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언어는 무엇일까. 군사도 아니고 돈도 아니다. 때로는 한 그릇의 국수이고, 한 점의 오리구이이며, 한 잔의 차(茶)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그것을 알았다. 공자가 ‘논어(論語)’에서 “예(禮)는 화(和)를 귀하게 여긴다(禮之用 和爲貴)”고 했듯이, 중국 문명은 칼보다 먼저 식탁 위에서 상대를 읽고 관계를 조율해 왔다.
이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에서도 중국은 다시 한 번 ‘식탁 외교(food diplomacy)’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지막 업무 오찬 메뉴로 내놓은 음식은 뜻밖에도 화려한 황실 요리가 아니었다. 쓰촨식 닭고기 볶음인 궁바오지딩(宮保雞丁)이었다. 겉으로 보면 소박한 대중 음식이다. 그러나 중국 외교에서 음식은 결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암호이며 메시지다.
궁바오지딩은 미국 사회에 가장 깊게 뿌리내린 중국 음식 가운데 하나다. 19세기 미국 철도 공사 현장과 광산, 농장으로 건너간 중국인 노동자들이 만들고 먹던 음식이었다. 매콤하면서도 친숙한 맛은 미국식 중화요리의 상징이 됐다. 중국은 바로 그 음식을 트럼프 대통령 앞에 다시 올려놓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언어유희다. 트럼프의 중국식 이름은 ‘촨푸(川普)’인데, 쓰촨요리는 ‘촨차이(川菜)’다. 중국 특유의 중의적 문화 코드가 담긴 셈이다. 거칠고 직선적인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과 화끈한 쓰촨 요리를 절묘하게 겹쳐 놓은 것이다. 외교와 유머가 동시에 들어 있었다. 특히 이번 트럼프 대통령 환영 국빈 만찬 메뉴는 중국 특유의 세심한 ‘식탁 외교’가 얼마나 정교한가를 잘 보여주었다. 단순히 중국 전통 요리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과 미국식 취향, 그리고 서구식 식문화를 동시에 고려한 흔적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국빈만찬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요리 가운데 하나인 베이징 오리구이(北京烤鴨)가 포함됐다. 오리를 통째로 구워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인 베이징 오리구이는 외국 정상들을 위한 중국 국빈 연회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 메뉴다. 황실의 음식이자 중국 수도 베이징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광둥식 랍스터 수프(金湯龍蝦), 바삭한 소고기 구이(香酥牛肉), 머스터드 소스를 곁들인 저온 조리 연어(香芥汁三文魚) 등이 차려졌다. 또 중국식 바삭 군만두(冰花水煎包), 소라 모양 페이스트리(海螺酥), 그리고 이탈리아식 디저트 티라미수까지 등장했다.
메뉴 구성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베이징 오리구이는 중국의 전통과 황실 문화를 상징했고, 광둥식 해산물 요리는 개방과 국제성을 의미했다. 연어와 머스터드 소스는 서양식 입맛을 배려한 것이었으며, 티라미수는 유럽식 감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장치였다. 동서양의 맛을 충돌시키지 않고 조화롭게 엮어낸 것이다. 식탁 위에는 사실상 오늘날 미중 관계가 담겨 있었다. 경쟁하지만 공존해야 하고, 충돌하지만 완전히 등을 돌릴 수는 없는 두 초강대국의 현실 말이다.
