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백범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인 인물 백범 김구 : 탄신 150주년, 소설 《백범 강산에 눕다》가 다시 묻는 백범의 정신

올해 2026년은 백범 김구 선생 탄신 150주년이다. 그리고 6월 26일은 백범이 경교장에서 흉탄에 쓰러져 하늘로 돌아간 날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시간이다. 한 인간의 죽음은 끝이지만, 어떤 사람의 죽음은 오히려 시대의 시작이 된다. 백범 김구가 그러하다.

유네스코는 올해 백범을 ‘2026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했다. 한국인으로는 다산 정약용과 김대건 신부에 이어 세 번째이며, 세계 독립운동가로는 간디, 호찌민, 만델라에 이어 네 번째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단순한 기념이 아니다. 세계가 다시 김구를 호출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늘 백범을 존경한다고 말해왔지만, 과연 그의 삶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바로 이 질문 앞에 임순만 작가의 장편소설 '백범 강산에 눕다'가 놓여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양심을 복원하는 작업이며,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윤리적 심문이다.

임순만 작가는 언론인 출신이다. 국민일보 기자에서 편집국장까지 지낸 그는 자료 수집과 취재에 5년, 집필에 3년, 전체로는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바쳐 이 작품을 완성했다 . 그래서 이 소설에는 허구의 인물이 없다. 등장인물 모두가 실존 인물이며, 사건 역시 철저히 사료와 기록에 기반한다. 소설이지만 오히려 역사보다 더 깊이 역사에 다가간다.

이 작품은 화려한 수사로 독자를 현혹하지 않는다. 문장은 담담하다. 그러나 그 담담함이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군더더기를 걷어낸 문장이 오히려 백범의 고독과 결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실패를 미화하지 않고, 패배를 변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영웅을 보는 것이 아니라 끝내 꺾이지 않는 인간을 보게 된다.

소설은 총 2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상놈으로 태어난 김창수의 고통에서 시작해, 과거시험 낙방, 치하포 사건, 동학 활동, 망명, 상해 임시정부의 분투,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 광복군 창설, 해방 후 분단의 갈림길, 그리고 경교장에서의 최후까지 이어진다. 연대기처럼 흐르지만 실은 인간의 윤리적 선택의 궤적이다.

특히 첫 장과 두 번째 장의 제목이 상징적이다. ‘내 목숨을 드리다’, 그리고 ‘그대의 목숨을 받다’. 이는 단순한 의열 투쟁의 기록이 아니다. 독립운동이란 결국 한 사람이 자기 목숨을 내놓고, 또 다른 사람이 그 희생의 무게를 떠안는 책임의 윤리라는 뜻이다.

윤봉길 의거를 앞둔 장면에서 김구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다. 그는 죽음을 보내는 사람이다.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보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독립운동은 전략이 아니라 윤리였다.

임순만은 이 장면을 단지 영웅담으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무게를 인간의 떨림으로 보여준다. 백범은 승리를 장담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해야 할 일을 한다.

소설 속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주애보와의 시간이다.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숨어 지내야 했던 백범에게 중국 여성 뱃사공 주애보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유사부부처럼 함께 살아간다.

작가는 이렇게 쓴다.
“배 위에서 선생님과 밤을 보내며 주애보는 생각에 잠긴다. 말수가 적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속마음에 큰 산을 넘어온 사람의 고단한 과거가 웅크리고 있음을 느낀다. 겉으로는 메마른 나날이지만, 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듯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같은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이 장면은 백범을 위인에서 인간으로 내려놓는다. 혁명가 이전에 한 남자였고,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위대한 사람일수록 그의 고독은 더 깊다.

또 하나 중요한 장면은 ‘밥’에 대한 서술이다.“밥은 하늘이 낸 음식이다. 땅의 힘과 인간의 땀으로 만들어진 밥은 생명을 살리는 하늘을 닮았다. 밥은 순리이기에 고맙다.” 

이 문장은 백범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 거대한 이념 이전에 인간의 기본, 굶주린 자를 먹이는 일, 사람됨을 잃지 않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나라를 찾는 일도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이어야 했다.

그래서 백범은 정치인이 아니라 윤리의 최후선에 선 사람이었다.

그는 남북 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행을 결심한다. 모두가 실패를 예상했고, 실제로 결과는 실패였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내가 북한에 가서 실패하면 실패한 기록이 남을 것이고, 그런 시도가 거듭되면 누군가는 그 실패를 넘어설 것이다.” 

이 문장은 오늘의 정치가 잃어버린 품격을 보여준다. 성공 가능성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한 사람. 이익이 아니라 책임을 먼저 본 사람. 백범은 바로 그런 지도자였다.

그는 분단을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로 보았다. 만나지 않으면 전쟁이 오고, 시간이 흐르면 증오가 체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갔다. 실패를 알면서도 갔다.
이것이 백범이다.

그리고 마침내 경교장.
1949년 6월 26일. 백범은 서울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진다. 해방된 조국에서,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나라의 한복판에서 죽임을 당했다. 역사의 가장 잔인한 아이러니였다.

소설은 그 장면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쓴다. 그래서 더 무섭다.
“범인들은 총으로 생명(김구)을 거두어갔지만, 깨진 유리창 너머 창밖에 와서 인산인해를 이루어 목놓아 우는 촌부들의 눈물까지 빼앗지는 못했다.”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한다.
총은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역사까지 죽일 수는 없다.
당시 서울 인구는 140만 명, 그 가운데 124만 명이 조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민심의 증언이다. 국민은 알고 있었다. 누가 진짜 나라를 위해 살았는지를.

백범은 정치적으로는 실패했다. 분단을 막지 못했고, 권력을 잡지 못했으며, 끝내 암살당했다. 그러나 역사는 성공한 정치인보다 실패했으나 타협하지 않은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한다.

그는 패배했지만 꺾이지 않았다.
그가 말한 문화강국론은 오늘 더욱 절실하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은 강한 군사력으로 남을 누르는 나라를 원하지 않았다. 누구도 억압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억압받지 않는 품격의 나라를 원했다. 오늘 BTS와 K-컬처가 세계를 움직이는 시대에, 우리는 비로소 백범의 이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문화는 장식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강한 나라가 아니라 아름다운 나라.그것이 백범의 꿈이었다.

이제 남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어떻게 백범을 기릴 것인가.
기념관을 짓는 일도 필요하다. 동상을 세우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이다.

정치를 권력의 기술이 아니라 책임의 윤리로 회복하는 것.
경제를 탐욕의 승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품격으로 다시 세우는 것.교육을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됨의 훈련으로 되돌리는 것.
이것이 진짜 추모다.

동아시아는 지금도 불안하다. 한반도의 분단, 미중 패권 경쟁, 일본과의 역사 갈등,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세계는 다시 힘의 질서로 흔들린다. 그러나 백범은 묻는다.

힘으로 지배할 것인가, 문화로 공존할 것인가.

성경은 말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백범의 삶은 이 문장의 역사적 실천이었다. 그는 평화를 위해 싸웠고, 정의를 위해 외로움을 감당했으며, 자유를 위해 자신의 생을 바쳤다.

그래서 백범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이다.

임순만의 '백범 강산에 눕다'는 그 끝나지 않은 문장 위에 오늘 우리가 무엇을 써야 하는가를 묻는다.우리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우리는 실패를 알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가.

백범은 지금도 조용히 묻고 있다.
그리고 강산은 아직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사진=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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