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왕사남' 임은정 대표 "'젠지 세대'의 N차 관람…극장의 미래 봤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 사진쇼박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 [사진=쇼박스]
2년 만에 나온 천만 한국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기세가 이어지고 있다. 개봉 후 입소문을 타고 관객을 끌어모은 이 작품은 천만 관객 돌파 이후에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13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정통 사극으로는 이례적인 흥행 흐름이다. 그 중심에는 신생 영화사 온다웍스를 이끄는 임은정 대표가 있다.

"장항준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제가 설득해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개봉 첫날에는 '내가 사기꾼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어요. 제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어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많은 분께 정말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온다웍스는 임 대표가 오래 품어온 고민 끝에 만든 회사다. 좋은 창작자를 알아보고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매력을 느꼈지만 회사 안에서는 끝까지 책임지기 어려운 순간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스스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세우게 됐다는 설명이다.

"저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산업을 공부하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건 누가 뭘 잘하는지 알아보는 일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프로듀서라는 포지션에 주목하게 됐죠. CJ ENM에서 일할 때도 작가님들의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는 게 가장 큰 목표였는데 회사 안에서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스스로 약속을 지키는 쪽으로 가야 앞으로도 계속 영화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에는 업계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모두가 만류할 만큼 불확실성이 컸지만, 오히려 그 시기에 회사를 차려야겠다는 결심이 더 분명해졌다고 했다. 퇴사 후 포르투갈 여행에서 만난 '온다'는 그의 꿈을 '운명'처럼 만들어줬다. 

"당시 업계 상황이 좋지 않아서 주변에서는 모두 퇴사를 말렸어요.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데 뭘 믿고 나가려고 하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저 역시 생계가 걸린 문제라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퇴사했고, 한 달 정도 포르투갈로 여행을 떠났어요. 제가 서핑을 참 좋아하는데 서퍼들이 파도가 몰아치면 설레 하면서 '온다, 온다' 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참 귀엽게 느껴졌고, 언젠가 회사를 만든다면 '온다'라는 이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포르투갈에서 처음 방문한 서핑숍 이름이 정말 '온다'였어요. 깜짝 놀라 뜻을 물어보니 '파도'라는 의미라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아, 이건 운명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202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같이 온다웍스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 사진쇼박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 [사진=쇼박스]

'왕과 사는 남자'는 회사 설립 전부터 품고 있던 프로젝트였다. 임 대표는 원작 없는 오리지널 사극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에 애정이 컸고 역사적 사건 자체보다 그 곁에 있던 개인의 시선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작품은 제가 CJ ENM에 있을 때부터 기획했던 작품이에요.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작품으로, 꼭 의미 있게 만들어보고 싶었던 아이템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사극 마니아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큰 역사적 사건 옆에 있던 한 개인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가 '타인의 삶', '킹스 스피치'인데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한국 사극에서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만약 엄흥도가 단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다른 마음을 품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그 아이디어에서 기획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작품은 팬데믹과 함께 한 차례 멈춰 섰다. 제작이 중단되면서 다른 길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도 있었지만, 임 대표는 끝내 이 프로젝트를 놓지 않았다고 했다.

"황성구 작가님께 시나리오 집필을 부탁드리게 됐고 2020년 초에 초고가 나왔어요. 그러나 팬데믹 시기였고 몇몇 이유로 제작이 중단됐죠. 황 작가님에게 시나리오 권리를 드리고 다른 회사에서 기회가 된다면 진행하시라고 했어요. 하지만 황 작가님은 제 제안으로 시작한 시나리오라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신 것 같았어요. 그러면 제가 5년 안에 (제작) 타이밍을 보겠다고 말씀드렸죠. 이후 제가 제작사를 차려 독립을 했고, 창립작으로 이 작품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장항준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 이유도 분명했다. 그는 이 작품의 핵심을 사건보다 인물의 감정과 시선에 있다고 봤고, 그 정서를 가장 잘 살릴 연출자로 장 감독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핵심은 결국 인물에 대한 시선과 주제 의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엄흥도의 시선에서 바라본 단종, 그리고 단종이 그 상황 속에서 겪는 감정이 어떻게 교차하는지가 중요했어요. 그래서 두 인물의 정서와 감정을 가장 따뜻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연출자가 누구일지를 고민했고, 그 지점에서 장항준 감독이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리바운드'에서 느껴진 따뜻한 정서도 큰 계기였고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 사진쇼박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 [사진=쇼박스]

물론 신생 제작사가 사극을 추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제작비 부담이 큰 데다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험 많은 제작사와 투자사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여러 차례 수정 끝에 지금의 형태에 가까워졌다고 했다.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님께 장항준 감독님 연출을 전제로 공동 제작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처음에는 상업적으로 리스크가 있다고 보셨죠. 그래서 세 차례에 걸쳐 수정본을 보여드렸고 그 과정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아 합류하게 됐습니다. 또 쇼박스 쪽에서도 제 프로젝트에 귀를 기울여주셨고 관객들이 자극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는 판단에도 공감해주셨어요."

개봉 이후에는 젠지 세대의 N차 관람이 눈에 띄었다. 임 대표 역시 예상 밖이지만 반가운 반응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바랐지만 지금처럼 강한 흐름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극장에 대한 그리움이 작용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근 여러 영화가 극장 관람의 재미를 다시 느끼게 해주고 있어요. 이 작품 역시 관객들이 극장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작품입니다. 특히 영화를 본 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능한 영화죠.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함께 웃고 반응하는 경험 자체가 극장 관람의 매력을 다시 느끼게 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무엇보다 놀랍게 여긴 건 젠지 세대의 N차 관람이었어요. 기존에도 마니아층의 반복 관람은 자주 봐왔지만 중고등학생 관객들의 N차 관람은 정말 반가웠습니다. 극장을 찾을 다음 세대가 과연 존재할까 고민하던 제 입장에서 이런 현상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박지훈을 언급했다. 단종이라는 인물을 현재의 관객에게 새롭게 연결해주는 데 박지훈의 존재감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봤다.

"결과적으로는 박지훈 배우와 단종 캐릭터의 결합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약한 영웅' 제작사 대표님께서 박지훈 배우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인상 깊게 보고 있었어요. 캐스팅 단계부터 오래 기억에 남는 단종이 될 수 있겠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 사진쇼박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 [사진=쇼박스]

2년 만에 나온 천만 한국 영화이자 역주행 흥행작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극장을 함께 즐기는 경험이 다시 관객에게 통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젠지 세대의 반복 관람은 극장의 다음 관객을 생각하게 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극장에 대한 그리움이 작용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작품 역시 관객들이 극장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작품입니다. 특히 영화를 본 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능한 영화죠. 제가 무엇보다 놀랍게 여긴 건 젠지 세대의 N차 관람이었어요. 기존에도 마니아층의 반복 관람은 자주 봐왔지만, 중고등학생 관객들의 N차 관람은 정말 반가웠습니다."

차기작에 대해서는 아직 준비 중인 작품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공개 가능한 범위 안에서 몇몇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당분간은 시대극과 현대극을 오가며 기획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일단 영화 아이템 부자입니다. 제가 '죄 많은 소녀' 김의석 감독님과는 오랜 우정을 쌓고 있는데, 그분과 함께 경성을 배경으로 열차 내에서 벌어지는 장르물을 준비 중입니다. 또 하나는 '올빼미' 안태진 감독님과 조선 시대 국경지대에서 벌어지는 액션물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영화들은 공교롭게도 시대극이네요. 기획 중인 시리즈들은 거의 다 현대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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