG) 제56조 5항은 네거티브 시스템을 따른다. 이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다음의 논리와 같다;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제공은 해악이다. 그래서 그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예외적으로만 허용한다.’ 교내 스마트폰 소지·사용도 이러한 논리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 소지·사용을 자동차 운전처럼 유용하게 보며 보편적으로 허용하는 초·중등교육법 제20조의5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다. 교내 스마트폰 사용 규정은 개인정보의 보호처럼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가는 것이 맞다.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하는 것처럼 카키아의 길로 이끄는 스마트폰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스마트기기 사용을 최소화하고 교육 목적으로만 허용하되, 특히 초등학교에서 수업 외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 향후 입법자들이 헤라클레스의 선택을 따르길 바란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뮌헨대학교(LMU) 정치학 박사 ▷미국 UC 샌디에이고/일본 오사카대학(OU) 객원연구원 ▷경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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