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편견에 부딪히며 살아가는 모두를 위해 –영화 '야구소녀'

  • 나를 단정 짓는 차별과 편견 앞에 포기하지 않는 방법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사진=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여자가?” “어떻게?”

고교 야구단의 유일한 여성 선수 주수인(이주영)은 134km의 구속을 자랑하는 에이스 투수다. 언론은 그를 두고 ‘천재 야구소녀’‘20년 만에 탄생한 여자 고교 선수’라는 수식어로 부르지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프로 구단에 입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도 남자만 있는 그곳에서 “여자가 어떻게 야구를 하냐”는 압박에 시달린다. 중학생 때와는 달리 신체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가족을 비롯한 수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수인에게 꿈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길을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다 리틀 야구단부터 함께 해 온 친구 정호(곽동연)가 프로 진출을 확정 지으면서 수인 또한 프로 진출을 위해 더욱 훈련에 매진하지만 실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보다 “여성 선수가 프로에 입단한 전례가 없다”는 말로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실감한다.

수인은 차별 앞에서 분노하기 보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움직인다. 더 강한 체력을 만들기 위해 뛰고 공을 던지고 또 던진다. 그러다 어느 날 프로 선수나 지도자 경력이 없는 코치 진태(이준혁)가 부임하며 수인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수인에게 자신처럼 프로 구단에 갈 수 없을 것이라며 포기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수인은 다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더 세차게 공을 던진다. 결국 마음이 움직인 진태는 수인을 한 명의 투수로 인정하고 트라이아웃(프로 구단 입단 테스트)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야구소녀의 결말은 수인의 프로 입단 가능성을 열어두는 열린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과정도 그리 유쾌하지 않다. 겨우 트라이아웃 자리에 서게 된 뒤에도 구단은 수인에게 선수로서가 아닌 구단의 사무직을 제안해 수인의 자존심을 무너뜨린다. 그런 구단주에 수인은 “제 트라이아웃 영상은 보셨냐”고 맞받아치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수인은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다. 결과를 확신할 수 없더라도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공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믿고 나아갈 뿐이다. ‘여자는 할 수 없다’는 편견 앞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꾸준히 증명해 나가는 수인의 이면엔 피로와 불안이 짙게 드리워있다. 그럼에도 그 모습은 누구도 자신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자신만이 자신의 길을 만들어갈 권리가 있다는 듯 아름답게 빛난다. 마운드에서 유일한 여자로서 선 수인의 모습에서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홀로 버티는 우리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영화 속에서 진태는 수인에게 말한다.
“단점은 절대 보완되지 않아. 단점을 보완시키려면 장점을 키워야 해. 너의 장점은 뭐니?”
 
사진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사진=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야구, 이제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영화 ‘야구소녀’는 여성 스포츠 선수의 도전기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가능성’이 어떻게 허락되는지 묻는다. 누군가는 시작부터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존재 자체를 증명해야만 출발선에 설 수 있는 환경 속에 수인이 던지는 공은 단순한 야구공이 아니다. ‘나도 여기 있을 수 있다’는 일말의 선언이다.

그래서 트라이아웃 도중 수인을 무시하던 남성 선수들의 “주수인 파이팅”이라며 응원하는 모습이 더욱 뭉클하게 다가온다. 아무도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환경에서 자신만의 확신으로 마운드에 선 수인은 자신의 두 발로 ‘유리천장’ 위에 설 수 있다는 희망 혹은 포기하지 않는 도전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깰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영화는 제 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이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뚝심을 가진 주수인으로 완벽히 분한 이주영은 제 45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립 스타상을 거머쥐는 등 독립영화계의 스타임을 증명했다.

‘야구소녀’는 여자 야구 국가대표 출신 안향미 선수를 비롯한 실제 여성 야구 선수들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 중 1981년생인 안향미와 주수인의 모습이 많이 닮아 있다. 고교 야구대회에 출천한 첫 여성 선수이며, 야구부가 있던 덕수고등학교에 여성 야구 특기생 제도가 없었지만 학교의 제도를 바꿔가며 입학했다. 고교야구대회 등에 선발 투수로 오르는 등 활약한 안향미는 프로 입단 과정에서 현실의 벽을 넘기란 어려웠다. 이후 일본 사회인 야구팀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2004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야구팀을 창단하며 여자 야구의 기반을 다졌다.

다만 아직 금녀의 벽은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주최하는 익산기 여자야구대회와 한국여자야구리그가 있지만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은 일반 직업을 갖고 있어 사실상 사회인 야구로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점차 여성 야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자 2025년 한국여자야구연맹에 등록된 사회인 팀은 50개로 늘어났다. 이는 첫 여자야구팀이 만들어진 지 21년 만의 일이다.

이를 방증하듯 방송 프로그램에도 여성 야구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바로 채널A ‘야구여왕’이다. 이는 핸드볼, 배드민턴, 테니스, 필드하키 국가대표, 특수부대 출신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한 바 있는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야구라는 운동에 다시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 9일 시즌2 첫 방송을 알리며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청자들에게도 주목받고 있는데, 시즌1에서는 여자 야구에 눈을 뜬 이들의 성장기였다면 시즌2는 트라이아웃을 통해 5명의 멤버가 합류하면서 여성 야구 전국대회 우승을 목표로 승리를 향한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 ‘야구소녀’와 이 프로그램은 야구에 도전하는 과정 자체가 여전히 ‘여성에게 낯선 스포츠’라는 전제를 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면으로 부딪치며 몸으로 깨뜨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성공의 결과보단 과정의 지속성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더군다나 다소 낯설게 그려지던 여자 야구가 이젠 그라운드 한가운데 서 있는 모습에서 이는 단순한 스포츠 콘텐츠를 넘어 여성 서사의 변화와도 연결된다.

이제 여성들이 그라운드를 달리는 것은 낯설지 않다. 야구는 한 성별에 국한되는 경기가 아니라 끝까지 공을 던지고 배트를 휘두르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의지로 이끌어가는 스포츠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사진영화 야구소녀 포스터
[사진=영화 '야구소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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