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6월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하자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대통령을 ‘피스 메이커’라면서 자신을 ‘페이스 메이커’가 되겠다며 북·미 회담 개최에 기여 의지를 밝혔다. 이런 그의 행보를 보면 2018년 문재인 정부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외교·안보의 당헌 강령으로 삼는 정당이기에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움직이는 게 똑같다. 그런데 과거 전 세계를 기만하거나 우리 국익을 훼손하면서까지 다시 똑같은 시도는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당시 이런 일로 대북 관계 문제에서 우리가 신임과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후 북한은 남북연락소 파괴, 9·19 군사협정 파기, 우리 지도자에 대한 모욕까지 하다못해 작년에는 우리를 적국으로 공식화하며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 나오면서 한반도의 통일은 없다고 못 박았다. 과도한 대가를 치렀지만 더불어민주당 정권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미 회담은 없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기 이전까지 개최 가능성이 희박하다. 트럼프가 지난 22일 우크라 종전을 위한 협상안이 몇 가지 이견만 조율하면 가능해질 것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 이견 면면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 반환 문제에서부터 우크라이나의 전후 안보 보장까지 포함된다. 특히 안보 보장은 우크라이나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헌장 제5조 형태의 보호가 가능하다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가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미국이 반드시 방어에 나서는 의무를 수용할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미군 주둔 문제도 그 규모가 조율되어야 한다.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 반환도 외교적 해결을 주문하지만 우리의 선례만 봐도 이런 해결 방식은 거의 비현실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토는 한번 할양되면 점령국이 패망하기 전까지 수복하기 어려운 사실을 역사는 말한다.
하물며 분단 상황을 현실이라며 통일은 원칙으로 치부하는 이번 정권은 이북 땅을 북한에 고스란히 넘겨 바칠 태세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우리가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전환하면서 평화 체제에 기반한 평화공존을 이룩하려는 구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흡수통일을 안 하고,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이재명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대북정책 3개 원칙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통일부 장관은 지난 9월 18일 국제한반도포럼 기조연설에서 남북한이 통일 중간 단계로 남북의 국가연합 단계를 언급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1991년 유엔 동시 가입으로 이런 개념이 이미 존재한 새로운 것이 아니라며 두 국가론의 수용 당위성과 정당성을 합리화했다.
통일부 장관은 10월 1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두 국가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하고 평화체제의 제도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평화적 두 국가론’이 정부의 대북정책 입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헌법 개정 필요성도 암시했다. 그는 “헌법은 통일을 명시하지만 21세기 현실은 분단의 장기화다. 법적·정치적 해석을 현실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현재 그는 북방한계선(NLL)을 북한과 조율해 ‘법적 해석’을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한반도 영토 정의 문제를 NLL로 한정하고 축소하려는 데 있다. 그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데는 한반도 영토에 대한 헌법 정의 수정이 불가피함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는 38선 이북의 땅을 북한에 고스란히 헌납하겠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결과가 자명한데 굳이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정의하는 헌법 제3조를 개정해 이를 북한에 헌납하려는 까닭을 납득할 국민은 없다. 그러면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의 국가적 사명감과 정체성을 명시한 헌법 제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의 명분도 자연히 사라진다. 통일에 관심이 부족하고 남북한이 두 나라로 사는데 개의치 않는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순 있겠다. 그러나 우리 영토를 자발적으로 자의적으로 축소하는 것을 환영할진 의문스럽다. 물론 현실은 분단 상황에서 이북 땅이 ‘그림의 떡’같이 느껴질 수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 것이 될 수 있는 희망까지 스스로 버릴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
이렇게 북한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려는 정권이 북·미 회담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 또한 상당히 취약해 보인다. 지난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 때 같이 훼방하지만 않고 우리의 국가적 위상을 추락시키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2018년에 미국과 세계를 기만한 ‘죗값’은 당시 우리의 신임과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 중국 인민일보에 따르면 그해 11월 말 아르헨티나 G20 회의에서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중재할 것을 주문했다. 그야말로 ‘코리아 패싱’이었다. 시진핑이 귀국 한 달 후인 2019년 1월에 김정은 위원장은 베이징을 방문했다. 그리고 또 한 달 뒤인 2월에 하노이에서 트럼프와 회담이 성사되었다.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기해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정부는 큰 기대감을 가졌다. 8월 말 첫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먼저 제안한 데서도 나타났다. 