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화와 엔화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동조화(Coupling)' 현상이 심화되면서, 국내 금융권과 독자들의 시선은 온통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에 쏠렸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의 압승으로 '다카이치 엔저'가 폭주해 원·달러 환율까지 1400원대를 위협할 것이라는 공포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엔·달러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160엔 문턱에서 번번이 가로막히며 150~160엔 박스권에 안착했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투기 세력의 공세를 무력화시킨 요인으로 일본 경제의 '수급 체질 개선'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상식적 인사', 그리고 시장의 감시자인 '채권 자경단'의 부활을 꼽았다.
독자들이 가장 의아해할 대목은 "선거 직전까지 160엔을 돌파할 기세였던 엔저가 왜 갑자기 멈췄는가"이다. 닛케이는 그 답을 일본 내부의 수급 체질 개선에서 찾았다. 닛케이의 분석에 따르면, 과거 2022년 엔저 폭주 당시에는 투기 세력이 엔화를 팔면, 에너지 수입 대금을 결제해야 하는 일본 기업들이 공포에 질려 '추격 매수(엔 매도)'에 나서며 불길을 키웠다. 즉, 투기 세력의 '심리'가 시장의 '수급'을 압도했던 시기였다.
이제 일본 기업들은 투기 세력이 아무리 엔화를 던져도 비싼 달러를 사러 줄을 설 필요가 없어졌다. 미즈호 은행의 카라카마 다이스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수급 왜곡이 해소되면서 투기 세력의 공세만으로는 엔저를 가속화하기 힘든 환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정책적 환경 역시 일본은행(BOJ)에 우호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준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지명하자 일본은행 내부에서는 "최악은 피했다"는 안도감이 확산되고 있다. 워시 지명자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마찬가지로 억만장자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 밑에서 시장의 생리를 익힌 '상식파 전문가'다. 이들은 급진적인 정책으로 시장을 망가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주며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
이번 엔저 저지선 형성의 또다른 숨은 주역은 일본 내부에서 부활한 '채권 자경단'이다. 정부의 방만한 재정에 대해 시장이 국채 매도(금리 상승)로 경고를 보내는 이 현상은, 제로 금리 시절 잠잠했던 시장의 감시 기능이 되살아났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다카이치 총리가 식료품 소비세 감면 방침을 밝히자 국채 시장에서는 즉각적인 매도세가 유입되며 국채 금리 상승에 박차를 가했다. 월가의 저명한 경제학자 에드워드 야데니는 "일본의 채권 자경단이 무책임한 재정 정책에 항의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투기 세력이 엔화를 매도하려 해도, 채권 시장이 금리를 밀어 올리며 "재정이 더 나빠지면 금리는 더 뛸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음을 내자 엔저 가속화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닛케이는 이러한 시장의 자정 작용이 역설적으로 다카이치 정권의 독주를 막는 실질적인 방어막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국내외 상황은 일본은행(BOJ)이 갈구해온 '금융 정상화(금리 인상)'에 강력한 명분을 제공한다. 일본은행은 지난 10여 년간 '마이너스 금리'라는 비정상적인 환경에 갇혀 정책 여력을 모두 소진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금리를 정상화해, 미래의 진짜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다시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총알(정책 카드)'을 확보하려 한다.
최근 카타야마 사츠키 재무상이 소비세 감세 재원으로 '1.4조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 활용'을 언급한 것은 결과적으로 일본은행의 손을 들어준 꼴이 됐다. 이는 곧 미 국채 매각을 의미하며 미국의 역린을 건드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국 채권 시장 안정을 위해 일본에 금리 인상을 강력히 요구하는 '외압'이 거세지면서, 일본은행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금리 인상 시계를 돌릴 수 있는 환경을 맞이하게 됐다.
결국 일본 내부의 탄탄해진 수급 구조와 '워시-베선트'라는 외부적 변수, 그리고 미국의 압박이 맞물리며 엔화는 폭주를 멈췄다. 시장의 시선은 이제 20일로 예정된 다카이치 총리의 첫 시정방침 연설로 향하고 있다. 다카이치 2기 정권 출범 후 처음 실시되는 이번 연설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적극 재정'을 외치면서도, 과연 채권 자경단의 경고와 시장의 우려를 어떻게 달랠지가 관건이다. 이 연설의 내용과 3월 미·일 정상회담, 그리고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여부는 향후 일본 경제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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