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양'영'화] 대필작가·갑질·공산당 비판까지…'왕가위 스캔들' 일파만파

  • 드라마 '번화' 제작진 '대필·착취' 의혹에서 출발

  • "코로나 봉쇄…탐욕스런 일당제 국가에서나 가능"

  • 중국인 '노예근성' 비하에…차갑게 돌아선 여론

  • 정치적 '레드라인' 넘었나…'왕가위 보이콧' 주장도

왕자웨이 감독 사진엑스구트위터 WongKarWaiFans
왕자웨이 감독 [사진=엑스(구트위터) @WongKarWaiFans]

"중국의 코로나 봉쇄 정책은 탐욕스런 일당제 국가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장,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이 최근 '대필 작가', '제작 스태프 갑질' 논란에 이어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왕 감독을 둘러싼 논란은 2023년 중국 국영중앙(CC)TV에서 방영한 30부작 드라마 '번화(繁花)' 제작과정에서 시작됐다. 번화는 왕 감독이 처음 제작한 TV 드라마로 중국에서 대박을 터뜨렸으며, 올해 7월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됐다. 

당시 번화 제작 과정에 참여했던 작가 구얼(본명 청쥔녠)이 SNS를 통해 자신이 사실상 '대필작가'였다고 폭로한 것. 그는 자신이 드라마 캐릭터를 개발하고 스토리 라인을 짜는 등 주요 작가로 참여했음에도 드라마 엔딩크레딧에 자신이 '작가'가 아닌 '초벌편집자'로 표기됐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번화의 메인 작가는 중국에서 ‘유금세월’, ‘아적전반생’ 등 히트 드라마 제조기로 유명한 친원(秦雯)이다.  구얼은 자신이 만든 초안 시나리오를 친원은 '몇 가지 수정' 후 자신의 작품이라고 감쪽같이 속였다고 폭로했다.

9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구얼의 폭로전은 한 달 넘게 계속 이어졌다. 그의 중국내 위챗 계정은 이미 막혔고, 현재는 중국을 떠나 싱가포르에 머물며 새 SNS 계정을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얼은 자신이 월급 3000위안(약 60만원)의 '열정페이'로 3년간 일했다며 메인작가인 친원이 회당 30만 위안(약 6000만원) 고료를 받은 것과 비교해 자신이 사실상 노동을 착취당했다고 고발했다. 본업 외에 왕 감독과 친원의 야식을 시켜서 대령하고, 술상무를 하는 등 각종 잡일까지 떠맡으며 ‘갑질’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실제 구얼은 온라인에 왕 감독이 '갑질'을 하고 친원과 여러 배우들을 뒷담화하고, 왕 감독의 여러 사생활을 담은 녹취파일까지 줄줄이 공개하며 증거로 내세웠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왕자웨이 감독에 대한 여론의 비판은 거셌지만, 그래도 번화 제작진 내부 갈등 정도로 여겨졌고, 구얼의 주장의 신뢰성에도 여론이 의문이 제기됐던 게 사실이다. 이번 스캔들로 왕 감독의 예술성까지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왕 감독도 여론의 비판 속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왕자웨이 감독은 화양연화·중경삼림·해피투게더 같은 작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중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예로부터 촬영기간 함께 일하기가 엄청 힘들기로 ‘악명’이 자자했다. 왕 감독이 배우와 제작진에 가혹하다는 것도 이미 업계엔 공공연하게 알려진 비밀이었다. 그의 괴팍스러운 성격은 천재 영화감독의 완벽주의 편집증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구얼이 8일 새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 왕자웨이 감독을 둘러싼 논란은 더 이상 연예계 스캔들이 아닌 정치적인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해당 녹음파일에 왕 감독이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고 중국인을 비하하는 등의 발언이 담겼기 때문이다.

왕 감독은 중국의 과거 코로나 봉쇄 정책을 "'탐욕스런 일당제 국가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 봉쇄 기간 중국인들이 창문을 열고 서로를 향해 응원하는 모습을 "노예 근성"이라고 경멸했다.

왕 감독이 ‘정신적 일본인’을 뜻하는 '징르(精日)'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도 문제가 됐다. 징르는 일본 군국주의를 숭배하고 중국 민족을 폄하하는 중국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녹음파일에서는 드라마 공동연출을 맡은 리솽 감독이 1999년 처음 일본 여행을 다녀온 이후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에 매료됐으며, 사무라이 갑옷과 검을 구매하는 데 19만 위안을 썼다고 털어놓는다. 이에 왕 감독이 “중국 장군복을 사서 일본 사무라이 갑옷과 칼 옆에 같이 전시해 놓아야 나중에 들키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조언한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번화 제작진은 성명을 통해 "구얼이 온라인에 검증되지 않은 불법 영상을 대량 유포해 온라인 여론을 뒤흔들고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며 "당사자 동의없이 영상을 불법 유포한 것으로, 영상은 부정확한 내용, 고의적 편집, 악의적 해석 등이 가득하다.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도 반박했다.

하지만 중국내 여론은 이미 차갑게 돌아선 분위기다. 중국인들은 지난 3년간 힘들게 겪은 코로나 팬데믹의 아픈 경험을 왕 감독이 비하한 것에 분개하며 그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업계에서는 비록 녹음의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미 왕 감독에 대한 누리꾼의 환상은 산산조각이 났고, 중국 영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부조리한 문화가 사실상 까발려졌다고 보고 있다.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왕 감독의 코로나 팬데믹 관련 발언은 사실상 연예계 내부 문제가 아닌, (정치적) '레드라인'을 넘은 문제로, 녹음 내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왕자웨이 감독이 중국 시장에서 퇴출돼야 비로소 이 폭풍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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