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 하나를 씩씩하게 들고 들어오는 첫 장면부터 그렇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관행처럼 반복되던 에스코트 장면도 혼자 통과해버린다.
그런데 영자의 멋은 관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묘하게 결이 달라진다. 혼자 있을 때의 강인함이 둘 사이에서는 자주 판정의 언어가 된다. 이해보다 평가가, 대화보다 교정이 먼저 나온다. 상대를 읽기보다 고치려 드는 태도. 혼자 서 있을 때는 장점이던 힘이, 관계 안에서는 자주 피로로 번진다.
"친구한테 차 환불해달라고 하는 거 어때요?"
"솔로나라 와서 운전 연수를 해주고 있는 게 진짜."
애초에 영식은 운전 연수를 부탁한 적이 없다. 영자가 먼저 나섰고, 그 호의가 다정하게 읽히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 배려는 점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자꾸 상기시키는 사람의 말투다. 영식은 그 타박에 맞서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받아낸다. 어느덧 고마움이 아닌 위축감이 남는다.
상대가 크게 반발하지 않으면, 말한 사람은 자신의 방식이 얼마나 자주 선을 넘는지 체감하지 못한다. 불편을 준 말은 그녀의 웃음소리 속 농담처럼 수습되고, 그 화법은 교정되지 않은 채 습관이 된다.
영자의 화법은 유독 한 방향으로 흐른다. "나는 이런 걸 해내는 사람"이라는 자기 증명이다. 캐리어를 혼자 드는 사람, 불을 척척 피우는 사람, 고기를 잘 굽는 사람, 손해를 털고 가는 사람. 영자는 그런 사람일 수 있다. 다만 그 특별함이 단독으로 서지 못하고, 자꾸 비교의 구도 위에 올라탄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말이, 쉽게 너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공기로 번진다. 그 순간 매력은 증발하고, 관계에는 긴장만 남는다.
영화를 보고 우는 사람들에게 "왜 울죠?"라고 반응하는 장면도 비슷하다. 정말 궁금해서 던진 말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장면이 주는 인상은 호기심보다 "나는 저쪽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자기 표지에 가깝다. 영자의 커뮤니케이션은 자주 자신만의 결을 드러내는 데 집중돼 있다. 그 결이 매력으로 읽힐 때도 있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피로로 남기도 한다. 다름을 드러내면서 상대를 낯설고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개팅을 100번 넘게 했지만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는 말도 그냥 넘기기 어렵다. 물론 인연은 타이밍이고, 취향은 복잡하며, 몇 장면만으로 모든 걸 단정할 순 없다. 다만 드러난 태도만 놓고 보자면, 영자는 사람을 깊이 보기 전에 먼저 평가하는 쪽에 가깝다. 입체성을 발견하기 전에 부족한 지점부터 포착하는 사람. 그런 사람 앞에서는 편안해지기보다 평가받는 기분이 들기 쉽다.
영자는 지금도 충분히 눈에 띄는 사람이다. 다만 눈에 띄는 것과 오래 보고 싶은 것은 다르다. 지금의 영자는 자꾸 자기 멋을 증명하려 든다. 진짜 멋은 그럴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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