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젠슨 황의 17일이 보여준 AI 세계지도

  • 아시아 AI 공급망 순례가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

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지난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세계 기술업계의 시선은 대만과 한국에 집중됐다. 표면적으로는 대만에서 열린 COMPUTEX 2026과 엔비디아의 각종 신제품 발표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조금 더 큰 시각에서 보면 진짜 뉴스는 전시회가 아니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이동 경로였다. 

그는 5월 23일 대만에 도착해 6월 4일까지 약 13일간 머문 뒤 곧바로 한국으로 이동했다. 이후 한국에서 주요 기업 총수들과 연쇄 회동을 가진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모두 합치면 약 17일에 걸친 아시아 순방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글로벌 기업 CEO의 통상적인 해외 출장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17일이 AI 시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지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산업혁명 시대에는 철도가 산업지도를 결정했다. 20세기에는 석유가 세계 경제의 혈액이었다. 그래서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 같은 전략적 요충지가 국제정치의 중심에 섰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는 무엇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혈관 역할을 할까. 

답은 AI 공급망이다. 젠슨 황의 17일은 바로 그 AI 공급망을 따라 움직인 여정이었다. 그의 첫 번째 목적지는 대만이었다. 대만은 인구 2300만 명의 섬나라에 불과하지만 AI 산업에서는 사실상 세계 최대의 전략 요충지다. 엔비디아는 세계 최고의 AI 반도체 설계 기업이지만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는다. 최신 GPU 대부분은 TSMC가 제조한다. AI 서버는 폭스콘, 콴타컴퓨터, 위스트론 등 대만 기업들이 생산한다.

오늘날 AI 산업의 심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지만, 그 심장이 실제로 뛰게 만드는 제조 역량은 대만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젠슨 황은 COMPUTEX 기조연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급망 경영진들과의 회동에 사용했다. 그는 TSMC의 웨이저자 CEO를 비롯해 폭스콘, 콴타컴퓨터, 에이서, 에이수스, MSI, 기가바이트 등 주요 기업들을 잇따라 만났다. 

이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과거 세계 자동차산업의 중심에는 디트로이트가 있었다.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에는 뉴욕이 있었다. 오늘날 AI 산업의 제조 중심에는 대만이 있다. 실제로 젠슨 황은 이번 방문에서 대만을 ‘AI 혁명의 진앙지’라고 표현했다. 그의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현재 세계가 사용하는 첨단 AI 반도체의 상당 부분은 대만을 거친다.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 역시 대부분 대만 공급망을 통과한다. 생성형 AI 경쟁, AI 에이전트 경쟁, 피지컬 AI 경쟁의 출발점 역시 결국 대만의 생산능력이다.
이 때문에 최근 수년간 대만해협 문제가 세계 경제의 핵심 이슈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흔히 미중 패권경쟁의 문제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계 산업 공급망의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대만의 반도체 생산이 멈춘다면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한국도 동시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만은 이제 지정학적 의미의 해협을 넘어 경제안보적 의미의 'AI 대만해협'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대만 방문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젠슨 황의 메시지였다. 그는 GPU를 이야기하기보다 AI Factory를 이야기했다. 그는 AI를 단순한 소프트웨어 혁신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혁명 인프라라고 규정했다. 전기와 철도가 산업혁명기의 핵심 인프라였다면, 앞으로는 AI 데이터센터와 AI 팩토리가 새로운 국가 인프라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엔비디아의 정체성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엔비디아는 반도체 기업이었다. 오늘날 엔비디아는 AI 산업체제 전체를 설계하는 기업이 되고 있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 냉각시스템, 네트워크, 로봇, 자율주행, 디지털트윈을 하나의 거대한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만 일정을 마친 젠슨 황은 곧바로 한국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 방문을 단순한 고객사 관리 차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AI 공급망 관점에서 보면 한국 방문은 대만 방문 못지않게 중요했다. 만약 대만이 AI의 생산기지라면 한국은 AI의 기억장치 역할을 담당하는 나라다. 오늘날 AI 반도체 경쟁의 핵심은 HBM이다. GPU가 AI의 두뇌라면 HBM은 기억력이다. 아무리 뛰어난 두뇌도 기억력이 부족하면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현재 AI 산업에서 HBM은 사실상 전략물자 수준의 중요성을 갖는다.
엔비디아가 세계 AI 시장을 주도하는 배경에도 한국 메모리 산업의 역할이 존재한다. 그래서 젠슨 황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경영진을 만났다. 차세대 HBM4와 HBM5, AI 데이터센터, 첨단 패키징, 차세대 메모리 기술이 주요 의제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한국 방문이 의미 있는 이유는 반도체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현대자동차, LG, 네이버 등 다양한 산업의 기업들과도 접촉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과거 엔비디아가 한국을 찾았을 때 관심사는 주로 반도체 공급망이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자동차, 제조업, 로봇, AI 서비스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이는 AI 산업의 무게중심이 생성형 AI에서 피지컬 AI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AI의 다음 전장은 채팅창 안이 아니다. 공장이다. 자동차다.물류창고다.발전소다. 항만이다. 로봇이다. 현실 세계 전체가 AI의 새로운 시장이 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분야에서 한국은 독보적인 강점을 갖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강국이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철강, 전자산업, 로봇산업이 동시에 존재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AI가 현실 세계로 들어갈수록 한국 제조업의 전략적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젠슨 황이 한국에서 본 것은 단순한 고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AI가 현실 세계와 결합할 수 있는 거대한 실험장을 본 것이다. 

필자는 이번 17일의 여정을 보며 하나의 삼각형을 떠올렸다. 미국-대만-한국으로 이어지는 AI 황금삼각형이다. 미국은 설계를 담당한다.대만은 생산을 담당한다. 한국은 메모리와 산업 응용을 담당한다. 오늘날 세계 AI 산업은 사실상 이 삼각축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중국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고 유럽도 AI 주권을 강조하고 있으며 중동 역시 AI 강국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AI 산업의 핵심 공급망은 미국·대만·한국이라는 삼각축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AI를 더 이상 IT 산업의 한 분야로 보아서는 안 된다. AI는 이제 국가 기간산업이다. 도로와 철도, 공항과 항만이 국가 인프라였던 것처럼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GPU와 AI 네트워크도 국가 인프라가 되고 있다. 둘째, 메모리 강국에서 AI 산업 강국으로 진화해야 한다. HBM 공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플랫폼, AI 서비스, AI 에이전트, 피지컬 AI 영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제조 AI와 피지컬 AI를 국가전략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국은 제조업이라는 강력한 기반을 이미 갖고 있다. 이 강점을 AI와 결합할 수 있다면 세계에서 가장 먼저 'AI 제조강국'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 넷째, AI 공급망 관점에서 대만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대만은 생산의 허브이고 한국은 메모리와 산업 응용의 허브다. 

양국은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운명공동체이기도 하다. 21세기 산업경쟁력의 상당 부분은 AI 공급망 협력 수준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젠슨 황의 17일은 단순한 기업인의 해외 출장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AI 시대의 새로운 실크로드를 보여준 여정이었다. 20세기 세계지도가 석유와 해상교역로를 중심으로 그려졌다면, 21세기 AI 시대의 세계지도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과 AI 공급망을 중심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다. 그 지도 위에서 대만은 생산의 관문이고 한국은 메모리와 제조혁신의 거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지도 속의 한 지점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지도를 함께 설계하는 국가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젠슨 황의 17일은 한국에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향후 5년, 어쩌면 향후 10년 한국 산업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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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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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챗GPT]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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