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발전' 없는 유통산업발전법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가 15개 점포를 순차적으로 폐점을 진행 중인 가운데 홈플러스 동대문점이 고별 세일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가 15개 점포를 순차적으로 폐점을 진행 중인 가운데 홈플러스 동대문점이 고별 세일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전통시장 반경 1㎞ 내 신규 출점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은 오랫동안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를 위한 울타리이자 보루로 불려왔다. 

그러나 개정안이 2012년 시행된 이후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시간 동안 실제로 소상공인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었는지, 그리고 우리 유통산업의 경쟁력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애초 취지와 달리 규제의 성과는 미미했고 오히려 산업 전체의 혁신을 저해하는 부작용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의 대표적 조치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M)의 월 2회 의무휴업과 심야영업 제한이다. 하지만 대형마트 등 의무휴업이 전통시장과 중소 슈퍼마켓의 수혜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규제 취지인 소상공인 매출 증대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오프라인 유통이 규제에 갇힌 사이 온라인·모바일 시장의 성장만 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규제 법망을 피해간 식자재마트들도 몸집 불리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대형 유통사는 지난 10여 년 동안 물류 혁신과 서비스 고도화를 추진하는 데 극심한 제약을 받았다. 의무휴업으로 인한 고정비 증가, 심야 영업 제한으로 인한 운영 효율성 악화는 물론 점포당 매출 감소는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9년 말 1만3000여 명이던 롯데마트 직원은 올해 6월 말 기준 1만245명, 이마트는 2만5000여 명에서 2만3000여 명으로 축소되는 등 양사 마트 직원 수가 5000명 가까이 감소하는 등 업계 전반으로 고용 규모 축소가 이어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통산업발전법'이 정작 유통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 셈이다. 업계는 내수 침체 장기화와 규제로 인해 발전보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입을 모은다. 

소비자 불편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의무휴업일마다 반복되는 ‘장보기 혼란’은 이미 생활 속 불만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직장인·워킹맘 등 시간 선택권이 제한된 계층일수록 의무휴업으로 인한 부담은 커진다. 그럼에도 이러한 소비자 불편이 소상공인 매출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규제의 목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이는 규제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미 유통의 중심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모바일로 이동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편의점, 온라인 플랫폼은 각자 고유한 소비층과 기능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들은 경쟁자가 아닌 ‘보완재’로 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규제는 여전히 오프라인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어 산업 구조 변화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라는 지적이 높다.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은 중요하다. 그러나 보호의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한다고 전통시장이 살아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가 아니라 소상공인의 디지털 전환 지원, 상권 특화 전략, 물류·브랜딩 역량 강화 등 실질적인 자생력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대형유통과 소상공인이 공존하는 구조를 만드는 길이며, 전체 유통산업의 활력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 유통산업발전법의 일몰이 다시 4년 연장됐다. 소비자 편익과 변화한 산업 환경을 외면한 결과라는 지적이 높다. 시대 변화에 걸맞은 규제 혁신 없이 단순히 일몰 기한 연장만 유지된다면 결국 그 부담은 소비자와 기업, 소상공인에게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유통산업 '발전'을 위한 법이라면 규제의 목적이 아니라 방법을 바꿔야 할 때다.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가 아니라 변화와 혁신을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으로 소상공인과 국내 유통산업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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