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코너는 출연자 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낙인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방송에 드러난 장면과 선택, 대화의 흐름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에서 반복되는 보편적 심리와 관계 구조를 해석합니다.
MBC에브리원·E채널 '연애기숙학교 돌싱N모솔'은 다시 사랑하고 싶은 돌싱녀들과 처음 사랑해보려는 모솔남들이 연애기숙학교에서 사랑을 배워가는 연애 리얼리티다.
프로그램은 연애의 끝을 겪어본 사람과 연애의 시작조차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만날 때, 감정의 속도와 표현 방식이 얼마나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차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은 낙화유수다. 1983년생, 44세 모태솔로. 특전사 장교 출신, 구조 특채로 임용된 소방관, 합기도 4단, 유도 4단, 지도사 자격까지 갖춘 남자. 남자들의 세계에서 '멋진 형님'으로 불릴 이력이다. 강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어 보인다.
그런데 연애 앞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서툴다. 그는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랑의 끝장면부터 상상하는 듯했다.
낙화유수의 말은 처음부터 비장했다. 핑퐁과의 관계가 깊어지기 전부터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핑퐁에게 자녀가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내가 지켜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핑퐁의 눈물을 본 뒤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다. 사랑의 언어라기보단 출정 선언처럼 들리는 순간이었다.
그 마음이 가짜가 아니기 때문에 상황은 더 미묘해진다. 차라리 가짜라면 과장된 플러팅, 방송용 멘트, 자기연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낙화유수는 지나치게 진심이었다. 너무 진심이라서 상대가 숨 쉴 틈을 남기지 않았다.
낙화유수를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회피다. 흔히 '회피형'이라고 하면 차갑고 무심한 사람을 떠올지만, 회피는 무관심의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피하기 위해 일로 도망간다. 어떤 사람은 감정을 피하기 위해 강해진다. 어떤 사람은 친밀감을 피하기 위해 책임감이라는 갑옷을 입는다. 회피적 애착 유형은 친밀감과 의존 욕구를 부정하고, 정서적·인지적 거리를 늘리며, 위협이나 애착 관련 감정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방송 장면만으로 낙화유수의 유형을 단정할 순 없지만, 그의 말과 선택에는 책임의 말이 앞서는 장면이 반복됐다. 그는 누구보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다만 사랑을 감정의 교환으로 다루는 데는 서툴러 보인다. "보고 싶다" 대신 "지켜주겠다"고 말하고, "함께 알아가고 싶다" 대신 "목숨을 바치겠다"고 말한다. 감정으로 다가가야 할 순간, 그는 임무로 진입한다.
이런 행동 패턴은 낙화유수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특전사, 소방관, 무술. 낙화유수가 자신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대부분 강함, 훈련, 통제, 보호, 헌신과 관련돼 있다. 그는 이성에게 자신 없는 모습을 마주하기보다 자신이 유리한 세계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남성들의 세계, 규율의 세계, 몸을 단련하는 세계, 국가와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세계. 그곳에서는 감정의 서투름이 문제 되지 않는다. 자제력과 인내심은 미덕이 된다.
연애는 다르다. 구조대원이 출동해 상대를 구하는 일이 아니다. 현실의 연애에서 상대가 원하는 건 목숨이 아니라 대화일 때가 많다. 희생이 아니라 조율이다. "내가 다 감당하겠다"가 아니라 "당신은 지금 무엇이 불편하냐"는 질문이 필요하다.
낙화유수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듯 보였지만, 상대가 실제로 원하는 것을 듣는 데 서툰 장면도 있었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핑퐁의 말을 기억하지 못한 채 초콜릿을 사오고, 핑퐁이 먹지 않자 서운해하던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보고 웃어야 하고, 내가 사준 건 다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을 하자 핑퐁은 "정신 차리세요"라고 받아쳤다.
웃긴 장면처럼 보이지만 낙화유수의 모습을 드러낸다.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 안에 상대의 실제성이 들어오지 못할 때가 있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부담스러워하는지, 어떤 속도를 원하는지보다 '내가 이렇게까지 준비했다'는 마음이 중요해진다. 그럴 경우 거절은 취향 차이가 아니라 자기 마음 전체가 거절당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키워드는 거절 민감성(Rejection Sensitivity)이다. 심리학자 제럴딘 다우니(Geraldine Downey)와 스콧 펠드먼(Scott I. Feldman)은 거절을 불안하게 예상하고, 쉽게 지각하며, 과하게 반응하는 경향으로 이를 설명했다. 거절 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애매한 행동도 의도적 거절로 받아들이기 쉽고, 이는 친밀한 관계의 만족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낙화유수의 '양보' 역시 미덕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그는 호감 가는 여성이 있어도 다른 남성 출연자에게 "양보해야겠다"고 말하곤 했다. 겉으로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두려움이 보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갔다가 거절당하는 것보다, 멀리서 물러나는 편이 더 안전하다. 내가 선택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양보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키워드는 자기희생 도식(Self-Sacrifice Schema)이다. 타인의 욕구를 과도하게 우선하고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억압하는 패턴을 뜻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이타적이라고 느끼지만, 동시에 인정받지 못하면 허탈감과 상실감을 경험하기 쉽다.
