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와 중국 정부 주도로 인공지능(AI)·반도체 시장 패권을 쥐기 위한 무제한적 투자가 이뤄지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금산분리 등 40년 넘은 낡은 규제에 발목 잡혀 신음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대통령실 차원에서 규제 완화를 추진하려는 가운데 관련 정부 부처는 규제 유지·완화 중 확실한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24일 모건스탠리 등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메타·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는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올해부터 2028년까지 2조9000억 달러(약 4300조원) 안팎을 투자할 것으로 예측된다.
글로벌 시가총액 선두권을 형성 중인 빅테크도 모든 비용을 자체 자금으로 충당하는 것은 어렵다. 빅테크 직접 투자 규모는 1조4000억 달러(약 2100억원) 정도로 전체 중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남은 1조5000억 달러(약 2200조원)는 월가 투자자들이 사모대출과 사모펀드, 회사채를 통해 조달한다. 중국도 정부와 민간 기업이 협력해 2030년까지 약 2000조원을 투자하며 월가·빅테크 공세에 맞대응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반도체 주도권을 가진 한국은 AI가 촉발한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코스피 4000에 진입하는 등 낙수 효과를 제대로 누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평택·용인에 수백조 원대 투자를 단행하며 고용 창출과 내수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6일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 자리에서 "2028년까지 예정된 128조원 상당 국내 투자를 차질 없이 이행해 국내 일자리 창출에 적극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SK그룹은 국내 최대 반도체 산단이 될 용인 클러스터에만 600조원을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최근 완공한 청주 M15X팹 6개 규모인 메가 팹을 총 4기 구축하는 게 목표다. 업계에선 메가 팹 1기당 1만4000명에서 2만명에 이르는 직간접적인 고용 효과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천문학적인 금액은 국내 기업들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글로벌 빅테크처럼 외부 자본을 유치해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문제는 금산분리와 지주사 요건 등 낡은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일반지주사가 금융 계열사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금지하고,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메가 팹 건설 등 AI 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인프라 구축을 가로막을 수 있다. 실제 용인 클러스터는 빅테크·월가 방식처럼 SK하이닉스와 글로벌 투자자가 공동으로 출자한 자회사를 통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는 게 효과적이지만 현행 규정이 유지되면 SK그룹 지주사(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는 금산분리·증손회사 지분 규제 등으로 인해 이 방안을 실행할 수 없다.
규제 완화를 놓고 정치권과 정부 혹은 정부 내 부처 간 이견도 감지된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은 금산분리 규제가 미래 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끼치는 걸 막기 위해 '전향적 검토' 기조를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독점 폐해를 방지할 안전장치가 마련되는 범위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반도체 설비 투자 등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산업과 금융 간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로 신산업 분야 투자를 우선 지원하겠지만 그래도 자금이 부족하다면 금산분리의 근본적인 정신은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150조원 규모 펀드로는 AI 시대 대응 투자에 역부족이다.
규제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 주병기 위원장은 금산분리 완화에 명백한 반대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지난 2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0년, 50년, 서구에서는 100년 된 규제(금산분리)를 개별 사안이나 몇 개 회사의 민원 때문에 바꿀 수는 없다"며 "한국 경제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건 주력 기업들이 자기 본업에 충실하는 것이고, 기업들이 투자회사를 만들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여기저기 투자를 확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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