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Z] 1000억 동 건물인데 월세 '반토막'? 콧대낮추고 임차인 모시기 사활

  • 공급 과잉과 수익률 괴리에 백기 든 집주인들... 렌트프리·비용 분담 등 파격 조건 제시

하노이의 한 길거리에 붙은 임대인을 찾는 광고 사진베트남 통신사
하노이의 한 길거리에 붙은 임대인을 찾는 광고 [사진=베트남 통신사]
베트남의 상가 시장의 권력 지도가 재편되고 있다. 공실이 발생해도 고액 임대료를 고수하던 집주인들이 이제는 임차인을 붙잡기 위해 먼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다. 한때 부의 상징이었던 아파트 단지 내 상가와 상업용 타운하우스의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면서, 과거의 운영 방식을 고집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시장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 18일 베트남 매체 청년신문에 따르면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업체 세빌스(Savills) 하노이의 도 투 항 수석 이사는 현재 상가 수익률 저하의 핵심 원인을 '쇼핑몰과의 체급 차이'라고 지목했다. 체계적인 마케팅과 집객력을 갖춘 대형 쇼핑몰에 비해, 개인 소유의 아파트 1층 상가는 운영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시장 변동에 지나치게 취약하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부동산 투자업체 존스 랑 라살(JLL) 베트남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파트 상가의 한계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아파트 상가의 경우 방문 고객의 약 80%는 내부 거주자로 국한된다. 여기에 보안 및 접근성 문제로 외부 유입이 제한적이다. 특히 반경 1.5~3km 내에 대형 마트와 쇼핑몰이 들어선 상황에서 신축 단지들의 상가 공급까지 쏟아져 '공급 과잉'의 덫에 걸렸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침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업종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베트남 부동산 컨설팅업체 사비스타(Savista) 부동산의 응우옌 띠엔 쭝 대표는 "단순 판매 시설이 아닌 의료, 교육, 헬스케어 등 필수 서비스 업종이나 라이브커머스 스튜디오, 공동 창고 등 시대 흐름에 맞는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개별 점포 단위를 넘어선 '테마형 거리'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임대료 거품은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반코 지역 디엔비엔푸 거리의 1000억 동(약 56억원)짜리 건물은 건물주가 기대하는 월세는 5억 동에 달하는 반면 시장에서 거래가 체결되는 액수는 1억~1.8억 동 사이여서 극심한 괴리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주요 상권의 임대료는 하락세가 가파르다. 레반시 거리 상가는 월세가 과거 7000~8000만 동에서 현재 4000~6000만 동 수준으로 떨어졌고, 보 반 떤 거리는 8000~9000만 동에서 6000만 동 수준으로 몸값을 낮춰도 주인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베트남 부동산 회사 센터랜드의 보 호앙 꾸안 대표는 "이제 고객은 간판이 아닌 SNS(소셜미디어)와 예약 플랫폼을 보고 찾아온다"며 "입지의 상징성이 사라진 자리에 효율성이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많은 사업자들이 고정비 부담이 큰 대로변을 떠나 반코, 쑤언화, 떤빈 등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이나 골목길 주택으로 실속 있는 이전을 감행하고 있다.

박닌에서 한국계 회사 직장인으로 근무하는 30대 A씨는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구글 맵 등을 보고 정보를 얻는 것이 다반사"라며 "오히려 남들이 모르는 곳에 간다는 재미도 있고 발견도 한다는 점에서 굳이 번화가에 길거리에 있는 매장이나 카페에 대한 메리트가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상가 시장의 회복 여부가 '이익 공유형 모델'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는 ▲입점 초기 임대료 파격 할인 ▲인테리어 비용 분담 ▲장기 렌트프리(무상 임대) 등 전향적인 임차인 친화 정책 없이는 만성적인 공실 늪을 탈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결국 상가라는 물리적 공간은 존재하되 과거의 필승 공식을 고집하는 '임대인 우위의 시대'는 이미 종언을 고했다는 엄중한 경고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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