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오래 걸어가요. 소문의 낙원으로.” ('소문의 낙원' 가사 일부)
요즘 가장 조용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노래는 이상하리만큼 느리다.
유행하는 전자음도 거의 없고, 귀를 때리는 후렴도 없다. 대신 오래된 기타 소리와 바람 냄새 같은 목소리가 있다.
마치 늦은 오후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처럼, 아주 천천히 마음 위에 내려앉는다.
남매 듀오 악뮤의 앨범 ‘개화’ 이야기다. 멜론 누적 스트리밍 25억회, 한 곡으로 일간 차트 1046 연속 진입.
이 경이로운 숫자는 지금 한국 사회가 무엇에 지쳐 있는지를 놀랄 만큼 정확하게 건드린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 겁내지 말고 마주앉아라. 찬란한 그림이 된단다.
너의 웃음과 조화로운 너의 눈물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가사 일부 )
사람들은 요즘 이 노래를 들으며 자꾸 울컥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항암 치료 중 위로를 받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죽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은 멀어졌다고 쓴다.
가장 인공지능 시대다운 순간에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불리운 노래가 사랑받고 있다.
지금 우리는 너무 풍부하고 편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무엇이든 볼 수 있고, 인공지능은 이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글까지 쓴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분석해 우리가 좋아할 만한 것을 먼저 보여준다.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빨라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얼굴은 더 지쳐 보인다.
지하철 안 사람들은 모두 화면을 들여다본다.
카페에서도, 횡단보도 앞에서도, 잠들기 직전 침대 위에서도 사람들은 계속 무언가를 본다. 몸은 멈춰 있는데 머리는 쉬지 못한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마음은 자꾸 메말라 간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가만히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쉬는 시간조차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운동도 기록이 돼야 하고, 여행도 사진이 돼야 하며, 독서도 인증이 돼야 한다. 멍하니 있는 시간은 게으름처럼 취급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조차 불안하다.
그래서인지 서울에는 요즘 참 묘한 풍경이 늘어난다.
얼마전 광화문광장에서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스마트폰도 보지 않고 90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주말엔 한강에서 ‘잠퍼자기 대회’가 열렸다. 누가 더 깊고 평온하게 잠드는 지를 겨룬 것이다.
웃기면서도 어딘가 슬픈 장면이다. 왜 사람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일부러 멍하니 앉아 있으려 할까. 왜 한강에 누워 남들 앞에서 잠들기를 원할까. 아마 너무 오래 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계속 줄고 있다.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학생은 학원과 입시 사이에서 잠을 줄이고, 직장인은 끝없는 업무와 불안 속에서 밤늦게까지 깨어 있다. 자영업자는 가게 문을 닫고도 한숨을 쉬지 못한다. 부모들은 아이를 재운 뒤에야 겨우 자기 시간을 갖는다. 모두가 피곤한데 누구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
이찬혁의 가사는 요란한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을 인정한다.
“기쁨 뒤엔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이 문장을 처음 들으면 이상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슬픔을 실패처럼 배워왔기 때문이다. 우울은 감춰야 하고, 불안은 들키면 안 되며, 흔들리면 뒤처지는 것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이 노래는 말한다. 슬픔이 있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살아 있다는 뜻이라고. 기쁨과 슬픔은 원래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우리가 오래 기억하는 순간들은 늘 기쁨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에도 아픔은 섞여 있고, 청춘은 찬란하면서 동시에 불안했다. 부모의 뒷모습은 든든했지만 외로워 보였고, 어린 시절 여름방학은 행복했지만 끝나는 날 저녁은 늘 슬펐다. 인생은 원래 그렇게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 오래 행복만 강요받으며 살아온 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 노래 앞에서 무너진다.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더 마음을 울리는 건 이 음악이 실제 상처를 통과하며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이수현은 긴 슬럼프와 우울, 불면과 공황 속에서 거의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보냈다. 체중이 급격히 늘고, 방 안에서 나오지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오빠 이찬혁은 그런 동생을 다시 삶으로 데리고 나오기 위해 함께 걷고, 여행하고, 햇빛을 보게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우간다 봉사활동도 다녀왔다.
‘개화’는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한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만들기 위한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에는 요즘 드문 진심이 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시대를 산다. 빠른 답변, 빠른 배송, 빠른 관계, 빠른 소비. 인공지능은 점점 더 인간의 시간을 줄여주지만, 정작 인간은 더 바빠진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만든 기술들 속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잃어간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더 빠른 속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필요한 것은 잠깐의 ‘강제 로그오프’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한강 바람을 오래 바라보는 시간.
누군가와 천천히 밥을 먹는 저녁. 음악 한 곡을 끝까지 듣는 밤.
책장을 넘기다가 졸음이 오는 순간.
아무 이유 없이 산책하다가 해 질 녘 냄새를 맡는 일.
그런 오래된 인간다움 말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올수록 오히려 이런 것들은 더 귀해질 가능성이 크다.
잘 쉬는 능력, 혼자 조용히 있는 능력,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은 앞으로 가장 인간다운 경쟁력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소문의 낙원’을 찾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느리게 오래 걸어가요
소문의 낙원으로.”
지금 사람들은 그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그곳으로 가는 길을 잠시 상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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