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 이야기] 250년 역사의 미국은 5000년 역사의 페르시아 제국, 이란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①

  • 제1부 : 미국은 왜 이란을 오판했는가

2026년 6월 15일 미국과 이란은 106일 동안 이어진 전쟁의 종전을 선언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미국이 승리한 전쟁처럼 보인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과 수십 년 동안 경제 제재를 받아 온 이란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단과 스텔스 전투기, 위성과 인공지능 기반 정보체계를 동원했고, 이스라엘 역시 중동 최강 수준의 군사력을 투입했다. 반면 이란은 오랜 경제 제재와 국제적 고립 속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늘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전쟁은 무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나라가 가진 역사와 문화, 종교와 정신, 그리고 집단적 기억이 전쟁의 향방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전쟁이 그랬고, 아프가니스탄전쟁이 그랬으며, 이라크전쟁이 그랬다. 그리고 이번 이란전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전쟁을 바라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미국이 이란이라는 나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이란을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등장한 신정국가 정도로 인식했다. 그러나 실제 이란은 단순한 신정국가가 아니다. 이란은 페르시아다. 그리고 페르시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인한 문명 가운데 하나다. 미국은 건국 250년의 젊은 나라다. 반면 이란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함께 성장해 온 5000년 역사의 문명국가다.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이란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제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강하지만 젊고, 이란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오래되었다. 이번 전쟁은 어쩌면 현대 초강대국과 고대 문명의 충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란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키루스 대제를 이해해야 한다. 기원전 6세기 등장한 키루스 2세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었다. 그는 메디아와 리디아를 통합하고 바빌론을 정복해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다. 오늘날 미국인들에게 조지 워싱턴이 건국의 아버지라면, 이란인들에게 키루스 대제는 국가의 창건자이자 문명의 설계자다. 특히 그를 위대한 군주로 만든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관용이었다. 그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에게 귀환을 허락하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지원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를 해방자로 기억한다. 구약성경에서조차 키루스는 특별한 군주로 기록된다.

당시 대부분의 제국은 피정복 민족의 종교를 억압하고 문화를 파괴했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달랐다. 각 민족의 종교와 전통을 인정했다. 오늘날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키루스 원통' 역시 이런 통치 철학을 보여준다. 이란인들이 자신을 단순한 국가가 아니라 문명을 건설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군사력을 상대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수천 년 동안 축적된 문명적 자존심과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페르시아의 또 다른 역사적 DNA는 지구력이다. 로마는 서양 문명의 상징이지만, 로마 역시 페르시아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파르티아 왕조와 사산조 왕조를 거치며 페르시아와 로마는 거의 700년에 걸쳐 경쟁했다. 카르헤 전투에서 로마의 명장 크라수스는 참패했고, 트라야누스 황제는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했지만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이후 동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역시 수세기 동안 세계 질서를 양분하며 맞섰다. 승자는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페르시아가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이란인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는 “로마도 우리를 굴복시키지 못했는데 미국이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겠는가”라는 역사적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힘은 군사력만이 아니었다. 상업과 외교 역시 강점이었다. 중국의 장안에서 출발한 비단과 종이, 인도의 향신료와 보석, 로마의 금과 은은 모두 페르시아를 통과했다. 실크로드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라 문명 교류의 대동맥이었다. 페르시아 상인들은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이해하며 동서 문명을 연결했다. 오늘날 이란 외교가 겉으로 보기에는 강경하지만 실제 협상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감정보다 계산을 중시한다. 전쟁을 하더라도 결국은 협상으로 끝나야 한다는 사실을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배워온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가장 큰 실수는 이란을 현재의 이란으로만 본 것이었다. 미국은 이란을 1979년 혁명 이후의 국가로 보았다. 그러나 이란은 혁명 이전에도 존재했고 혁명 이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미국은 이란을 종교국가로 보았다. 그러나 이란은 종교국가 이전에 문명국가다. 미국은 이란을 중동의 지역 강국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란은 자신을 페르시아 문명의 계승자로 인식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국가는 패배할 수 있고 정권도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지나갔고, 아랍 제국도 지나갔으며, 몽골 제국도 지나갔다. 영국도 러시아도 지나갔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106일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진짜 질문이 시작된다. 도대체 무엇이 이란을 이렇게 강하게 만들었는가. 왜 수많은 침략과 제재, 전쟁과 혁명을 겪고도 이 나라는 무너지지 않았는가. 그 답은 단순히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있지 않다. 그 답은 조로아스터의 불꽃과 시아파의 순교 정신, 그리고 1979년 혁명이 만들어낸 독특한 국가 시스템 속에 있다.

미국은 미사일을 보았지만 이란은 역사를 보았다. 미국은 4년 단위의 선거를 생각했지만 이란은 수백 년 단위의 문명을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이번 전쟁의 본질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페르시아는 남는다. 키루스 대제의 나라로, 로마와 맞섰던 나라로, 실크로드를 지배했던 나라로, 그리고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문명국가로 말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엥겔라브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시민들이 이란 국기와 헤즈볼라 깃발을 들고 미국과의 종전 협상을 지지하고 있다 사진UPI·연합뉴스
지난 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엥겔라브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시민들이 이란 국기와 헤즈볼라 깃발을 들고 미국과의 종전 협상을 지지하고 있다. [사진=UPI·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