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헌법학)]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은 두 가지 상반된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린다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되는 것을 말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분명히 정상이 아닌 상태인데, 그것이 장기화되다 보면 마치 그것이 정상인 것처럼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가치관을 혼란시키며, 국가를 혼돈에 빠지게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도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던 시기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6⋅25전쟁 당시에는 정상적인 법과 도덕보다는 생존의 논리가 모든 것에 우선하기도 했으며, 권위주의 정부에서 계엄이 장기화되던 시기에는 마치 계엄에 의한 예외적 통제가 정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상과 비정상이 각기 제 자리를 찾는 듯하더니, 최근 몇 년 사이에 다시금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예외가 원칙인 것처럼 뒤바뀌는 현상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그러했고, 윤석열 정부 당시의 탄핵정국이나 이재명 정부의 특검정국도 마찬가지이다.
적폐청산의 장기화로 인해 국민들은 초기 적폐청산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활적폐’까지 청산하겠다는 말에 적폐청산 전체가 희화화 되기도 했다.
탄핵정국은 30번의 탄핵소추 발의에 탄핵인용은 1건이라는 성적으로 오남용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인용된 1건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이 아니었다면, 탄핵소추권 오남용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특검의 오남용이 문제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당시의 특검법 발의와 이에 대한 법률안거부권 행사는 논외로 하더라도, 정권이 바뀐 이후에 특검법은 봇물 터지듯 발의되고 있다. 지난 7월 이후에 발의된 특검법만 27건이며, 이른바 3대 특검은 종료된 상태이다. 그리고 지금은 새롭게 2차 종합특검이 발의되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교 특검, 민중기 특검에 대한 특검 등이 발의된 상태이다.
적폐청산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탄핵이나 특검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것이어야 한다. 예외가 원칙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뒤바뀌게 되면 자칫 옳고 그름이 전도될 수 있으며, 국정의 혼란이 극심해질 수 있다.
특검의 예를 들어보자. 특검은 검경의 수사에 대해 불신이 클 때, 예외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특검의 수사력이 검경의 수사력을 뛰어넘기 때문이 아니라, 검경 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문제될 때, 예컨대 과거 검찰총장 부인의 옷 로비 사건의 경우처럼 검찰 수사의 객관성이 문제될 때, 혹은 검경의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관련된 사건일 때, 특검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검의 생명은 객관성과 공정성이다.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 공정한 수사를 통해 범죄 혐의의 유무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밝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이 지켜본 3대 특검은 이미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3대 특검이 경쟁하는 가운데 무리한 수사가 적지 않았다.
그것은 높은 영장 기각률, 강압수사를 의심케 하는 수사대상자의 자살, 그리고 통일교 불법 정치자금과 관련하여 야당 의원들은 기소했던 반면에, 여당 의원들은 기소는커녕 공소시효 만료가 가까워지도록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조차 하지 않은 것 등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렇게 편향성을 드러내면서 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또다시 2차 종합특검을 한다는 것이 특검의 본질에 맞는 것인가? 특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주장한다면 그 결과를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2차 종합특검에서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3차 또는 4차 특검으로 계속할 것인가? 이는 비가 내릴 때까지 무한정 계속되는 인디언 기우제와 다를 바 없다. 정상적인 법치라고 말할 수 없으며, 민주국가의 국정 운용이라고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적폐청산이든, 탄핵이나 특검이든, 예외적인 조치는 예외에 머물러야 한다. 예외가 더 이상 예외가 아니게 되면, 전체 법질서가 혼든에 빠지게 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가치관이 흔들리게 된다. 민주국가를 전제한 국가 법질서와 예외상황을 전제한 비정상적인 국가 법질서가 같을 수 없고,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국민들의 가치판단 기준조차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양 극단에 놓고 볼 때, 여러 가지 예외적인 조치들은 그 중간 영역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조치들이 말 그대로 예외적인 것일 때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원칙과 예외가 뒤바뀔 정도에 이르게 되면, 그것이 민주주의가 전체주의화 되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는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헌법이 각종 예외적 조치를 마련하고 있는 것은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들이 오남용되어 ‘예외의 일상화’, ‘비정상의 일상화’가 나타나게 되면, 그 파장은 국가 전체, 국민 전체에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비정상의 일상화’를 되풀이하는 것은 이미 민주정치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며, 그 원인은 진영 갈등의 극단화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양 진영의 불신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를 단시일에 해결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정당과 지지층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대한민국 내부의 이른바 남남갈등은 국민의 통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원심력으로, 적대와 증오로 치닫게 될 것이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노력으로 망국적인 영호남 갈등을 크게 완화시켰듯이, 이 시대의 정치지도자들도 서로를 죽이려 할 것이 아니라, 진영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필사의 각오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정당정치는 계속 타락할 수밖에 없으며, 대한민국의 장래는 암울할 뿐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