물론 이전에 트럼프는 김정은과 만날 용의를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이의 성사를 위해 미국 측의 노력도 있었다. 가령 6월에 미국 측은 북한에 트럼프의 친서를 전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 측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11월 27일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첫 한·미 정상회담 이후부터 10월 경주 APEC 이전까지 북·미 양국의 실무급 논의가 있은 것으로 보도됐다. 접촉 횟수, 장소와 참석자 등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복수의 외신 기자를 통해 나름 확인할 수 있었다. 실무접촉은 세 차례 있어 보이고, 장소는 뉴욕,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으로 추정된다. 실무회의에서 북한이 제시한 요구 사항은 미국이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너 개 정도인 북한의 요구 사항은 안타깝게도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다만 9월 21일에 개최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에서 발표된 김정은 연설문에 근거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 우선 그는 비핵화가 결코 없다고 선언했다. 즉 비핵화는 더 이상 미국과의 회담의 의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미국이 '허황한 집념'을 버리고 현실을 수용한 가운데 평화공존 의사가 명확하면 회담 의지가 있음을 알렸다. 다시 말해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주권 국가로 북한을 인정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둘째, 북한의 회담 목적이 더 이상 제재 해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정은은 이에 '집착'하는 협상이 없을 것이고 영원히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지하듯 이 문제는 북한이 중국·러시아와 3국 연대를 강화하면서 얻은 결과와 자신감에 근거한 것이다. 미국의 경제적 지원이나 보상이 필요 없다고 확인한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조급함을 이용해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이는 미국 대통령의 임기 제한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비핵화를 떠들면서 제재와 압력을 가하며 부질없는 짓을 계속하겠으면 하라고 하자”며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에게 더 유리하다는 논리를 폈다. 회담이 지연될수록 북한은 핵과 발사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더 강력한 대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우리가 목적한 일을 할 시간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시간은 우리 편에 있다”고 발언한 이유다. 북한의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상대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은 미국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아마도 미국에 수교, 평화공존, 안보 보장과 체제 보장 등을 정식 의제로 요청했을 공산이 커 보인다. 미국과의 수교는 북한 건국 이래 일관되게 추진된 북한 외교의 최고 목표 중 하나다. 수교를 통해 안보 보장의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권 국가로 인정받으면 미국의 대북 침공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아질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 동맹 폐기가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니라는 복선이 깔려 있다. 북한의 입장에선 수교가 종전 협정이나 평화협정보다 더 확실한 안보 보장 조치이다. 주권의 인정은 또한 체제 보장을 의미한다. 정권의 인정이 김정은 정권의 인정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의 참수 작전이나 정권 전복 우려를 대폭 줄일 수 있다. 결국 미국과의 수교는 평화공존의 보장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비핵화가 더 이상 북한에 의미가 없다. 트럼프가 자인했듯 북한은 실질적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다. 비핵화가 북·미 회담의 의제가 되려면 이제는 군축이나 핵 감축 회담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즉 상대방의 핵무기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한에 미국의 핵무기가 없다. 역설적이지만 북한이 의심했던 부분을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감축할 핵무기가 없는데 이를 의제로 삼을 수 없다. 북한이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맞거래하지 않겠다는 입장 전환이 가능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는 내년 4월에 예정된 트럼프의 방중 때도 어렵다. 케빈 킴 주한미대사대리가 지난 28일 한미동맹재단 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에 시도된 적 없는 방식들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 방중 때가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그의 방식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득을 확실히 취할 때 응한다는 사실이다. 현재로선 그가 취할 이득이 불투명하고 불분명하다. 트럼프가 우리를 패싱하고 중국에 중재를 부탁할 수 있겠으나 중국과 산적한 문제 해결에 진척이 있을 때나 가능하겠다. 대신 한 가지 변수가 있겠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이 되겠다. 북·중·러 3국 연대 관계의 약한 고리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본래 친서방·친미 성향의 정치인이다. 그가 첫 대통령이 되었던 1999년부터 그는 그러한 외교를 펼쳤고, 중국과는 소원하게 지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을 보면 우크라이나 종전 후에 그는 친서방 노선으로 선회할 것이다. 그러면 중국은 미국을 독자적으로 상대해야 하고 북한과 같이 고립될 것이다. 이때 북한도 북·미 회담을 재고할 수 있고 미국은 주도권을 회복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정부는 북한에 ‘우리 영토’를 ‘헌납’하고 북한의 장단에 맞추는 구상과 노력은 지앙해야 한다. 대신 오히려 시간이 우리 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더 여유롭게 대북 문제에 실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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