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운의 시시비비 | 아주칼럼 ] 증축인가, 재건축인가…정당은 누구의 집인가

정치는 비유를 즐긴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유는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가리는 장막이 되기도 한다. 최근 유시민 작가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던진 '증축'과 '재건축'이라는 비유 역시 그렇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이 원한 것은 기존 민주당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외연을 넓히는 '증축'이었는데, 이재명 대통령은 기존 구조를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에 가까운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재건축에는 기존 입주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설명을 덧붙였다.

대통령을 향한 애정 어린 충고라는 점에서 그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집권 세력은 야당보다 더 엄격한 비판을 받아야 하며, 대통령 역시 가장 먼저 내부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민주주의는 박수보다 비판을 먹고 성장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시비비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번 논쟁의 핵심은 유시민 작가가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데 있지 않다. 대통령 비판은 민주주의에서 당연한 권리다. 중요한 것은 그 비판의 전제다. 과연 민주당은 '기존 입주자'의 동의를 전제로 운영되는 집인가. 정당은 특정 세력이 소유한 공간인가. 집권당은 과거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박물관인가, 아니면 시대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끊임없이 바꾸는 살아 있는 정치 조직인가.

필자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민주당의 역사는 '증축'보다 '재설계'의 역사에 가까웠다.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민주당은 군부독재와 싸운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이었다. 평화와 인권, 지역 차별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 민주당은 당시 시대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담아낸 정치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의 등장은 기존 민주당 정치 문법을 상당 부분 바꾸어 놓았다. 지역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했고, 기득권 정치와 결별을 선언했으며, 참여정치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개혁당의 등장과 열린우리당 창당은 기존 민주당을 단순히 증축한 것이 아니었다. 정치의 설계도를 다시 그린 일이었다.

당시에도 많은 반대가 있었다. 기존 민주당을 왜 흔드느냐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는 그것을 시대 변화에 따른 정치적 선택으로 기억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촛불혁명 이후 탄생한 민주당은 이전 민주당과 또 다른 성격을 갖게 됐다. 적폐 청산과 검찰개혁, 소득주도성장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과거 민주당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적 실험이었다.

민주당은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민주당도 변했다. 지도자가 바뀌면 정책도 달라졌고, 국민의 요구가 달라지면 당의 철학과 전략도 함께 수정됐다. 그것이 살아 있는 정당의 모습이었다.

 

이미지챗GPT 생성
이미지=챗GPT 생성



그렇다면 오늘의 민주당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성장과 실용, 인공지능(AI) 산업 육성, 기업 투자 확대, 중도 확장 전략이 과연 옳은지는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다. 그러나 외연 확장 자체를 기존 민주당을 허무는 '재건축'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집권당의 역할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는 측면이 있다.

집권당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특정 지지층의 정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정당이 된다.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후보 시절에는 지지자의 대통령이지만, 취임하는 순간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된다.

따라서 청년층을 향한 정책도 필요하고, 중도층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도 필요하며, 성장과 분배를 함께 고민하는 일도 당연하다. 그것을 모두 기존 지지층에 대한 배신으로 해석한다면 집권은 가능해도 국정 운영은 불가능해진다.

정치는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존 입주자'라는 표현이 주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그 표현은 의도와 관계없이 민주당을 특정 정치 세력의 소유물처럼 들리게 만든다.

그러나 민주정당은 누구의 사유재산도 아니다.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켜온 당원의 헌신은 존중받아야 한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세대의 역사 역시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세대의 참여를 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당은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다. 청년이 들어오면 청년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중도층이 늘어나면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산업 구조가 변하면 경제 철학도 변해야 한다. 국제 질서가 달라지면 외교와 안보 전략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변하지 않는 정당은 살아남지 못한다. 

세계 정치도 같은 길을 걸어왔다. 영국 노동당은 한때 강성 노동조합 중심의 정당이었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는 '뉴 레이버(New Labour)'를 선언하며 노동당의 정체성을 크게 바꾸었다. 당내에서는 "노동당답지 않다"는 거센 반발이 일었다. 하지만 블레어는 시대가 달라졌다면 정당도 달라져야 한다고 판단했고, 결과적으로 노동당은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미국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뉴딜 민주당에서 정보기술 산업과 실리콘밸리, 중산층과 청년층을 아우르는 정당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내부 논쟁을 겪었다. 정당의 생명력은 변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독일 기민당도, 일본 자민당도 수차례 노선을 수정하며 생존해 왔다. 세계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당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체성까지 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정체성과 전략은 다르다. 가치는 지켜야 하지만, 정책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민주주의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방법은 바꾸는 정치다. 오히려 변화하지 않는 정치가 더 위험하다. 

더 큰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다. 우리는 '증축'과 '재건축'을 놓고 논쟁할 만큼 한가한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AI는 산업 구조를 근본부터 바꾸고 있다. 반도체는 국가안보 자산이 되었고,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가 됐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 패권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으며, 공급망은 국가 전략의 핵심이 되었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흔들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 청년은 기회의 사다리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지역은 소멸을 걱정하고, 제조업은 AI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고 있다. 

이런 시대에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누구의 집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집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정치는 과거를 보존하는 기술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기술이다. 국민은 정치권이 서로를 향해 "기존 입주자"를 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성장하는 경제, 안정된 일자리, 공정한 기회, 지속 가능한 복지, 그리고 다음 세대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국가다. 그것이 집권당의 존재 이유다.

유시민 작가의 충고는 경청할 가치가 있다. 정권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내부의 비판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그 비판 역시 시대 변화 앞에서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특정 세대만의 정당도, 특정 계파만의 정당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선택하고, 국민이 평가하며, 국민이 다시 바꾸는 공적 제도다.

따라서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기존 입주자의 동의만이 아니다. 아직 그 집의 문턱을 넘지 못한 청년의 신뢰이고, 중도층의 공감이며, 미래 세대의 기대다.

정당은 오래된 집을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더 안전하고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 존재한다. 

증축이든 재건축이든 그것은 방법의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집이 누구를 위한 집인가 하는 본질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이제 답해야 할 질문도 바로 그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