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사 안전 민낯] 중대재해, 형사처벌서 경제제재로 전환…특화 대책은 글쎄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산업 현장에서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해 경제적 제재를 핵심으로 한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정작 중대재해처벌법의 단초가 됐던 발전사를 고려한 대책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전 현장에서 사고 사망자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22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김용균씨 사망 사고 이후 중대재해처벌법을 마련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특히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를 계기로 제정된 법인 만큼 원청 측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에도 발전사 관련 사망사고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5개 발전사가 공개한 안전경영책임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사망 사고가 총 2건 발생해 2명이 숨졌다. 사망자 모두 직영 직원이 아닌 하도급 노동자였다. 올해 발생한 발전사 사망사고 2건 역시 하청 소속 노동자이거나 발전소 보일러타워 해체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등 원청의 직접 관리 범위를 벗어난 현장이었다. 

발전사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전후로 안전전담 조직을 확대하고 관련 예산을 증액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대재해 발생 여부가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되고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핵심 성과 지표로 '현장 안전'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작업 특성상 변수가 많은 만큼 어느 정도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 역시 사망 사고 감축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통해 '규제와 처벌' 중심이던 중대재해 감축 정책 패러다임을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전환했다. 이재명 정부도 출범 직후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다시 한번 사망사고 감축에 방점을 찍었다. 연간 3명 이상 사망 사고가 난 사업장에 영업이익 5% 이내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사망 사고가 재발하는 건설사는 등록 말소를 추진하는 등 경제적 제재에 나서는 것이 골자다.

다만 이 같은 노동안전 종합대책이 대부분 민간 기업 중심으로 설계돼 공공부문, 특히 발전사에 대한 세부 대책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의 노동안전 종합대책에는 과징금 도입을 비롯해 영업정지 확대, 인허가 취소, 공공입찰 제한 등 경제적 제재가 포함됐다. 

발전사에는 이 같은 제재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업정지 확대 요건을 확대하더라도 국가 기간 사업인 발전을 멈출 수 있을지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인허가 취소 역시 건설사에 국한된다. 공공입찰 참가 제한 또한 이미 공기업인 발전사에는 사실상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선도적 역할을 강조하며 중대재해 발생 시 '책임 있는 기관장 해임 요청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CEO 처벌이 사고 예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기관장 책임 강화만으로 현장의 위험을 줄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 발전사는 공공기관이면서도 고위험 작업 중 상당 부분을 외주에 의존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일반적인 책임 강화 방안만으로는 사고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정부도 지난 3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노동안전 현안 점검회의를 열고 노후 석탄발전소 폐지 관련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다수를 차지하는 석탄발전소 노동자에 대한 구체적인 보호 대책은 제외됐다.

전문가들은 원·하청이 복잡하게 얽힌 현장 특성상 제재보다는 작업 구조와 책임 체계를 명확히 하는 대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사고 발생 시 원·하청 간 역할과 책임이 지나치게 불명확한 만큼 예측 가능성이 없는 법제는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현재 제도는 오히려 아웃소싱과 도급 구조에서 사고를 조장하고 있다. 원청에 책임을 몰아넣는 방식이 아니라 법과 정책을 보다 실효성 있고 정교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