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이어진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구의 4분의 1이 탈출한 공산국가 쿠바가 최근 미국 정부의 베네수엘라 석유 제재로 인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정보요원 등을 지원해 주는 대가로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로부터 값싼 원유를 제공받았는데, 미국이 봉쇄하면서 석유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21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군은 전날 200만 배럴의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싣고 가던 유조선 '센츄리스'호를 나포했다. 크리스티 놈 미국 국가안보부 장관은 “석유를 밀매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위장 국적을 사용하는 선박”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제재 대상 유조선인 ‘스키퍼’를 나포한데 이어 2번째 나포이다. 아울러 미 해안경비대는 이날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서 또다른 유조선 1척을 추적하고 있어 3번째 나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서 미국은 16일 마두로 정권을 ‘외국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제재 대상 유조선을 베네수엘라 출입을 전면 봉쇄했다.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의 70%가 유조선을 통해 진행되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수출 금지 조치다.
이번 조치를 두고 베네수엘라는 물론, 베네수엘라 원유에 크게 의존하던 쿠바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쿠바 망명자 출신인 호르게 피뇽 텍사스오스틴대 에너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WSJ 인터뷰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쿠바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는 1999년 이후 쿠바의 경제적 우군을 자처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 반미주의자로 꼽히던 우고 차베스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행복의 바속에 함께 있다”고 말하면서 협력을 강화했다. 쿠바는 스포츠 지도자와 의사는 물론 반체제주의자들을 색출하는 방첩 요원까지 베네수엘라에 보냈다. 베네수엘라 측은 하루에 10만 배럴의 원유로 보답했다.
이후 쿠바의 원유 지원은 하루 3만 배럴 분량으로 줄었지만, 아직도 쿠바 출신 정보요원들은 여전히 베네수엘라에 남아 군과 정부 관료들을 감시하는 등 마두로 정권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쿠바 입장에서도 자국에서 공부했고 자국 이익에 도움이 되는 마두로 편을 적극적으로 들고 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에 따르면, 마두로는 젊은 시절 쿠바에 있는 공산당 간부학교에서 교육받았다. 베네수엘라 정권과 교류하기도 했던 미 고위 외교관 출신인 토머스 섀넌 주니어 전 국무부 정무차관은 “그들(쿠바)은 니콜라스 마두로와 그의 후계자들을 아주 잘 보살피고 있다”면서 “쿠바인들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과 군사력에서 상대가 안 되는 쿠바로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최근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해적들을 베네수엘라 유조선에 보내 도둑처럼 화물을 탈취했다”면서 “규칙이 없다는 것이 적의 규칙”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쿠바 시민들의 삶은 피폐해고 있다. 정치범 출신 망명자인 루이스 로블레스(33)는 “현재 일반 쿠바인들의 삶은 매우 어렵다”면서 “식량, 의약품, 병원, 학교 등 모든 것이 없는 재난 상황으로 공무원들은 한 달에 몇 달러 남짓한 돈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싱크탱크 사회권리감시소에 따르면, 쿠바는 인구 90%가 가난하고, 70%가 하루 한 끼 이상 굶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18시간 이상 정전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조국을 떠나는 쿠바인들은 늘고 있다. 수도 아바나 소재 인구학자인 후안 카를로스 알비수캄포스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이 나라 인구 4분의 1 수준인 270만명이 나라를 떠났다. 특히 탈출한 사람의 대다수가 젊은층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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