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자투리 리뷰] 한국의 오컬트는 무당에 달렸나? 한국인을 설득시키는 '무속'의 힘

  • 한국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오컬트 작품들, '무속'이 주인공

  • 비과학적인 이야기 중 한국인을 유일하게 설득시키는 것은 무당의 말

영화 파묘 사진IMDB
영화 '파묘' [사진=IMDB]

“쉽게 말해서 묫바람. 조상 중에 누군가가 불편하다고 XX하고 있는 거죠.”
“확실한 건가요?”
“네, 100%”

3대에 걸쳐 장손에게 닥친, 과학적으로 도저히 분석이 안되는 ‘화(禍)’. 영화 ‘파묘’에서 한 집안이 이 신묘한 일들의 원인을 찾다찾다 결국 무당을 불러냈다. 이에 무당 ‘화림’이 내놓은 답은 ‘산소탈’. 조상님이 누운 ‘묫자리’에 탈이 났다는 제법 심플한 진단이다.

100% 확신에 찬 이 답은 ‘파묘’가 오컬트 영화로서 기강을 확실히 하고 그 기세로 엔딩까지 달려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무당의 “100%” 한 마디만으로 이 영화의 개연성을 100% 보장해준 것이다.
 
시리즈 기리고 사진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 [사진=넷플릭스]

한국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적잖이 볼 수 있는 무당 캐릭터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불가사의한 사건들의 결정적인 실마리를 던져 주기도 하고 갈등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예 모두를 구원하는 ‘히어로’가 되거나,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악화시키는 ‘메인 빌런’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를 테면 영화 ‘파묘’, 시리즈 ‘기리고’, 그리고 최근 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 속 무당은 해결사로서 등장한다. 조건 없이 주인공들을 도와주거나 그 자신이 주인공이 된 무당들은 무속의 힘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한다. 귀신을 볼 수 있고 악령의 기운을 느끼며 결국 그 기운을 잠재우는 이 착한 무당들의 활약은 영웅의 서사를 보는 듯하다.
 
드라마 ‘악귀’와 ‘방법’,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와 ‘신명’ 등에서는 희대의 빌런 자리를 무당 혹은 무속의 힘이 차지한다. 빌런이 된 무당은, 물리적으로 한 도시를 초토화시키는 할리우드 빌런에 비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악귀’의 무당은 순수한 어린 여자아이를 굶겨 죽여 원한에 서린 악귀로 만든다. 이 지독한 악행을 서슴지 않는 그 무당은 그런 식으로 인간의 탐욕에 충실히 복무한다. 심지어 영화 ‘곡성’은 착한 무당 ‘무명’과 악마의 하수인을 자처한 무당 ‘일광’의 대결을 다뤄, 한국의 오컬트 대표작이 됐다.
 
영화 곡성 사진폭스 인터내셔널 코리아
영화 '곡성' [사진=폭스 인터내셔널 코리아]

한국은 오컬트 장르의 불모지다. 현실에 기반한 리얼한 이야기에 좀 더 열광하는 한국 사람들은 판타지, SF, 오컬트 등 비현실적인 장르를 상대적으로 덜 선호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 이따금씩 오컬트 장르로서 흥한 영화나 드라마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대부분 무속을 다루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천만 이상의 관객을 불러들인 영화 ‘파묘’를 비롯해서 ‘곡성’, 시청률 10%를 넘나든 드라마 ‘악귀’와 케이블 채널 드라마로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손 더 guest’에 최근 시리즈 ‘기리고’에 이르기까지 이들 화제작에는 하나같이 ‘무속’이라는 테마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왜 한국사람들은 초능력, 외계인, 평행우주 등 비과학적인 대부분의 세계관에는 그토록 냉정하게 거리를 두면서도 유독 ‘무속’에는 쉽게 설득당해버리는가.
 
드라마 악귀 사진SBS
드라마 '악귀' [사진=SBS]

고대 부족국가 시대부터 한국에 존재했다는 ‘무속’은 수천년 동안 한국인과 함께 했다. 최근 몇 년은 SNS와 유튜브 같은 개인 채널의 폭등으로, 무속 관련 콘텐츠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체감하게 된다. 한국인과 무속은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매우 친숙하게 닿아 있다.

몇달 전에는 SNS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무속인 수가 과거 20만명에서 80만명으로 치솟았다는 근거 없는 낭설이 돌았을 정도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가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점술 및 유사서비스업 사업체 및 종사자 수’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소폭 증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는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객관적인 통계는 평이한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으나 사람들, 특히 젊은 MZ 세대 사이에서 무속의 영향력은 무척 커졌다고 체감이 된다. 통계보다 ‘체감’이 중요하다. 유튜브에서는 ‘무속’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고, 최근 디즈니 플러스에서 내놓은 ‘운명전쟁 49’는 예능으로서 뜨거운 화제와 논란이 되었고 그 이전에는 티빙의 ‘샤먼:귀신전’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작명소에서 자녀의 이름을 짓는 건 이미 유행을 넘어 의례가 됐고, 아예 아이 낳기 좋은 날을 미리 잡아 그날을 출산일로 잡는 것도 흔하다. ‘손 없는 날’을 이삿날로 정하고, 젊은 남녀는 무당이 잡아 준 날로 결혼식을 열고 잠자리도 한다. 한국에서 ‘무속’은 믿음의 영역을 넘어선 생활이 된 것이다.
 
특히 불확실한 미래에 불만이 가득한 어떤 MZ 세대들에게는 부모세대의 충고보다 무속인의 ‘일침’ 한마디가 더 확실하게 그들에게 다가온다. 확신에 찬 무당의 ‘점사’가 기성세대의 경험과 가르침을 무력화시킨다.
 
‘화림’의 확신에 찬 “100%” 이 말은 모든 이야기의 개연성을 그대로 규정지어버리는 힘이 있다. 무당의 자신감 넘치는 점사풀이가 이미 무속이 생활이 된 한국 사람들을 속절없이 설득시키고, 납득시킨다.

“음과 양, 과학과 미신, 그 사이에 있는 사람. 나는 무당 이화림이다"

이 자신에 넘치는 선언이야말로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가장 큰 무속의 힘이 아닐까 싶다. 무당의 한 마디보다 더 확실한 것이 없는 불확실한 요즘 같은 시대는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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