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과 우려 속에서 이채민은 '이헌'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섬세한 몰입과 치밀한 디테일로 캐릭터의 결을 완성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폭군의 셰프'는 방영 내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며 2049 타깃 시청률 부문에서 올해 방송사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최종회 최고 시청률은 20%를 돌파했고 tvN 드라마 중에서도 가구 평균 시청률 1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새 역사를 썼다. 쉽지 않은 출발이었기에 그 결과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예상을 뒤엎은 신예의 등장,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저에게는 종영을 했지만 여운이 짙게 남은 작품이에요. 제게는 소중하고 좋은 분들이 많이 남았고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커요. 아직 인기를 크게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알아봐 주세요' 하면서 돌아다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팬미팅이 잡히고 그런 일정들을 준비하면서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셨구나' 하고 느낄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어요. 의아하기도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행복한 것 같아요."
이채민에게 '폭군의 셰프'는 짧은 준비 기간만큼이나 치열한 도전이었다. 그는 갑작스레 '폭군의 셰프'에 합류, 기존 작품 '바니와 오빠들'을 촬영 중인 상황에서 두 작품을 병행해야 했다.

첫 사극 도전은 이채민에게 또 하나의 큰 과제였다. 그동안 현대극에서 주로 활약해온 그는 '폭군의 셰프'를 통해 처음으로 시대극의 문법 안에 뛰어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 속에서 책임감과 긴장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있었죠. 어떤 장르든 작품 안에서 책임을 맡은 배우로서 늘 책임감이 따르지만 이번 작품은 상황적인 면에서도 부담이 컸어요. 사극을 제대로 소화해본 적이 없어서 기대도 크고 동시에 두려움도 있었어요. 영상 자료도 많이 참고했어요. 특히 요리 장면이 많다 보니까 음식 관련 자료들도 찾아보면서 '이헌'이 요리할 때 어떤 자세로 움직이고 어떻게 음식을 대해야 자연스러울지를 고민했죠. 그렇게 하나씩 쌓아가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채민은 '폭군의 셰프' 속 인물 이헌을 단순히 권력의 상징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는 폭군의 외피 아래 숨겨진 인간적인 결을 세심하게 짚어내며 인물의 다층적인 면을 살렸다.
"미식가라는 점에서는 저랑 공통점이 있었어요. 저도 먹는 걸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거든요. 하지만 '폭군'이라는 단어는 이헌의 본질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헌이 폭군이 된 건 내면에서 나온 잔혹함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과 주변 세력들이 만든 결과라고 봤어요. 저는 오히려 이헌을 굉장히 솔직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상황에 화내는 거니까요. 지영 앞에서는 그 솔직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요. 조금은 어설프고ㅠ숨기지 못하는 행동들이 나오죠. 그런 부분이 저는 오히려 이헌을 사랑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폭군의 외형 안에서도 소년미가 느껴지는 인물, 그게 바로 이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폭군의 셰프'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장면 중 하나는 이헌이 음식을 먹는 순간이었다. 그 미묘한 표정과 리듬은 단순한 연기가 아닌 배우와 감독 그리고 현장의 즉흥적인 감각이 맞물려 만들어진 결과였다.
"대본에 어느 정도 설명은 있었지만 배우의 아이디어와 감독님과의 주고받음이 더 필요했어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 부분이 많았죠. 특히 봉황 신 같은 경우는 김현묵 선배님이 아이디어가 정말 많으셨어요. 선배님이 너무 재밌으셔서 저도 괜히 지고 싶지 않다는 경쟁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이미 1부부터 아이디어를 많이 쏟아내서 고갈되고 있었는데 선배님이 구세주처럼 등장해서 현장 분위기를 살려주셨죠."

'폭군의 셰프' 속 이채민과 임윤아의 호흡은 방송 내내 화제를 모았다. 많은 시청자들이 "둘의 케미가 좋다"고 말했지만 그 중심에는 자연스러운 친밀함이 있었다.
"이 드라마를 찍고 방영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둘의 케미가 좋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선배님이 먼저 다가와 주신 덕분이에요. 그 덕분에 빠른 시일 내에 가까워질 수 있었고, 연기하면서도 호흡을 맞출 때 어려움이 없었어요. 실제로 그런 편안함이 있었기 때문에 화면에서도 더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채민은 첫 사극 '폭군의 셰프'를 통해 새로운 장르의 매력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했다.
"사극은 연기를 할 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순간이 많아요. 그런 부분이 제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사극의 매력이었죠. 의상도 너무 예뻤고요. 왕 역할을 맡았는데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더 재밌게 찍을 수 있었어요. 왕이다 보니 우산도 씌워주시고 그늘에서 연기할 때가 많았거든요. 윤아 선배님은 뙤약볕에서 일하고 아궁이 앞에 있는데 저는 그늘에서 맛있는 걸 먹는 신이 많아서 죄송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게 사극의 매력이자 왕의 매력이었던 것 같아요. 근엄하면서도 동시에 소년미를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니까요."
연기를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입시를 준비하며 연기를 배운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합격했고 이후 빠르게 현장에 적응하며 자신만의 감각을 다듬었다.
"'폭군의 셰프'도 한 달 만에 합류했어요. 빨리 배우는 게 제 장점인 것 같아요. 지식에 대한 흡수력이나 캐치력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연기를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좋은 부분을 캐치해서 제 식으로 재해석하려고 해요. 영상 자료도 많이 참고하면서 각 배우가 가진 매력을 관찰했어요. 그걸 그대로 가져올 순 없지만 제가 쓸 수 있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써먹어보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 연기에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런 걸 배우며 성장하는 게 배우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앞으로 어떤 배우로 성장하고 싶은지를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아직은 어리지만 인생을 더 많이 살아온 어른들을 보면 결국 사람은 변하더라고요.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상황이든 변하지 않으려 해도 변할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또 공인으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사람이 돼야 좋은 에너지를 나눌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야 저도 뿌듯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죠."
'폭군의 셰프'는 그에게 배우로서의 도전이자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제 인생에 기록될 작품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좋은 분들과 함께하는 현장이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정말 행복했던 촬영이었거든요. 감독님께서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잘 될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앞으로도 그런 분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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