만찬장 분위기 역시 세심했다. 음악은 미국 노래와 중국 노래를 절반씩 섞어 배치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유세 때 자주 사용했던 ‘YMCA’가 흘러나오자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트럼프 개인의 정치 스타일과 취향까지 철저히 연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상대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심리적 거리를 좁히려는 전형적인 중국식 환대였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上兵伐謀)”이라고 했다. 중국 외교는 때로 미사일보다 만찬 메뉴를 더 정교하게 설계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식탁 외교가 트럼프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올해 초 이재명 대통령이 방중했을 때 시진핑 주석은 국빈만찬 자리에서 베이징식 짜장면을 직접 권했다. 한국인이 익숙한 검은 춘장의 달콤한 짜장면이 아니라, 중국 북방 특유의 짭조름하고 담백한 자장면이었다. 시 주석은 “한국의 짜장면과 어떻게 다른지 한번 맛보시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한마디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짜장면은 원래 중국 산둥 노동자들이 인천과 서울에 전한 음식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완전히 다른 문화로 재탄생했다. 중국은 그것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짜장면은 갈등과 경쟁 속에서도 한중 양국이 공유하는 문명의 기억이다. 시진핑은 바로 그 기억을 식탁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맞이할 때 중국의 메뉴는 또 달라진다. 중국은 러시아 정상들에게 상대적으로 육류와 진한 풍미가 강한 북방 요리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훈제 오리, 양고기 요리, 철판 해산물, 진한 국물 계열 음식들이 자주 등장했다. 여기에 러시아가 좋아하는 보드카와 중국 전통주 바이주(白酒)를 함께 배치한다. 이는 단순한 접대가 아니다. “북방 대륙국가끼리의 결속”이라는 지정학적 상징이다.
실제로 중러 정상회담의 만찬장은 종종 유라시아 대륙 질서를 상징하는 공간처럼 연출된다. 해산물보다 육류 비중이 높고, 남방의 섬세한 광둥요리보다는 북방의 중후한 맛이 강조된다. 그것은 중국이 러시아를 ‘해양세력’이 아니라 같은 대륙 문명권으로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엠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는 분위기가 또 달라졌다. 프랑스는 음식 자체를 국가 정체성으로 여기는 나라다. 중국은 마크롱에게 광둥식 해산물과 와인 페어링을 강조하며 섬세함과 예술성을 부각했다. 프랑스 와인과 중국 차 문화의 접점을 자연스럽게 연결했고, 디저트 구성도 훨씬 유럽식에 가까웠다. 이는 “중국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문명국가”라는 메시지였다. 마크롱 역시 루브르와 베르사유의 문화외교를 잘 아는 인물이다. 중국은 그 점을 정확히 읽었다.
독일 총리들과의 만찬에서는 더욱 실용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독일은 화려함보다는 질서와 균형, 안정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중국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장식적인 음식보다 비교적 정갈하고 구조적인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담백한 생선요리, 버섯과 채소 중심의 건강식, 절제된 디저트가 대표적이다. 독일 산업과 제조업의 특성을 고려한 “신뢰와 안정”의 식탁인 셈이다.
사실 중국 외교에서 음식은 단순한 접대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와 문명, 경제와 전략, 심리와 상징이 동시에 작동하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다. 중국은 5000년 동안 ‘길목의 문명’이었다. 실크로드를 지나가는 상인과 사신, 승려와 군대를 맞이하면서 중국은 상대를 이해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음식이 있었다.
‘도덕경(道德經)’에는 “큰 나라는 낮은 곳에 머문다(大國者下流)”는 말이 나온다. 강한 나라일수록 상대를 품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때로 그 철학을 만찬 테이블 위에서 구현하려 한다. 물론 현실의 미중 관계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반도체, AI, 대만, 남중국해, 관세 문제를 둘러싼 전략 경쟁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충돌하는 국가들도 결국 식탁에서는 상대의 문화를 존중하려 한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베이징 오리를 먹고, 이재명 대통령은 베이징식 짜장면을 맛보고, 푸틴은 중국식 양고기를 곁들인다. 마크롱은 중국 차를 음미하고, 독일 총리는 담백한 광둥식 생선요리를 앞에 둔다. 국제정치는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인간은 함께 밥을 먹을 때 가장 오래 기억한다. 어쩌면 세계 질서는 정상회담 테이블보다 그 뒤편 만찬장에서 조금씩 바뀌는지도 모른다.
궁바오지딩 한 접시와 짜장면 한 그릇 사이에서, 세계는 오늘도 조용히 협상하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