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Indonesia Story] 결혼은 신의 뜻, 이혼은 나의 뜻

  • 인도네시아, 최근 이혼율이 증가하는 이유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인도네시아 농촌에서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 주민의 친족 관계를 알아보는 작업이었다. 도시화의 영향이 크지 않은 곳이었기에 대다수 주민은 친·인척 관계로 얽혀 있었고, 결혼하여 이주한 주민 역시 대부분 인근 지역 출신이었다. 일부다처제를 행하는 무슬림 가족은 없었고 이혼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주민의 결혼생활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조사지 주민과 가까워지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장년층 주민의 이혼 경험이었다. 성별과 무관하게 상당수 주민이 이혼을 경험했으며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사례도 드물지 않았다. 안정적인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장년층 부부가 청년기에는 훨씬 역동적인 결혼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장년층 주민의 높은 이혼 빈도는 조사한 마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50~196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인도네시아인에게 이혼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처럼 여겨진 듯했다. 공식 기록 역시 이를 확인해 준다. 당시 15세 이상 성인 1000명당 이혼 건수는 15건 정도로 서양 국가의 3~4건과 비교하여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다. 최근과 비교해도 같은 평가가 가능하다. 2024년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은 국가의 이혼 건수는 1000명당 5건 정도이며, OECD 국가 평균은 2건 안팎, 우리는 1.8건에 불과하다.

1950~1960년대 높은 이혼율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는 중매결혼이었다. 부모가 자녀의 결혼 상대를 결정하는 방식이 보편적으로 이용되면서 결혼, 특히 초혼의 불안정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는 불충분한데, 한국을 비롯해 중매결혼이 주도적이던 지역에서 이혼이 빈번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높은 이혼율을 설명해 줄 더욱 중요한 요인은 이혼에 대해 관대한 사회 분위기였다. 서로 맞지 않는 부부가 억지로 결혼생활을 지속하기보다는 이혼 후 마음에 맞는 배우자를 찾는 편이 낫다고 여겨졌다. 첫 결혼과 달리 재혼 상대는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기에 그만큼 결혼의 안정성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관용적 태도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여성의 가족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상황과도 연결되었다.

이혼에 대한 개방적 태도는 인도네시아 인구의 절대다수가 무슬림임을 고려하면 의외의 상황으로 비칠 수 있다. 교리상 허용되지만 알라가 가장 혐오하는 행위로 이혼이 거론될 만큼 부정적 평가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혼인 관계 유지를 여성의 책무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는 이혼 절차에서 드러난다. 이슬람법에 따르면 남성은 단순히 그 의사를 부인에게 밝히는 것만으로도 이혼이 성립되지만 여성의 이혼 제기는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슬람 교리를 고려하면 인도네시아에서 여성의 이혼에 부정적 낙인이 찍히지 않았던 데는 토착 전통의 영향이 컸다. 초혼 후 여성의 배우자 선택권이 인정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허용되는 환경으로 인해 힘든 결혼생활을 참아가며 살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태도가 형성될 수 있었다.

1990년대에 조사하면서 이혼 사례를 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1970~1980년대를 거치며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이를 촉발한 요인 중 하나는 연애결혼의 확산이었다. 개인이 스스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중매결혼의 불안정성이 일정 부분 완화되었다. 동시에 이혼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서도 변화가 나타나며 부정적 인식이 강화되었다.

1970~1980년대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독재 체제가 심화하던 시기였다. 독재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그는 가부장적 가족 개념을 적극 활용했다. 자신을 국민의 아버지로, 영부인을 어머니로, 국민을 자녀로 규정함으로써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듯 국민 역시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런 구도에서 가족의 해체를 의미하는 이혼은 회피되어야 할 행위였다. 정부는 이혼 억제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이혼하려는 공무원에게 상사의 허락을 받도록 한 지침이었다. 이 같은 정책이 수십 년간 지속되면서 이혼에 대한 분위기는 점차 보수적으로 변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 나타났던 이슬람의 영향력 확대 역시 비슷한 효과를 지녔다. 더 많은 무슬림이 종교적 교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하자 이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가부장적 시각이 확산했다. 서로 맞지 않더라도 섣불리 이혼하기보다는 서로에게 맞추어 가며 혼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특히 여성에게 강하게 요구되었다.

