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와 엔화 가치가 나란히 수십 년 만의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통화 약세에 대응할 정책 여력은 한국이 일본보다 크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진단했다. 한국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정부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을 견제한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닛케이는 10일 원화와 엔화가 나란히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과의 금리 차,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가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 현상 등 공통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1500원대로 올라 2009년 이후 약 17년 만의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엔·달러 환율도 달러당 162엔대 중반으로 상승해 약 39년 6개월 만의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올해 들어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4%, 엔화 가치는 3% 가량 하락했다.
한국의 경우,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힘입어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원화 가치는 오히려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닛케이는 국민연금과 개인 투자자의 해외 투자 확대로 자본 유출이 지속되는 데다, 기업이 해외 사업에서 벌어들인 달러도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은 해외 사업에서 거둔 수익을 원화로 바꾸지 않고 달러로 보유하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니시하마 도루 다이이치라이프자산운용경제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기업들이 인구 감소로 시장 전망이 어두운 국내보다 미국 등에 투자하는 편이 수익성이 높다고 판단해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도 개인의 해외 투자가 엔화 약세 압력을 높이고 있다. 소액투자비과세제도인 NISA를 통해 해외 주식과 해외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면서 엔화를 팔고 외화를 사는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닛케이는 이처럼 국내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도 국내 통화로 바뀌지 않는 구조가 원화와 엔화의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고 짚었다.
다만 닛케이는 통화 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중앙은행의 관계에서 한일 간 차이가 뚜렷하다고 짚었다. 한국 정부가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에 별다른 견제성 발언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한국은행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9일 "적절한 시기에 정책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다음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16일 열린다.
반면 일본에서는 정부가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을 견제하려 한다는 시각이 퍼지고 있다. 지난달 말 공개된 일본 정부의 경제재정 운영 기본방침 초안에 일본은행의 '적절한 금융정책 운영'이 "매우 중요하다"는 문구가 담기자, 시장에서는 확장 재정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다카이치 정부가 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일본 정부가 이후 해당 문구를 수정하기로 했지만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호리 다카히로 미즈호은행 시니어마켓이코노미스트는 "다카이치 정권이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에 소극적이라는 관측이 사라지지 않는 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로 엔화가 원화보다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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