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부채와 비효율은 이미 경고 단계를 넘어섰다. 수익 구조가 취약한 기관은 늘어나고, 설립 목적과 무관한 사업 확장과 조직 비대화가 반복된다. 경영 성과가 나빠도 책임은 흐려지고, 문제는 요금 인상이나 국고 지원으로 봉합된다. 이는 개혁이 아니라 부담을 뒤로 미루는 선택에 가깝다. 오늘의 적자는 내일의 청년에게 이전되는 빚이다.
그럼에도 공공기관 개혁은 늘 “민감하다”, “사회적 갈등이 크다”는 말 앞에서 멈춘다. 그러나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사안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책임질 주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갈등을 회피했고, 주무 부처는 관리 책임을 분산시켰으며, 기관 내부는 변화보다 현상 유지를 택해왔다. 그 결과 개혁은 숫자를 맞추는 구조조정이나 일회성 자산 매각에 그쳤고, 근본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해외는 다른 선택을 했다. 영국은 공공기관에 대해 ‘공공성’과 ‘재정 책임’을 분리했다. 정책 목표는 정부가 정하되, 성과와 비용에 대한 책임은 기관 스스로 지도록 했다. 적자가 반복되는 조직에 대해서는 구조 개편이나 기능 조정을 미루지 않았다. 공공의 이름으로 비효율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뉴질랜드 역시 공공기관을 사실상 독립된 경영 주체로 두고, 성과가 나쁘면 인사와 조직을 함께 책임지게 했다. 불편한 결정이었지만, 재정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공공기관 논의가 ‘공공 대 민간’, ‘노동 대 구조조정’의 구도로 흐르는 것도 문제다. 이는 정치가 가장 쉽게 택하는 프레임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하다. 공공기관 개혁은 공공을 줄이자는 주장이 아니다. 공공을 지키기 위해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기능이 중복되는 조직과 사업은 정리하고,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을 공공이 고집할 이유는 없다.
정치의 역할은 분명하다. 공공기관 개혁은 합의가 완성된 뒤 시작하는 일이 아니다. 합의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정치의 책임이다. “논의가 더 필요하다”, “다음 정부에서 하자”는 말은 중립이 아니라 책임 회피에 가깝다. 영국의 한 격언처럼, 다음 선거를 생각하는 정치는 쉬운 선택을 하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는 어려운 선택을 한다. 공공기관 개혁은 분명 후자에 속한다.
재정 현실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연금 개혁, 복지 지출 확대, 기후 대응, 국가 안전 투자 등 필수 재정 수요는 동시에 늘어나고 있다. 공공기관 부실을 방치하는 것은 다른 정책 영역의 선택지를 스스로 갉아먹는 일이다. 공공기관 개혁 없는 재정 건전성은 성립할 수 없다.
공공기관 개혁은 비용을 줄이는 정치가 아니다. 신뢰를 회복하는 정치다. 책임은 명확히 하고, 역할은 집중하며, 부담은 미래로 넘기지 않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고대 로마의 격언처럼 “내일로 미룬 책임은 더 무거운 짐이 되어 돌아온다.” 미루는 정치는 시간을 버는 듯 보이지만, 결국 비용을 키운다. 책임지는 정치는 당장은 불편하지만 세대를 잇는 유일한 길이다. 공공기관 개혁은 그 전환을 보여주는 시험대다. 이제는 미룰 명분이 없다.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결정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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