가족의 화합을 중시하는 정부 정책과 종교 교리가 연애결혼의 확산과 결합하여 만든 결과는 이혼율의 급격한 감소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 1000명당 이혼 건수가 1건 이내로 줄어들었고 연간 이혼 건수 역시 10만건을 밑돌았다. 이와 같이 변화한 환경에서 조사했던 나로서는 낮은 이혼율이 당연한 모습이었고 이런 흐름이 지속되리라 전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예상은 201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1000명당 이혼 건수는 최근 1.6건 내외로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하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두 배 정도 상승했다. 이혼 건수를 보면 변화의 추세가 더욱 뚜렷하다. 2000년대 초반 10만건을 조금 웃돌던 연간 이혼 건수는 2023년 50만건에 이르렀다.

이혼율이 꾸준히 증가하자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혼과 관련된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 정부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이혼 증가에 대처할 여러 대책을 모색하였다.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정부는 청년층과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결혼의 안정성을 높일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슬람계에서는 이혼을 최종 결정하는 이슬람 법원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혼을 제기한 부부를 더욱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이혼 절차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이혼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책이 효과를 가져왔는지는 불명확한데, 무엇보다 이혼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적절하게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혼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여성의 이혼 제기 사례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남성보다 여성의 이혼 제기에 훨씬 복잡한 절차가 요구됨을 고려해 보면 이혼에 대한 여성의 태도가 매우 적극적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혼 사유로 가장 많이 지적된 요인은 부부간 차이와 갈등이며, 경제적 문제가 그 뒤를 이었다. 이러한 사유는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학계와 언론에서는 부부간 차이와 갈등이 무엇인지를 여러 각도에서 조망했다. 그중 자주 언급된 측면은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확대였다. 각종 매체를 통해 부부 관계의 이상적 모델이 확산하면서 현실과 괴리를 크게 만들고 이혼율 상승을 견인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부 사이의 로맨틱한 사랑과 감정적 유대에 대한 여성의 기대를 남성이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갈등이 유발된다는 설명이 자주 거론되었다. 유명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이혼 사례가 널리 유포되면서 결혼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해석 역시 제시되었다.

이혼 문제가 자주 논의되자 우리에게 친숙한 상황 역시 회자했다. 그중 하나는 우리의 명절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금식월과 연관된다. 금식월 동안 급격히 감소한 이혼 건수가 이 기간이 지난 후 폭증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고향 방문 중 오래된 지인을 만나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혼 결행 건수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에서는 결혼생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중 일부는 종교적 색채를 띠어서 이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슬람 교리나 부부의 신앙심 강화를 부각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종교 외적인 설명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부부간 소통, 공감과 배려, 솔직함과 정직함, 부모에게서 독립, 공통의 관심사 형성 등과 같은 심리·정서적 요인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이혼 관련 논의를 접하다 보면 인도네시아의 현실이 한국이나 서양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개성과 감성을 중시하고, 전통적 규범이나 공동체의 압력보다 개인의 선택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이혼에 대한 담론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의 이혼율 증가를 1950~1960년대로 단순 회귀하는 것으로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 겉으로는 유사한 점도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화와 다원화라는 흐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여성의 목소리이다. 이들의 기대와 욕망, 행복 추구, 불안과 좌절이 이혼율 증가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의 영향력이 강하게 유지되는 인도네시아 사회에서도 전 지구적 가치의 확산에 따라 여성의 자율성과 자기 결정권이 사회 변화의 주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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