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립박물관 유료화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무료 개방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공공 박물관과 미술관에 입장료를 부과하는 것이 옳으냐는 질문부터, 만성적인 재정난 속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현실론까지 입장이 갈린다. 하지만 이 논쟁은 종종 ‘가격’에만 매달린 나머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비켜 간다. 과연 우리는 무엇에 돈을 받으려 하는가,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준비해 두었는가 하는 문제다.
이 질문은 해외에 나가보면 더욱 또렷해진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유럽의 대성당, 남미의 고대 문명 유적지 등 세계적인 관광지 대부분이 현지인과 외국인 관광객의 입장료가 다르다. 현지인은 몇 백원에서 몇 천원이면 들어가지만, 외국인에게는 몇 만원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매표소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 돈을 내고 들어가서 볼 값어치가 있을까.”
물론 그 질문이 무색해질 만큼 만족스러운 문화재도 많다. 압도적인 규모, 잘 정비된 동선, 풍부한 설명과 전시 연출이 어우러진 유적지는 비싼 입장료조차 납득하게 만든다. 문화재 보존과 관리에 비용이 든다는 사실 역시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입장료는 비싼데 관리 상태는 기대에 못 미치고, 안내판은 낡았으며, 관람객을 위한 기본적인 정보 제공조차 부족한 곳도 있다. 입장료로 보수·복원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지 체감하기 어려운 곳도 많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비슷한 생각이 떠오른다. "이 정도를 보려고 이만큼을 냈어야 했나."
그럼에도 대다수 사람들은 그 문을 연다. 불만을 삼키면서도 표를 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호구 잡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언제 또 여기까지 와서 이걸 보겠나.”
관광객은 이미 상당한 비용을 지불했다. 항공료, 숙박비, 이동 비용까지 더하면 입장료는 전체 여행 경비의 일부에 불과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재나 유적지를 보지 않고 돌아오는 것은, 감정적으로는 아쉬움이고 경제적으로는 기회비용의 손실처럼 느껴진다. 해외에 왔으면 ‘그 나라를 대표하는 것 정도는 보고 가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도 작동한다.
이 지점에서 ‘가치’의 기준은 단순히 관리 상태나 전시의 질을 넘어선다. 그것은 상징성이고, 대표성이며, 다시 오기 어려운 경험이라는 희소성이다. 사람들은 종종 값어치가 충분한지 따지면서도, 동시에 놓쳤을 때의 손해를 계산한다. 그리고 후자가 더 크게 느껴질 때, 지갑은 열린다.
박물관 유료화 논쟁에 앞서 우리는 과연 사람들이 '안 보고 가면 손해'라고 느낄 만한 콘텐츠를 충분히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최근 K-드라마와 K-팝 등의 영향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분명히 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쇼핑객이 아니라, 한국 문화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입국한다. 우리의 문화유산은 많지만 그것이 세계 관광객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되고 경험으로 설계돼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입장료는 단순한 수입원이 아니다. 그것은 “이만큼의 시간을 들여 볼 가치가 있다”는 사회적 선언이다. 관리되지 않은 공간, 맥락 없는 유물 나열, 불친절한 설명 위에 가격만 얹는다면 유료화는 설득력을 잃는다. 반대로 하나의 유적, 하나의 전시가 충분한 이야기와 경험을 제공한다면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는 데 크게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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