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최고법원의 구성과 작동에 관한 갈등이 정치권으로 비화한다. 정부·여당은 차제에 대법원의 사건 적체를 해소하기 위하여 대법관의 대폭 증원과 더불어 법원의 재판에 불복하는 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제기를 허용하자고 주장한다. 대법원은 이 두 가지 사안 모두 반대한다. 특히 재판소원은 사실상 4심제를 도입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는 결과적으로 대법원이 최고법원임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한다”(제101조 제2항)는 헌법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반면에 헌법재판소는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국민의 기본권이 법원의 재판으로 인하여 침해되었을 경우에는 이를 허용하는 헌법심이라고 반박한다. 이 같은 논쟁의 저변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불신과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김상환 헌재소장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비롯된 사안이 아니길 바란다. 차제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관계를 비롯해 재판헌법소원에 대한 분명한 정리가 필요하다.
절대다수 헌법학자들은 재판소원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 저변의 논리는 간단하다. 헌법에서 헌법소원 제도를 도입하면서 헌법소원의 대상을 제한하지 않는다(헌법 제111조 제2호). 그런데 헌법재판소법에서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 침해된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제68조 제1항, 권리구제형 헌법소원). 이는 헌법의 취지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 왜 재판소원을 제외하였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이 없다. 정부·국회의 공권력 작용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데 법원의 재판만 유독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되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재판소원에 대한 헌법소원을 부인하는 헌재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재판소원의 허용 여부에 관하여 헌재와 법원의 판례가 상이한 문제가 발생한다. 헌재는 법원의 재판이 헌재 판례와 어긋날 때에 한해서 재판소원이 가능하다는 다소 모호한 절충적 입장을 취하여왔다. 즉 원칙적으로 재판소원 금지가 위헌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결정(헌재 1995.11.30. 94헌바40등)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당해 법규범이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유효한 규정이라고 판시하였다(대판 1996.4.9. 95누11405). 이에 헌재는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결정은 단순한 법률해석이 아니라 위헌결정의 일종이며, 법원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하기 때문에 위헌결정된 법률을 적용한 법원의 재판도 이 경우에는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헌재 1997.12.24. 96헌마172등). 이는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의 기속력을 담보하기 위하여 예외적으로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한 것이다(헌재 1997.12.24. 96헌마172등). 더 나아가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 부분(헌재 2016.4.28. 2016헌마33) 및 재판소원 금지조항의 적용 영역에서 ‘법원의 재판’ 가운데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헌재 2022.6.30. 2014헌마760등). 그런데 2025년 출범한 김상환 헌재에서 갑자기 재판헌법소원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강조한다. 이는 기존의 헌재 입장과 배치된다. 그렇다면 헌재는 왜 기존 판례와 배치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헌재 소장이나 사무처장의 개인적인 입장인지 아니면 헌재의 공식적인 입장인지도 밝혀야 한다.
반면에 대법원은 재판소원을 도입하면 4심제 소송 지옥이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반대한다. 실제로 대한민국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도 수년째 소송에 발목이 잡혀 있다. 삼양라면은 우지파동으로 대법원의 무죄 판결까지 9년간 재판받느라 회사가 망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재벌과 대기업도 그러할진대 일반 시민의 소송 지옥은 필설로 형언하기 어렵다. 재판하다 패가망신하기 일쑤다. 하지만 4심제라는 단정적인 표현은 적절한지 의문이다. 헌재 재판은 구체적 사실관계를 따지는 재판이 아니라 오로지 위헌·합헌 여부만을 따지는 헌법재판이다. 그런 점에서 대법원이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이듯이, 헌재는 헌법심이다.
