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주식을 활용한 교환사채(EB) 발행이 급증하면서 시장 불만도 커지고 있다. 소각 의무화가 예고되자 자금 조달에 나서는 '꼼수'를 부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2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EB 발행 규모는 3조103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1조2583억원) 146.63% 급증한 수치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최근 한 달 동안 넥센, 대교, 덕성 등 14곳이 EB 발행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이 중 9곳이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삼았다. 같은 기간 코스닥시장에서도 유티아이, 인탑스, 상아프론테크 등 28곳이 EB 발행 결정을 공시했다. 이 중 17곳이 자사주를 활용한다고 밝혔다.
EB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발행한 회사의 주식 등으로 교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EB는 쿠폰금리가 0%에 가깝고 신주를 찍는 게 아닌 구주를 활용하기 때문에 대주주 지분율 변동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투자자는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다르게 신주를 발행하지 않기 때문에 락업 없이 매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웰크론의 이번 11회차 EB는 오는 29일 발행되는데 바로 이튿날인 30일부터 교환 청구가 가능하다.
지난해부터 자사주 관련 제도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은 자사주를 활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의무 소각 압박이 세지자 규모가 더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당은 연내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고, 이재명 대통령도 3차 상법 개정 의지를 내비쳤다.
문제는 일반주주 입장에선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가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오버행(대규모 잠재적 매도 물량) 우려,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EB에 활용함으로써 주주 환원 의사가 없다고 비춰져 실망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 시장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앞서 태광산업이 자사주 전량(24.41%)을 활용한 EB 발행을 결의했으나 3개월째 발행하지 못하고 있다.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과 법적 분쟁을 이어가는 등 주주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또 KCC가 자사주 중 3.9%는 소각하고 9.9%는 EB 발행에 쓴다고 밝히자 공시 당일 주가는 11.87% 급락했다. 현재 주가는 지난 17일 기록한 신고가보다 20% 낮다. 불과 8거래일 만이다. 반대로 KCC가 HD한국조선해양 주식을 기초로 EB 발행 계획을 공시한 지난 7월에는 10거래일 간 23.2% 상승해 시장은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KCC 발행주식의 1%대 지분을 보유한 라이프자산운용은 EB를 발행해 차입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KCC의 의도는 시장에 충격만 줬다고 지적했다. 자사주보다 비핵심·저수익 자산을 먼저 활용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주식에 대한 활용 계획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증권가에서도 다른 자산을 활용하지 않고 자사주를 대상으로 EB를 발행한다는 점이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약 3조3000억원의 저수익 자산(삼성물산 주식)을 활용하지 않고, 굳이 4300억원 자사주 EB를 발행한 점은 이례적"이라며 "배당수익률 1.34%에 불과한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하거나 EB 발행 등에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삼성물산 평가가치 할인율을 50%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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