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의 언어는 지나치게 요란하다. 선언은 커졌고, 프레임은 날카로워졌으며, 적대적 표현은 일상어가 됐다. 정치권은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다. 개혁, 정의, 심판, 내란, 책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 많은 말 가운데 시민의 삶을 실제로 바꾼 문장은 얼마나 되는가. 정치는 늘 옳은 말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말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현됐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정치는 말의 정당성을 앞세우고, 행정은 결과의 책임을 떠안는다. 말이 많아질수록 이상하게도 책임은 옅어진다.
중앙정치의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정책보다 선언이 먼저 나오고, 해결책보다 프레임이 앞선다.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규정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리고 그 규정은 대개 상대를 향한다. 적이 있어야 말이 힘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에는 적을 설정할 여유가 없다. 도시는 매일 작동해야 한다. 출근길 교통이 막히면 바로 불편이 되고, 주거 정책이 흔들리면 삶의 기반이 무너진다. 도시는 말로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는 움직여야 하고, 작동해야 하며,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정이 평가받는 기준은 단순하다. 얼마나 많은 말을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지표가 움직였느냐다. 행정은 늘 숫자로 질문을 받는다. 주택은 얼마나 공급됐는가, 교통 혼잡은 얼마나 줄었는가, 안전은 얼마나 강화됐는가 등 이 질문 앞에서 행정은 변명할 수 없다.
그래서 도시의 언어는 건조하다. 숫자와 일정, 현장 점검과 결과 보고서가 말이 된다. 화려하지 않지만 누적되고, 눈에 띄지 않지만 시민의 일상에 스며든다. 도시는 그렇게 신뢰를 쌓는다. 정치와 행정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갈린다. 정치는 실패해도 다음 프레임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도시는 실패하면 그 결과를 시민이 곧바로 감당해야 한다. 정치는 말로 시간을 벌 수 있지만 도시는 시간 앞에서 늘 무력하다.
이 간극은 최근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관계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도시의 개발과 정비, 활용 계획을 둘러싼 사안에서조차 행정적 협의보다 정치적 해석이 앞선다. 국가유산 보존을 명분으로 한, 특히 국가유산청의 판단이 서울 종묘 일대 개발과 같은 도시 행정을 사실상 멈춰 세우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보존이라는 가치가 충분한 행정 조율이 아닌 정치적 압박의 수단으로 작동할 때 그 부담은 고스란히 도시와 시민의 몫이 된다. 선거 국면이 다가올수록 이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정치는 다시 구호를 준비한다. 누군가는 분노를 자극하고, 누군가는 적대 구도를 강화하며, 누군가는 거대한 약속을 던진다. 그러나 시민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말은 많았고 삶은 그만큼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시는 다르다. 도시는 이념이 아니라 체감으로 평가받는다. 출근길의 10분, 주거비의 부담, 아이를 키우는 환경, 노후의 안전 등 시민은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도시를 판단한다. 그래서 도시 행정은 정치보다 훨씬 냉정한 시험대에 놓인다. '도시는 결과로 평가받고, 정치는 말로 도망친다.' 이 문장은 비판이 아니라 현실의 묘사다. 정치가 말의 세계에 머무는 동안 도시는 전지대에 머물 것인가. 언제쯤 도시가 감당해온 책임의 무게를 정치도 함께 짊어질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다. 이미 충분히 들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말을 줄이고, 결과를 늘리는 정치다. 도시가 보여주는 행정의 언어를 정치가 배워야 할 시간이다. 정치가 다시 시민의 삶으로 돌아올 때, 구호가 아니라 숫자로, 프레임이 아니라 현장으로 말할 때, 비로소 도시는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되고, 정치는 도망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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