낙화유수의 사랑은 이 자기희생 도식과 맞닿아 있는 듯했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자신을 갈아 넣을 준비를 한다. "제가 가진 모든 걸 다 줄 겁니다"라는 말은 낭만적이지만 위험하다. 건강한 사랑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는 일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되, 나도 사라지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낙화유수에게 사랑은 '나를 지우는 방식으로 나를 증명하는 일'처럼 보였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내가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는지로 증명된다. 내 아이를 포기하겠다, 당신의 아이만 돌보겠다, 목숨을 바치겠다, 더 열심히 살아 역량을 키우겠다. 문장만 보면 숭고하다. 하지만 관계의 관점에선 상대에게 무거운 빚을 지우는 말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면서 책임감과 희생이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낙화유수의 경우 책임질 대상을 찾아 사랑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랑이 먼저 오고 책임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희생의 무대를 발견했을 때 사랑이 확신으로 바뀌는 사람. 핑퐁의 눈물이 그에게 결정적 계기가 된 것도 그래서였을지 모른다. 그녀가 웃을 때보다 울 때 그의 마음은 더 확고해졌다. 그 순간 그는 구조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 키워드는 과잉돌봄이다. 도움이 상대의 필요보다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 확인을 위해 작동할 때 관계는 부담스러워진다. 낙화유수도 핑퐁을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고 말하지만, 핑퐁은 그런 걸 부탁한 적이 없다. 낙화유수는 강요하려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의 비장함은 상대에게 감정적 채무감을 만든다.
낙화유수가 '우리 자기님', '내 마누라' 같은 표현을 너무 이른 시점에 사용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핑퐁은 낙화유수의 과속 플러팅에 부담을 느꼈고, 이후 조지를 선택했다. 낙화유수 입장에서는 애정 표현이었을 수 있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합의되지 않은 관계에 이름표를 붙이는 행위였다. 그는 관계를 확인하기 전에 관계의 호칭부터 앞당겼다.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우니, 말을 통해 관계를 확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낙화유수의 낭만적 성향도 살펴봐야 한다. 그는 이상주의적 여성관을 갖고 있다. 맑고 청초하고, 리액션이 좋고, 자신에게 웃어주고, 자신이 사준 것을 잘 먹는 여성. 키 큰 여성에게 끌린다는 고백도 했다. 누구나 취향은 있지만, 이상형이 사람을 만나는 통로가 아니라 사람을 평가하는 틀이 될 땐 관계 맺기는 더 어려워진다.
연애에 대한 낭만적 믿음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낭만적 믿음이 관계 만족과 헌신에 긍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반면 충족되지 못한 낭만적 기대는 만족도와 헌신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낭만은 관계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지만, 현실의 상대를 낭만의 배역으로 밀어 넣는 순간 폭력이 된다.
그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화장실에 갔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한 장면도 상징적이다. 우스갯소리처럼 지나간 말이지만, 그 안에는 이상화된 대상을 사랑해온 흔적이 담겨 있다. 여성은 욕구와 피로와 거절과 짜증을 가진 현실의 인간이다. 그런데 낙화유수의 마음속 여성은 너무 깨끗하고 상징적이다.
낙화유수는 좋은 사람이다. 성실하고, 헌신적이고, 책임감 있고, 위험한 일을 감당해왔다. 다만 좋은 사람이 좋은 연인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자신의 좋은 마음을 상대가 당연히 감동해야 한다고 믿는 순간, 좋은 마음은 관계를 무겁게 만든다.
낙화유수에게 필요한 건 더 큰 희생도, 더 많은 역량도 아닐 수 있다. 이미 강하다. 그에겐 약해지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지켜주겠다" 대신 "나 지금 떨린다"고 말하는 능력. "목숨을 바치겠다" 대신 "천천히 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능력. "내가 다 감당하겠다" 대신 "당신은 어떤 속도가 편하냐"고 묻는 능력.
낙화유수의 순애보는 마음이 부족해서 실패한 게 아니다. 마음이 너무 앞섰고, 책임이 너무 빨랐고, 희생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을 너무 오래 상상했고, 너무 오래 혼자 간직했고, 너무 오래 남성들의 세계와 책임의 세계로 우회해왔다. 그래서 드디어 사랑 앞에 섰을 때, 첫 문장부터 마지막 장면을 꺼내버렸다.
낙화유수에게 필요한 사랑은 목숨을 바칠 사랑이 아니다.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다. 비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 누군가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 자신이 사준 초콜릿을 먹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사랑. 상대가 웃지 않아도, 장난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바로 받아주지 않아도, 그 사람의 속도와 취향과 거절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랑.
낙화유수의 이야기는 모태솔로의 서툰 고백담이 아니다. 책임감으로 감정을 회피해온 사람이 처음으로 친밀감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야기의 첫 페이지다. 그에게 다음 사랑이 온다면, 그가 꺼내야 할 말은 "내가 지켜줄게"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에겐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어려울 한 문장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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