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 간 경영권 분쟁이 다시 불붙은 가운데 법원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단을 내렸다.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립을 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금지해달라는 MBK·영풍 측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오는 3월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미국 정부가 지명한 인사가 고려아연 이사회에 합류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정부, 고려아연 지분 10% 확보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MBK·영풍이 고려아연을 대상으로 제기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고 양측에 결정문을 송달했다. 이번 유상증자가 상법상 주주배정 방식 유상증자의 예외인 '경영상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경우'로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15일 고려아연은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11조원 규모 투자를 단행해 습식·건식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제련소 건립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타법인증권취득자금 형태로 2조8510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유증 대상은 고려아연과 미국 전쟁부(국방부)·JP모건 등이 공동으로 투자해 설립한 합작회사(JV) '크루시블 JV'다.
크루시블 JV는 미국 전쟁부가 지분 40.1%, 고려아연이 지분 9.99%를 쥐고 있는 회사다. 사실상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 주요 주주로 합류하는 구조다.
이에 MBK·영풍은 "사업적 상식에 반하는 경영권 방어용 결정"이라고 반발하며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상증자의 효력은 오는 26일 발생한다. 이번 결정을 통해 주당 129만133원에 고려아연 신주 220만9716주가 발행된다. 유상증자 전 회사 발행주식 총수가 1934만3263주였던 점을 고려하면 크루시블 JV는 고려아연 전체 주식의 10.25%에 상당하는 지분율을 확보하게 된다.
MBK·영풍은 "영풍과 MBK 파트너스는 법원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기각 결정에 대하여 아쉬움을 표명한다"며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추진되려면 경영진이 이사회와 최대 주주로부터 지속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지배구조·의사결정 체계가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고려아연 경영이 특정 개인보다 전체 주주와 회사의 장기적 가치 극대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윤범 우위 구도 성립...이사회 글로벌화 속도
유상증자 시행됨에 따라 경영권 분쟁 중인 최윤범 회장 측과 MBK·영풍 측 지분구조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최윤범 회장과 우호 세력 지분은 약 29%로, MBK·영풍 지분은 약 40.22% 내외로 희석될 전망이다. 국민연금 지분율도 4.8%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미국 정부가 10%의 지분을 쥐고 고려아연 주주로 합류한 만큼 주주총회에선 최윤범 회장의 우위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미국 정부 입장에선 이번 빅딜을 주도한 최윤범 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해야 2029년 미국 내 전략광물 제련소 가동이라는 목표를 수월히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희생 사태 등으로 대주주 MBK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도 최윤범 회장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최윤범 회장이 주총에 제시한 안건은 44%내외 찬성을 얻어 통과될 전망이다.
이에 내년 3월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MBK·영풍보다 최윤범 회장 측 인사가 이사회에 더 많이 진입할 전망이다. 기존 지분율 아래에서는 현재 11(최윤범)대 4(MBK·영풍) 구도가 8대 7로 재편될 것으로 예측됐으나 유증 이후에는 10대 5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무엇보다 미국 정부가 직접 지명한 인사가 고려아연 이사회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에 대한 투자 및 보조금을 집행하면서 고려아연 사외이사 지명권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 이사회 정원이 19명이고, 미국 정부가 사실상 10% 지분율을 확보한 만큼 미국 정부 측 인사 1~2인이 이사회에 합류하는 게 자연스럽다. 내년 3월 정기 주총에서 1인이 우선 합류하고, 그다음 해에 추가로 1인이 합류할 것으로 예측된다.
재계에서도 고려아연이 호주에 이어 미국에서도 대규모 제련 사업을 추진하게 된 만큼 해외 인사가 이사회에 합류하는 것은 고도화된 경영상 판단으로 본다. 일례로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에는 현지 컴플라이언스 대응 등으로 호주 자회사(SMC) 제련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호주 정부 측 인사 1인이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윤범 회장,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 등을 포함한 고려아연 주요 경영진과 미국 정부 측 인사가 긴밀히 소통하며 미국 통합 제련소 건립에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에 11종 전략광물 공급...연매출 5.6조 기대
미국 내 제련소 건립에 속도가 붙고 미국 정부와 더 긴밀히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안보 협의체 '팍스 실리카(Pax Silica)'의 핵심 기업이 될 전망이다. 앞서 한화·HD현대가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 프로젝트로 미국 내 입지가 강화된 것과 같은 행보다.
고려아연은 테네시주 클락스빌 제련소 건설을 위해 내년 중 설계·조달·시공(EPC) 업체 선정과 주요 장비 발주를 진행하고, 2027년 착공할 계획이다. 2029년 완공 뒤 단계적 가동에 나서고 2030년 본 가동을 목표로 한다.
클락스빌 제련소가 가동되면 미국 정부가 지정한 전략광물 11종을 생산하며 연매출 5조6000억원, 영업이익 1조2500억원을 낼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내 주요 방산 업체를 필두로 인공지능·반도체 업체에도 전략광물을 공급하게 된다.
한편 법조계에선 이번 가처분이 지난 2020년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한 유상증자를 실시한 것과 함께 향후 경영권 분쟁 중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점을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대규모 투자·인수·합병을 위해 사전에 확보해둔 기업·사모펀드 등 '백기사' 대신 한국·미국 정부 등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외부 기관을 대상으로 증자를 하는 것은 경영권을 지키고자 하는 목적보다 경영상 긴급한 필요성에 따른 판단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외부 기관이 오너가 기업을 제대로 운영하도록 감시·견제 역할을 하면서 기업 가치 하락 등이 우려되면 언제든지 반대 의견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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