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급증하는 민간인 피해와 유가폭등으로 글로벌 공동체 전체가 전쟁의 즉각적인 종식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발언은 수시로 바뀌고 갈수록 강경 일색이다. 당초 1주일 정도 예상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은 사라지고, 3~4주간 전쟁, 지상전 투입, 정권교체, 무조건 항복,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새 최고지도자의 살해위협 같은 품격을 잃은 위협적 용어만 무성하다. 글로벌 경제, 미국의 이해관계, 한국의 국익 등 모든 측면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뻔한 이번 전쟁에서도 협상이나 중재로 가는 국제적 수단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유엔이 무력화되고 국제사법 재판소의 최종 판결이나 국제법의 규제가 형해화되는 국제관계의 현주소를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왜 미국은 이란과 한창 핵협상이 진행 중이었고, 중재자인 오만 외교장관이나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2월 26일 제네바 협상에 대해 긍정적인 진전을 밝혔음에도 이틀 후 전격적인 이란 공습을 시작했을까.
미국이 주도하는 표면적인 이란전쟁 양상 이면에는 이스라엘의 역할이 특히 주목받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을 처음부터 거칠게 반대해 왔다. 그가 주장하는 핵 프로그램의 완전 해체나 실존적 위협으로 등장한 극초음속 탄도 미사일 체계의 붕괴, 나아가 이란 신정정권 교체라는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란 내부의 극심한 혼란도 공격의 유혹을 증폭시켰다. 미국의 극심한 고강도 경제제재로 이란 정권이 통치 마비 상황에 직면했고, 급기야 강력한 지지층으로부터 시작된 민생 시위와 잔혹한 유혈진압으로 이란 이슬람 정권 자체가 1979년 집권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무엇보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3년간의 팔레스타인 하마스와의 가자 전쟁을 마무리 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들어설 서안 영토 82%를 실효적으로 지배한 상태에서 유일한 눈엣가시가 이란이었다. 이미 유럽을 포함한 151개국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지지했고, 가자 전쟁으로 전범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는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10월 초기총선을 앞두고, 국내여론을 끌어올릴 다급함도 있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막강한 기술력과 안보자산을 바탕으로 걸프지역의 아랍 왕정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중동의 최강 지배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 걸림돌도 역시 이란의 군사적 위협이었다.
지금 이란 국민들의 여론은 어떤 상황인가. ‘기대-공포-분노’, 세 단어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다. 37년 신정체제의 일인 권력 독점체제가 무너지면서 보다 민주적이고 민생이 개선되는 새로운 정권 창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바로 직전까지 6천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면서 민주화와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공격이 군사적 목표를 넘어서서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그의 가족 3대, 많은 무고한 이웃이 죽어나가자 여론은 반미-반이스라엘로 돌변했다. 부당한 공격에 대한 애국심이 발동되면서 결사항전의 분위기로 똘똘 뭉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판단 오류였고,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고 수렁으로 빠져드는 배경이다.
가장 좋은 방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승리의 명분을 찾아 하루라도 빨리 이번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핵 시설과 미사일 생산 능력을 초토화시키고 37년 폭압정권을 제거한 것은 승리의 명분을 충족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상군 투입 카드까지 고려하면서 이란의 완전 투항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 정권이나 국민들 모두 쉽게 항복이란 수순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2500년의 긴 페르시아 역사는 저항 그 자체였다. 20세기 이후에도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한 이라크와 8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1979년 이후 미국의 고강도 경제제재에도 굳건히 삶을 유지하면서 내핍생활과 저항경제를 체득해 왔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결사항전은 결국 마지막 카드였던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극단적인 조치로 이어졌다. 원유와 천연가스의 생명선이 차단되고 유가가 150달러를 향해 가면서 세계 경제가 휘청하고 있다. 80% 가까운 수입원유를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그러는 사이 이란도 일사불란한 저항을 위해 후계 구도를 구축했다. 전쟁의 혼란 상태에서도 헌법과 법령의 절차에 따라 3인의 과도 통치권이 작동하고 있고, 2024년 선거에서 국민이 선출한 88인의 전문가회의에서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인 모즈타바를 차기 최고 지도자로 추대했다. 바닥에 떨어진 민심과 민생을 수습하기 위해 미국과의 생존적 협상이 필요한 시점에서 비교적 온건하고 대화가 통하는 지도자가 아닌 강경, 보수 성향의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선출된 것이다. 이는 이란 국민 정서가 위기국면에서 전쟁을 수행해 나가고 있는 혁명수비대와 결을 맞출 수 있는 강력한 전시 지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금 이란으로서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민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미국과의 협상과 타협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고강도 압박과 봉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정권도 국가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즈타바의 새 신정정권도 더 많은 양보를 제시하면서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동의를 얻지 않은 이란 지도자는 그가 누구든 즉각 죽음에 직면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엄포를 퍼붓고 있다.
전쟁의 피로도가 높아가고 글로벌 경제의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어 전쟁 종식을 요구하는 지구촌 곳곳의 절박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전쟁의 양상은 현재로서 두 가지 변화를 잘 살펴보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새 최고 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파트너로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만약 그를 다시 표적 살해한다면 양측의 적대적 대치는 접점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분노에 찬 이란 내 여론을 업고 전쟁은 보다 장기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미국의 지상군 파병 여부다. 미국 특수부대가 지휘하는 이라크 내 반이란 쿠르드 민병대 조직을 이란에 투입하려는 계획이 이라크 내 쿠르드 정당 간의 이해관계 상충, 이라크 중앙정부와 튀르키예 정부의 강력한 항의, 미국 스스로가 지정한 테러조직인 이라크 쿠르드 자유생명당(PJAK)을 이용해 이란을 공격하게 하는 자가당착의 문제 등으로 작전이 유보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미국 본토에서 최정예 특수부대를 진입시켜 우라늄 농축 핵물질을 제거하거나 폐기하는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일려지고 있다. 어떤 경우라도 지상군 파견은 성공하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칫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갈 위험성 때문에 글로벌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
아직은 출구가 보이지 않지만, 무한정 이 전쟁을 끌고 가기에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다. 미국 여론이 아주 부정적이고, 스스로 MAGA를 주창하면서 전쟁 대신 평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한편 네타냐후는 트럼프를 계속 설득하여 이 전쟁을 계속하기를 바랄 것이다. 이란을 가능한 한 철저히 파괴하여 대혼란 상태로 묶어두고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불량국가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동시에 이란 전쟁으로 인한 중동의 혼란상태를 역이용하여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레바논에 대한 전례없는 대규모 공세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는 전쟁 종식을 위해 네타냐후를 동시에 설득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개인적으로는 3월 30일부터 베이징에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이 돌파구가 되기를 고대해 본다. 중국이 현재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하고 있고, 이란에게 가장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이란 원유 수출의 약 80%를 중국이 가져가고 이를 통해 제재 아래에서도 생명선을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쟁이 빨리 종식되어야 하고 우리 경제에 미치는 엄청난 부정적 요인을 생각해서라도, 우리 정부가 이번 분쟁의 방관자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분쟁해결과 평화 중재자로서의 글로벌 역할을 보여주는 외교 패러다임의 변화도 기대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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