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현장의 비명을 외면하는 '최저임금의 역설'

  •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사진소상공인연합회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사진=소상공인연합회]

지불할 능력이 없는 이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상생이 아닌 폭거다. 대한민국 경제의 뿌리를 떠받치는 790만 소상공인들이 마주한 잔인한 현실이 바로 그렇다.

지난 18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소상공인들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2027년도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 안건이 끝내 부결됐다. 법령에 명시된 제도적 보완책마저 노동계의 거센 반대와 정치적 논리에 밀려 무산된 이번 결정은 사선의 절벽 끝에 매달려 있는 소상공인들을 외면한 처사다. 강력한 유감을 넘어 참담한 허탈감을 지울 수 없다.

지금 골목상권의 소상공인들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잔인한 '3고(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중기부의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소상공인 월평균 수익은 겨우 191만원 수준이다. 또한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의 '자영업과 자영업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월 83만원도 못 버는 사업체가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지경이니 2024년 폐업자 수는 100만8282명, 올해는 그보다 더 많은 소상공인들이 폐업 절벽으로 내몰릴 위기다.

이 상황을 소상공인들은 고용을 줄이고 자기 근로시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이달 공개한 전국 소상공인 700명을 대상으로 한 '최저임금 인상 관련 소상공인 영향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년간 소상공인 업종의 정규직 종사자 수는 연평균 5.9% 감소했다. 특히 이·미용실(-20.63%)과 커피숍(-12.64%) 등 원가 압박이 심한 소상공인 업종에서 정규직 감원 경향이 뚜렷했다.

직원이 떠난 자리는 고스란히 사업주 몫이 됐다. 근로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연평균 3년간 3.39% 감소(일 6.1시간→일 5.5시간)하며 '쪼개기 알바' 형태로 변모한 반면 대표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연평균 0.33% 증가하며 노동 강도가 심화되는 '근로시간 양극화' 현상이 확인됐다.

내수 침체로 매출은 말 그대로 '토막'이 났는데 매달 숨통을 조여 오는 임대료와 치솟는 원자재 가격, 감당하기 힘든 공공요금 등 고정비용은 폭탄이 되어 돌아온다. 숨만 쉬어도 비용이 나가는 구조다. 상황이 이런데도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조건 오르기만 하는 최저임금은 소상공인들에게 상생의 제도가 아닌 생존을 위협하는 약탈적 칼날이 되고 있다.

이 지독한 모순을 시정할 수 있는 해결책 중 하나가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었다. 이미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에는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해놨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 역시 지역별, 업종별, 숙련도별로 최저임금을 유연하게 스펙트럼화해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고 있다. 유독 대한민국만 현장의 객관적 데이터와 실태를 묵살한 채 '국가 단일 체계'라는 철밥통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노동계가 제시한 '2027년도 최저임금 1만2000원(올해 대비 16.3% 인상)' 요구안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지불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이나 중기업 기준에나 맞출 법한 터무니없는 금액을 영세 골목상권에까지 일률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심보'는 역설적으로 왜 최저임금 구분제도가 시행돼야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높은 임금을 받고 싶다면 그 임금을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 노조와 영세 소상공인의 판을 분리해 주는 것이 시장 원리에도 맞고 상식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줄 돈이 없는데 무조건 올려라'는 식의 강요가 불러온 결과는 참혹하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 소상공인들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직원을 내보내거나 가족 노동을 선택하고 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최저임금이 오히려 일자리를 날려버리는 '최저임금의 역설'이 현장을 지배한 지 오래다. 6월 9일 소상공인연합회를 중심으로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소상공인 3000여 명이 뼛속까지 시린 목소리로 구분 적용을 외쳤던 이유는 "살려 달라"는 생존의 절규였다.

이번 구분 적용 무산으로 발생할 모든 파국의 책임은 현장의 비명을 철저히 외면한 최저임금위원회에 있다. 이제 공은 금액 심의 단계로 넘어갔다.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는 지금이라도 소상공인의 실질적인 '지불 능력'을 절대적인 평가지표로 삼아야 한다. 이 가슴 절절한 외침마저 끝끝내 외면당한다면 소상공인발(發) 고용 대란과 무더기 폐업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되어 대한민국 경제 전반을 태워버릴 것이다. 시한폭탄의 초침은 이미 빠르게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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