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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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미·중 관계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대중 견제 전략의 실패를 자인하였다. 2018년 시작된 무역전쟁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을 몰아붙여 2020년 1단계 무역합의를 체결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2025년 관세전쟁에서 중국은 미국의 공세를 잘 방어하여 AI용 첨단반도체 수출통제 완화라는 양보를 얻어내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도 차질이 생겼다. 내년 4월 미·중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 유사시 일본의 군사 개입을 언급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않았다. 대중 강경파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한국과 일본 등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어떻게 중국이 미국의 압박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중국 제조업의 고도화를 통한 기술 자립이다. 2015년 3월 리커창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보고에서 최초로 ‘중국 제조 2025’를 제안하였다. 이 산업정책은 성장전략을 요소 주도에서 혁신 주도로, 경쟁 우위는 저비용에서 품질과 효율성으로, 제조 방식에서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전통 방식에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녹색 방식으로, 제조의 지향점을 생산에서 서비스로 전환을 추구하였다. 핵심 부품·기초 소재의 국산화율이 2020년 40%, 2025년 7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중국제조 2025’의 10대 중점 분야는 차세대 정보 기술 산업, 고급 CNC 공작 기계 및 로봇, 항공 우주 장비, 해양 공학 장비 및 첨단 선박, 첨단 철도 운송 장비, 에너지 절약 및 신에너지 차량, 전력 장비, 농업 기계 장비, 신소재, 생물 의학 및 고성능 의료 기기이다. 이 산업정책을 분석하고 평가하기 위해 국무원은 혁신 역량, 품질 및 효율성, 정보화와 산업화의 융합, 녹색 발전의 4개 범주에 걸쳐 12개의 지표를 선정하였다. 여기에는 제조업 부가가치율, 전 노동생산성 연평균 증가율, 핵심 공정 수치제어율, 단위 부가가치당 에너지·자원·오염물 배출 세계 선진수준 도달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결과 중국은 크지만 강하지 못한 저가 조립기지에서 크면서도 강한 첨단 제조강국으로 환골탈태하였다.
인민대 중앙금융연구소의「10년의 도약: 미국 각계각층의 ‘중국제조 2025’평가 및 ‘제조 강국’의 미래 전망」은 전체 계획에 포함된 260개 이상의 정량적 지표 중 86% 이상이 달성되었으며, 2025년 말까지 완료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였다. 그 결과 미국의 강력한 견제 속에 중국 제조업의 부가가치가 증가하고 연구개발 투자도 향상되었으며 글로벌 가치사슬에서도 지위가 상승하였다. 이 때문에 상호의존을 무기화하는 미국과 EU의 수출통제를 중국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국은 공식적으로 이 산업정책의 성과를 자랑할 수가 없다. 2018년 무역전쟁 발발 이후 미국이 이 정책의 포기를 요구해 중국 정부는 2019년 3월 리커창 총리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 업무보고부터 공식적으로 이 정책을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0개 분야 전체에서 목표가 달성되지는 않았다. 미국 로디엄 그룹의 「중국제조 2025는 성공적이었는가?」와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의 「중국제조 2025: 중국의 성과 평가」는 전력설비, 전기차, 태양광, 고속철 등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 1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반도체, 항공기, 고급 장비·바이오의약 등에서는 여전히 해외 기술 의존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고효율, 고품질의 ‘신질 생산력’, 핵심 산업기술 분야의 국제표준을 중국이 선도하는 ‘중국표준 2035 비전’이라는 새로운 산업정책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대중 강경파인 루비오 장관이 예견했던 바이다. 2019년 당시 상원 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루비오는 「‘중국제조 2025’와 미국 산업의 미래」라는 청문회를 개최하여 중국제조 2025'가 단순한 산업 발전 계획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전 세계 기술 부문을 장악하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패권에 도전하려는 국가 주도의 야심 찬 전략이라고 규정했다. 2024년에는 「중국이 만든 세계: ‘중국제조 2025’ 9년 후」라는 보고서에서 그는 중국이 농업기계를 제외한 9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시진핑 주석이 펀드매니저였다면 이 포트폴리오의 성과에 만족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중국제조 2025’의 성공이 완벽한 것만은 아니다. 이 산업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앙 및 지방정부는 직·간접 재정 지원(보조금·전용 펀드·세제·금융지원 등)과 국유기업 투자를 동원하였다. 이러한 정책금융 수단은 과잉생산과 과당경쟁이라는 부작용을 발생시켰다. 투자 확대가 생산성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네이쥐안(內卷)이 확산되면서 대부분의 산업에서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출혈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내 수요가 증가하지 않는 디플레이션이 악화되면서,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국내 판매보다 해외 수출에 치중하면서 미국은 물론 EU와도 무역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올해 사상 최초로 1조 달러가 넘은 상품 무역흑자를 마냥 축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제조 2025’는 한·중 경제관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 제조업이 고도화되면서 양국 경제구조가 수직적에서 수평적 관계로 전환되었다. 수출 주력산업에서 우리 기업과 중국 기업 사이의 경쟁이 격화되었다. 우리의 대중 수출은 줄어들고 대중 수입은 줄어들지 않아, 1992년 수교 이후 30년 동안 지속되었던 무역흑자가 2023년부터 무역적자로 반전되었다. 대중 수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이상 대중 무역적자를 단기간에 탈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계적 수준으로 약진한 중국 제조업과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압력에도 10년 동안 정책을 꾸준하게 추진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5년짜리 정책으로 중국을 따라잡기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우리도 여야와 민관이 합심하여 10년 이상의 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제조업이 중국 제조업의 하청 기지로 전락할 위험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통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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