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영·정경호 커플의 결별 소식이 전해진 뒤, 최수영의 개인 계정 게시물에는 5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결별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수백개 수준이었던 게시물이다. 댓글 창에는 "내가 이별한 것 같다", "너무 아쉽다", "두 사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말들이 이어졌다. 국내 팬뿐 아니라 해외 팬들도 각자의 언어로 아쉬움을 남겼다.
2012년 교회 모임에서 인연을 맺고, 2014년 열애 사실을 인정한 두 사람.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공개 연애를 이어오며 연예계 대표 장수 커플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이별의 파장도 컸다. 온라인에서는 두 사람의 언팔로우, 과거 발언, 결별을 예언하는 무속인의 말까지 재소환됐다. 이별은 발표되는 순간 하나의 추리물이 됐다.
대중의 반응은 크게 둘로 갈린다. 한쪽에서는 "슬프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남의 연애에 왜 저렇게까지 몰입하냐"고 말한다. 얼핏 보면 전자는 과몰입한 사람, 후자는 냉정한 관찰자처럼 보이지만 후자도 완전히 바깥에 있는 건 아니다.
팬은 연예인의 연애를 구경한다. 비팬은 그 팬의 반응을 구경한다. 한쪽은 남의 사랑에 마음을 얹고, 다른 한쪽은 남의 감정에 판단을 얹는다. "나는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이 사건을 지나치지 못한다면, 그 역시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는 대중이 미디어 속 인물과 맺는 일방향적 친밀감을 뜻한다.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반복적으로 얼굴을 보고, 말을 듣고, 관계의 장면을 접하면 정서적 친숙함이 생긴다. 연예인의 공개 연애는 이 친숙함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한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관계의 이미지를 보기 때문이다.
짧은 만남은 뉴스거리지만, 오래 지속된 관계는 서사가 된다. 대중은 그 이야기에 자신이 믿고 싶은 결말을 붙인다. 오래 만났으니 결혼할 것이라는 기대, 조용히 버틴 사랑은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 연예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관계가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들…최수영과 정경호의 결별은 대중이 관계 위에 얹어둔 결말을 건드렸다.
누군가에겐 이해 못할 반응이지만, "내가 이별한 것 같다"는 말은 팬심의 과장이 아닐 수 있다. 그 말에는 대리 상실감이 들어 있다. 내가 직접 만난 사람은 아니지만, 오래 보아온 관계가 끝났다는 허전함. 내가 믿고 싶었던 사랑의 형태가 다시 흔들렸다는 생각. 남의 이별이 자기 안의 어떤 기억을 건드렸을 수 있다.
이런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의 연애에 왜 슬퍼", "연예인 걱정을 왜 해", "저런 데 감정 쓰는 게 신기하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들은 자신이 팬덤의 감정에서 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남들은 연예인 사생활에 휘둘리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태도는 커뮤니케이션 학자 W.P. 데이비슨(W. Phillips Davison)이 말한 제3자 효과(Third-person Effect)와 닮아 있다. 사람은 미디어가 자신보다 타인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해 "나는 괜찮은데, 남들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이 거리 두기는 때로 우월감이 된다. 팬의 슬픔을 과몰입으로 부르고, 자신의 냉소를 이성으로 부른다. 하지만 팬의 감정만 관람인 건 아니다. 팬은 연예인을 보고, 비팬은 팬을 본다. 팬의 과몰입만큼이나, 비팬의 냉소도 하나의 관람 방식이다.
매체는 이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안다. 결별 사실만으로는 기사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결별은 곧바로 단서 찾기로 바뀐다. 언제부터 서로를 언팔로우했는지, 과거 방송에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주변인의 농담이 복선이었는지, 누가 결별을 예언했는지까지 기사화된다.
사람들이 호기심만으로 이런 기사를 누른다고 보긴 어렵다. 이별은 본래 이유를 요구하는 사건이다. "헤어졌다"는 말은 너무 짧고, 사람은 짧은 설명을 견디지 못한다.
사회심리학자 아리에 크루글란스키(Arie Kruglanski)가 말한 인지적 종결 욕구(Need for Cognitive Closure)는 모호함을 줄이고 확실한 답을 얻고 싶어 하는 마음의 경향을 뜻한다. 불확실한 사건 앞에서 원인을 찾기 위해 대중은 언팔로우, 과거 발언, 표정, 일정 같은 파편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려 한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언제부터 흔들렸는지, 어떤 장면을 놓쳤는지.
다만 관계는 외부인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사랑이 식어서 끝나는 관계도 있고, 사랑만으로 유지되지 않아 끝나는 관계도 있다. 바쁜 일정, 삶의 방향, 반복된 거리감, 말하지 못한 피로, 서로를 위해 놓는 선택까지. 바깥에서 보이는 단서는 대부분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중과 매체는 계속 원인을 찾는다. 결별의 진실을 알고 싶어서라기보다, 설명 없는 결말을 견디기 어려워서다.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과거를 뒤진다. 존중과 궁금증, 슬픔과 관음, 위로와 소비…연예인의 이별을 둘러싼 모순은 이런 양가감정에서 나온다.
우리는 왜 남의 관계에 결말을 기대했고, 그 기대가 어긋났을 때 마음이 움직였을까. 왜 관심 없다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들여다봤을까.
연예인의 이별은 팬만 움직이지 않는다. 팬의 슬픔도, 그 슬픔을 바라보는 냉소도, 그것을 다시 팔아내는 매체도 움직인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남은 사람들은 한동안 그 이별 주변을 맴돈다.
어쩌면 우리가 오래 지켜본 건 두 사람의 사랑만이 아니었다. 남의 사랑에 기대를 걸고, 남의 이별로 기대가 무너지는 장면까지 확인하려는 우리 자신의 얼굴이었을지 모르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