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전쟁의 시대, BTS와 아리랑이 던지는 평화의 질문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이 재학했던 글로벌사이버대학교에는 ‘지구경영으로의 초대’라는 교양 강의가 있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지구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바라보는 시각을 배우는 수업이다. 환경과 평화, 인권과 책임을 함께 고민하는 지구시민 철학이 그 핵심이다.


오늘 세계가 BTS의 메시지를 단순한 대중음악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교육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노래와 발언에는 일관된 질문이 흐르고 있다.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세계를 다음 세대에 남겨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사진빅히트뮤직
[사진=빅히트뮤직]


지금 세계는 다시 전쟁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고,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란을 둘러싼 긴장이 세계 질서를 흔들고 있다. 드론과 미사일, 인공지능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있지만 갈등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두려움과 불신, 권력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국제 질서는 다시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의 시대에도 인간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제국은 전쟁으로 세워졌지만 인간의 기억은 노래로 남았다. 로마 제국의 군단은 사라졌지만 그 시대의 서사시는 남아 있고, 몽골 제국의 기마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초원의 노래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정치는 시대를 바꾸지만 문화는 시간을 건넌다.


이런 점에서 오는 3월 21일 예정된 BTS 공연은 단순한 콘서트를 넘어 하나의 상징적 장면이 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이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경험은 문화가 인간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사이버대학교 공병영 총장은 BTS와 아리랑을 주제로 한 글에서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그는 아리랑을 단순한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참된 나를 깨닫는 기쁨의 노래”라는 철학적 의미로 설명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리랑을 한(恨)의 민요로 배워왔다. 그러나 세월을 견딘 노래는 언제나 더 깊은 의미를 품는다. 아리랑은 고개를 넘는 노래다. 그러나 그 고개는 타인을 넘어뜨리는 고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고개다. 두려움과 집착을 넘어설 때 인간은 비로소 새로운 길을 발견한다.


이 해석은 BTS가 세계에 전해온 메시지와 묘하게 겹친다.

“Love Yourself.”


자신을 사랑하라는 이 말은 단순한 위로의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발견할 때 타인을 해치지 않게 된다는 윤리적 선언이다. 자기 존중은 결국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고, 공동체와 세계를 향한 책임으로 확장된다.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언제나 인간이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변화에서 시작됐다. 노예제를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가 끝나고 인권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을 때 인류 문명은 한 단계 도약했다. 여성의 권리가 인정되기 시작했을 때 역시 사회의 구조는 크게 달라졌다.


문명은 기술의 진보보다 인간 의식의 확장에서 더 크게 발전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BTS와 아리랑의 만남은 단순한 음악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문화가 세계와 만나는 하나의 문명적 장면이다.


아리랑은 특이한 노래다. 작곡가도 없고 하나의 정본도 없다. 지역마다 가사가 다르고 선율도 다르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삶과 감정이 쌓이며 수천 개의 변주로 이어져 왔다.

그래서 아리랑은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 공동체의 기억에 가까운 노래다. 이별과 이동, 상실과 재회의 감정이 세대를 건너 반복되며 축적된 집단 기억의 리듬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일부 연구자들은 이런 점에서 아리랑을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세대를 넘어 변주되는 ‘문화 플랫폼’으로 보기도 한다. 인간의 감정과 경험이 끊임없이 접속하고 새로운 형태로 다시 울리는 구조라는 뜻이다.

BTS가 아리랑의 정서를 공연 속에서 활용했을 때 세계는 그것을 낯선 문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던 감정을 다른 언어로 다시 만난 것처럼 받아들였다.

이별과 상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경험은 특정 민족의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유해온 감정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세계를 움직이는 방식은 군사력과 다르다. 군대는 국경을 넘지만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러나 노래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인간의 감정을 연결한다.

세계 음악사에는 이런 장면이 반복되어 왔다. 존 레넌은 ‘Imagine’을 통해 전쟁 없는 세계를 노래했고, 밥 딜런은 베트남 전쟁의 시대에 인간의 양심을 흔드는 노래를 불렀다. U2의 보노는 음악을 통해 아프리카 빈곤 문제를 세계 의제로 끌어올렸다.



그들의 노래가 전쟁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전쟁을 정당화하는 침묵을 깨뜨렸다.

문화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총을 내려놓게 하지는 못해도, 총을 들기 전에 인간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다.

지금 세계가 겪는 갈등 역시 결국 인간의 문제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중동의 분쟁도 역사와 영토, 종교와 정치가 얽힌 복잡한 갈등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인간의 두려움과 불신이 놓여 있다.


그래서 평화는 군사 전략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뢰와 공감이 없으면 어떤 협정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BTS 공연은 단순한 문화 이벤트가 아니다.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젊은이들이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은 정치 지도자들의 정상회의로도 쉽게 만들어내기 어려운 풍경이다.



그 무대는 한국의 공연장이 아니라 지구의 광장이 된다.

문명의 수준은 결국 인간이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쟁은 인간을 나누지만 문화는 인간을 연결한다.



3월 21일, BTS의 무대에서 울려 퍼질 노래가 세계 곳곳의 마음을 잠시라도 멈춰 세우기를 바란다.

인류를 움직이는 가장 강한 힘은 무기가 아니라 이야기라는 사실을, 그리고 가장 깊은 한국의 노래가 가장 넓은 세계의 평화를 향한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쟁의 시대일수록 인간은 더 큰 노래를 필요로 한다.

아리랑이 바로 그 노래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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