똑같은 사법기관이지만 법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한다. 법관은 재판에 적용할 법률이 합헌이라는 전제 아래 재판한다. 법관이 해석·적용하는 법률이 위헌의 의심이 있으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면 된다. 하지만 법관이 위헌의 의심이 없다고 판단하면 재판은 계속되고,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한 당사자는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된다(헌재법 제68조 제2항, 위헌심사형 헌법소원). 이 경우도 따지고 보면 사실상 4심일 수 있다. 즉 1심·2심을 거쳐 대법원이 적용하여 재판할 법률이 위헌이라고 당사자가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는데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헌재에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이 아니라 헌법재판소법에서 재판소원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 자체는 헌법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재판소원은 인정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무제한적으로 재판소원을 인정하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의 우려대로 4심제 소송 지옥이 연출될 수 있다. 여기에 재판소원을 인정하면서도 4심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재판소원 남용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그것은 오로지 재판소원의 본질에 비추어 본 헌법의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는 재판소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법원의 재판이 인권보호라는 헌법정신이 제대로 반영되어야 한다. 만약 법원의 재판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 즉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재판소원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즉 재판소원은 원칙이 아니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만약 이를 폭 넓게 인정한다면 대법원의 우려대로 소송 지옥으로 빠질 것이고, 지금과 같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법원과 헌재의 법률해석으로 야기되는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
자칫 재판소원의 인정으로 헌재가 대법원의 상급법원으로 작동할 우려도 불식되어야 한다. 대법원이 우려하는 것도 재판소원의 인정으로 자칫 헌재가 대법원보다 우위에 서는 유일한 최고법원이 될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실제로 1949년 제정된 독일(서독) 기본법에서는 연방헌법재판소와 5개 연방법원을 병렬적으로 설치하였지만 그 운용 과정에서 헌재가 실질적인 최고법원이 되었다. 또한 독일은 재판소원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연방헌재가 2개 부로 나뉘어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소원이 넘쳐나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재판소원을 인정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헌법상 사법체계에서 대법원과 헌재는 다 같이 최고사법기관이다. 그렇다면 헌재 출범 이후 지금까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한 재판소원에 대한 헌재의 결정 판례에 더하여 재판소원이 가능한 경우를 헌법재판소법으로 명확하게 규정한다면 이와 같은 논쟁은 불식시킬 수 있다. 실제로 재판소원을 인용한 헌재 판례는 지난 37년간 5건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헌재와 대법원의 상충된 판례로 인하여 국민의 권리구제 사각지대가 한 치도 남아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전제 문제로서 불가피하게 법원의 최종적인 법률해석에 앞서 법령을 해석하거나 그 적용 범위를 판단하였을 때 법원, 특히 대법원이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구속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대법원은 구체적 사건에서 헌법과 법률의 해석·적용 권한은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으로서 그 권한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있으므로 헌법재판소의 법률해석에 대법원이나 각급 법원이 구속되지 아니한다는 입장이다(대판 2009.2.12. 2004두10289). 이에 따라 대법원은 위헌정당해산결정에 따른 법적 효과와 관련하여 독자적으로 판단하였다. 즉 헌재의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정당이 강제해산되면 해당 정당 소속 국회의원은 자격을 상실한다(헌재 2014.12.19. 2013헌다1). 헌재의 결정에 따라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그런데 지방의회 의원은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비례대표의원의 자격을 상실하게 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비례대표의원도 의원직을 유지한다고 판시하였다(대판 2021.4.29. 2016두39825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 퇴직처분 취소 등). 차제에 이와 같은 최고법원의 상치된 판결도 재발하지 않도록 입법적 정비가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을 중심으로 일반 대법원 이외에 독립적인 헌법재판소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우리나라도 제3공화국 헌법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기구를 따로 설치하여왔다. 이제 헌법재판소는 현행헌법에서 실질적인 헌법보장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헌법재판소를 두고 있는 나라에서 전 세계적으로 법관들만 재판관으로 임명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헌재 재판관 전원이 고위 법관 출신이다. 오히려 1988년 초대 재판관들은 변호사·국회의원·법관·검사 등 다양한 법조인들로 구성되었다. 지금과 같이 법관들만으로 구성되는 헌재라면 굳이 헌재를 따로 둘 필요도 없다. 헌재가 고위 법관들의 안식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를 따로 설치하지 않은 미국·일본에서도 최고법원에는 법학자·외교관 등이 등용된다. 게다가 어려울 때 리더십을 발휘하여야 할 헌재소장은 수시로 공석일 뿐만 아니라 1년짜리 소장이 속출한다. 박근혜·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도 소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권한대행 체제로 작동하였다. 이는 헌재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한 단면을 보여준다.
차제에 재판소원을 받아들이면서 헌재 구성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대법원도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함께 공론의 창에 참여하여 과연 무엇이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더욱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길인지를 함께 고민할 때이다. 법원은 구체적 사건에 관한 분쟁 해결과 권리 구제에, 헌법재판소는 헌법질서의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각기 그 본질적인 기능이 부여되어 있다. 법원과 헌재의 조화로운 작동만이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 헌법재판에 있어서 변호사 강제주의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필자 주요 이력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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