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관세 협상의 돌파구로 ‘한·미 통화스와프’ 제안을 공식화하면서 통화스와프가 협상 테이블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시장과 전문가들은 한·미 무제한 통화스와프 성사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도, 협상 지렛대이자 외환시장 심리 안정을 위한 묘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23일 계약 주체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카운터파트인 한국은행은 “관세 협상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협의 중이며 관계 기관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며 “연준과는 평소와 같이 다양한 채널로 교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스와프는 각국 중앙은행 간 계약이며 한은 국제협력국이 실무를 맡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 3500억 달러(약 485조원) 투자를 요구하자 역으로 한·미 통화스와프를 제안했다. 대규모 대미 투자 과정에서 단기간 달러 유출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가능성에 대비해 외환시장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통화스와프는 미 달러와 한국 원화를 일정 환율로 맞바꾸는 계약으로 외환시장 내 달러 부족 부담을 덜고 시장에 심리적 안정감을 줘 투기적 환율 상승 베팅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일단 한은은 협상에 임하고는 있으나 내부에서는 곤혹스러운 분위기가 읽힌다. 현재 한국의 상황이 연준의 통화스와프 체결 요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준은 일본, 유럽연합(EU), 영국, 스위스 등 주요 기축통화국과만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가령 5500억 달러(약 767조원) 대미 투자를 약속한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연준에 엔화를 담보로 제공하고 달러를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쓸 수 있다.
과거 통화스와프 협상에 관여했던 고위 관료들은 “통상적으로 물밑에서 은밀히 진행되는 통화스와프 카드를 정부가 공개적으로 꺼낸 데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한다. 시장에서도 정부 측 제안을 협상용 지렛대이자 심리적 안정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서학개미 해외 투자 수요로 역내 달러 수급이 빡빡한 상황에서 외환시장 심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측 요구대로 협상이 타결되면 외환시장뿐 아니라 국내 자금시장에도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며 “투자 패키지 협상 불확실성 장기화로 원·달러 환율 불안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주간 거래 종가는 1392.6원으로 1400원 선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무제한이 아니더라도 일정 규모의 스와프를 확보하거나 투자금 중 현금 비중을 조정하는 식으로 협상에 지렛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연간 300억 달러 수준의 통화스와프 한도를 설정하고, 한도 내에서 분산 투자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대안으로 제기된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일부 금액에 대해 통화스와프라도 체결해 ‘방파제 효과’를 만들어야 한다”며 “달러뿐 아니라 위안화·엔화·유로화 등 복수 통화로 통화스와프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것도 심리 안정에 큰 효과를 준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기 채무 대비 충분한 외환보유액를 확보해 시장에 안정 신호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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