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평균 환율이 16일에도 1470원을 넘어섰다. 환율만 놓고 보면 외환위기 수준이지만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역대급이며 코스피는 4000선을 넘어서는 ‘불장’이다. 이례적인 상황 속에서 외환당국은 구두개입과 국민연금 환헤지 등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환율은 한 달째 요지부동이다.
30년간 금융·경제계에 몸담으며 굵직한 위기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해 온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초대 금융위원장과 최장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 이사장은 1470원대에서 장기간 표류하는 환율 흐름에 대해 “떨어지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고환율 기조가 하루아침에 반전되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의 고환율은 수요·공급 차원의 달러 불균형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며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이는 달러보다 개인·기업·기관의 해외 투자, 한·미 협상에 따른 대미 투자까지 겹치면서 달러 수요가 과도하게 늘어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통계에서도 달러 수급 불균형은 뚜렷하다. 한국은행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경상수지는 68억1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내국인의 해외 투자는 172억7000만 달러 늘어 경상 흑자 대비 2.5배에 달했다.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52억 달러 증가했지만 해외 유출 규모 대비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같은 흐름은 환율이 7개월째 꾸준히 상승하며 지난 11월부터 수시로 1470원대를 오르내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서 원·달러 평균 환율을 살펴보면 6월 1366.95원, 7월 1375.22원, 8월 1389.66원, 9월 1391.83원, 10월 1423.36원, 11월 1457.77원, 12월 1470.23원(종가 반영 후 수정 예정)으로 6개월 만에 103.28원(7.6%) 급등했다.
전 이사장은 현재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구조적으로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당시에는 대기업 부실과 실물경제 붕괴, 증시 폭락이 동시에 나타났지만 지금의 불안은 외환시장에 국한돼 있다”며 “구조적인 수급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고환율 환경이 단기간에 바뀔 분위기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 이사장은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책 수단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범주라면 효과가 있겠지만 자율적으로 수익률을 좇아 해외 투자를 늘리는 흐름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한국은행은 환율 안정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4자 협의체’를 구성했으며 국민연금의 전략 변화를 압박하고 있다. 한은은 “국내 주식시장 투자 여건 개선과 연기금의 국내 투자 활성화 등을 통해 과도한 해외 투자 쏠림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장수 국민연금 이사장을 역임한 전 이사장은 외환당국이 국민연금을 끌어들여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했다. 전 이사장은 “국민연금은 국민의 자산으로 정치적·정책적 수단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증시 활황이나 외환시장 안정은 정부와 외환당국의 목표이지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우선 원칙은 아니다”며 “캐나다 사례만 봐도 연기금의 자율성 보장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수탁자인 국민이 맡겨준 돈을 최대한 잘 굴린다는 목표 아래 자산 배분을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전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역할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해외 투자 규모가 크고 수익률이 높은 만큼 수익 실현 차원에서 일부 달러를 환류할 여지는 있다”며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환율 변동성 완화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은 자율적 판단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 해법으로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구조개혁을, 단기 처방으로는 △한시적 세제 혜택 △한은의 통화스와프 확대 △자율적인 국민연금 외화채권 발행 등을 거론했다.
그는 “단기 대응은 어떤 정책이든 양면성이 있다”며 “너무 서두르면 시장이 ‘상황이 얼마나 나쁘기에’라며 오히려 충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무리한 처방보다 시장 신뢰를 지키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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