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문책에서 지원으로… 감사원이 달라진다

임병식 논설위원
[임병식 순천향대 초빙교수]


감사원은 변할 수 있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쉽지 않았다. 헌법이 부여한 최고 감사기관인 감사원은 최근 몇 년간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정책과 정치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논란 속에서 국민 신뢰는 흔들렸다. 위상과 역할에 대한 내부 고민도 깊었다. 공직사회 역시 정책 감사에 대한 부담으로 소극 행정으로 흐르는 분위기였다.

감사원이 공직사회가 책임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했다면 그 역할과 방식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감사원이 추진하는 혁신과 변화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은 정책 감사 중심 기조에서 벗어나 조직과 감사 운영 방향을 재정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적발과 문책 중심에서 예방과 지원 중심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잘못을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공직사회의 책임 있는 행정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기능을 확대하려는 시도다. 적극행정 면책제도와 사전컨설팅, 혁신지원 감사는 대표적 사례다.

적극행정 면책은 공직자가 공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결과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감사 책임을 묻지 않는 제도다. “국민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한 공무원은 제도적으로 보호한다”는 신호를 주기 위한 장치다. 감사원이 2009년 처음 도입한 이후 2019년부터는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로 확대됐고, 적극행정위원회 설치와 적극행정보호관 운영 등 관련 제도도 함께 정착해 왔다.

사전컨설팅도 같은 맥락이다. 법령 해석이 불명확하거나 현실과 규정 사이에 간극이 있을 때 감사원이 사전에 적법성과 타당성을 검토해 의견을 제시하는 제도다. 담당 공무원은 그 의견에 따라 업무를 추진하면 감사 책임을 면책받을 수 있다. 사후 적발보다 사전 예방과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제도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감사원은 올해 5월부터 사전컨설팅 대상도 확대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기공사협회 등 411개 민간 협회와 비영리법인까지 신청이 가능하도록 범위를 넓혔다.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법령 적용과 규제 해석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후 신청 건수가 증가하면서 제도 활용도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대전역 성심당과 코레일유통 간 임대료 갈등은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감사원은 관련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공공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함께 고려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 코로나19 대응과 용인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 과정에서도 행정적 불확실성을 줄여 정책 집행을 지원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사후 적발보다 사전 문제 해결이 행정의 효율성과 국가 경쟁력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감사원 간부들의 현장 행보도 눈에 뜨인다. 감사원 1급 간부들이 전국 권역별로 현장을 찾아 적극 행정 제도를 설명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23일 예정된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설명회에는 정상우 사무총장이 직접 나선다. 과거 권위적인 감사기관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현장 중심 소통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조직문화로 자리 잡는다면 공직사회가 체감하는 감사원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감사 철학이다. 예방과 지원, 문제해결 중심 감사는 공직자가 감사 부담 때문에 의사 결정을 미루지 않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공무원이 감사만 의식해 책임 있는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감사원은 법적 불확실성을 줄여 공직자가 책임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역할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혁신과 변화가 신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하는 가치다. 정책 지원 기능이 강화될수록 감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은 더욱 엄격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감사한다는 원칙이 일관되게 지켜질 때 국민은 감사원 변화를 신뢰할 수 있다. 지원 중심 감사와 엄정한 책임 감사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 적극적인 행정을 장려하는 것이 책임 면제를 남용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감사 성과를 적발 건수나 처벌 실적으로만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공직자가 감사원을 신뢰하며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감사의 중요한 성과가 될 수 있다. 윤승기 공직감찰본부장이 “사전컨설팅은 공직사회에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으며 관련 업무가 급증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감사원이 사전컨설팅 전담 조직을 확대하고 회신 기간을 단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등 미래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규제를 혁신하고 행정 속도를 높이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역시 공직사회가 불필요한 법적 불확실성 때문에 의사 결정을 미루는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감사원이 연구개발(R&D), 창업·벤처기업, 이차전지 등 신기술 분야를 혁신지원 감사 대상으로 지정한 것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 경쟁력은 책임 있는 행정과 신속한 정책 집행에서 비롯된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정책 기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특정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감사원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 논란을 반복하지 않고, 공직사회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감사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감사원은 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실천에 달렸다. 공무원이 감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책임 있게 일할 수 있을 때, 국민과 기업이 행정의 변화를 체감할 때, 감사원이 정치적 논란보다 공정성과 전문성으로 평가받을 때 비로소 혁신과 변화는 완성된다. 감사원의 권위는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공정한 감사와 국민의 신뢰에 있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감사원 정책자문위원 ▷국가유산청 정책자문위원 ▷순천향대 초빙교수 ▷전 국회의장 정무비서관 ▷전 국회 부대변인 ▷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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