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 서울시립대 대외협력부총장은 “우리 대학은 서울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연구와 교육의 결실이 도시와 시민 삶 속으로 환원되는 것이 정체성의 본질”이라며 “대학이 외부 순위 경쟁에만 연연하기보다 사회적 약자를 품는 인문학 강좌, 지방 대학과의 상생 협력 같은 ‘공공성’ 지표를 가슴에 품을 때, 비로소 시대를 이끄는 진정한 미래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사진=서울시립대]
학문과 행정의 최전선에서 대학의 오늘을 이끌어온 박훈 서울시립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세무학과 교수)이 그 주인공이다. 박 부총장은 최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을 위한 생활 세금 안내서 『월급, 창업, 그리고 세금-부제 ‘사회초년생의 돈 사용법’』(김민경·길하라 공저)을 세상에 선보인 데 이어, 대학의 10년 뒤 미래 지형도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단행본 『2030년, 서울을 대표하는 한 대학의 변화-우리나라 대학의 미래』를 출간하며 교육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법학자이자 서울시립대에서 자유전공학부 초대 학부장, 초대 입학처장, 학생처장, 교무처장을 거쳐 대외협력부총장에 이르기까지 대학 행정의 핵심을 두루 거친 그는 스스로를 “시스템에 안주하기보다 항상 ‘처음’을 만들어온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오는 8월 말 임기 마무리를 앞둔 박 부총장을 지난 29일 집무실에서 아주경제가 만났다. 그가 제시하는 청년들의 진로 탐색법, AI 시대의 대학 교육 본질, 그리고 2030년 미래 대학의 혁신 비전 등을 들어봤다.
30년 세법학자의 변신…“표와 각주 밖 청년의 삶을 바라보다”
세법은 어렵고 무겁다. 청년들에게 세금은 ‘아주 나중에, 돈을 많이 번 뒤에나 신경 쓸 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박훈 부총장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부터 원천징수 ‘3.3%’라는 수식어로 세금이 생각보다 일찍 일상에 들어온다는 점을 지목한다. 박 부총장은 “연구실에서, 그리고 국세청의 개방직 국장으로 납세자보호관으로 일할 때 세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만나곤 했다. 그분들은 세금을 피하려던 악의적 탈세자가 아니라, 몰라서 손해를 보고 몰라서 기회를 놓친 분들로 청년들도 있었다”며 “첫 월급, 첫 계약, 첫 창업에서 마주하는 ‘모름’의 비용을 줄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박 부총장이 학술서가 아닌 사회초년생의 눈높이에 맞춘 일상 안내서를 집필하게 된 결정적 계기다.
이 책은 처음부터 정독할 필요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아르바이트 중이라면 제1장(대학생의 돈 이해하기)을, 취업을 준비 중이라면 제4장(취업 준비와 지원제도)을, 해외 진출을 꿈꾼다면 제17장(해외취업, 글로벌 커리어로 설계하기)을 먼저 들춰보면 된다. 책의 마지막 제20장(실전 체크리스트 사용하기)에 수록된 상황별 체크리스트는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사회초년생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특히 박 부총장은 이 책에서 대학 내 지원 부서를 활용하려는 재학생들에게 “4학년 때 처음 교내 취업지원센터를 찾으면 이미 늦다”고 강조한다. 상담은 준비가 완전히 끝난 사람이 확인받는 자리가 아니라, 준비가 부족한 사람이 진단을 받고 방향을 찾는 자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상담을 받으러 가기 전 그동안의 활동, 관심 직무, 자신의 생활 여건 등 3가지를 정리해 간 뒤 ‘내 경험을 어떤 직무 언어로 바꿀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면 상담의 질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조언한다.
“멈춰도 뒤처지지 않는다”…청년 진로를 위한 쉼표, ‘서울형 갭이어’
그가 소설 『2030년, 서울을 대표하는 한 대학의 변화』에서 제안한 ‘서울형 갭이어(Gap Year)’는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소설 속 진로에 대해 막막함을 느끼던 3학년 학생 김민서는 한 학기를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쓰기로 결심하고, 학교 밖에서 봉사, 연구, 해외 경험 등 다양한 트랙을 누빈다. 이 같이 과감한 선택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바로 “멈춰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대학과 사회의 시스템적 약속이었다.
박 부총장은 “지금 청년들에게 휴학이나 쉬어감은 곧 낙오라는 불안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쉼표가 들어갈 때 문장은 더욱 명확해진다”면서 “탐색 활동을 공식 기록으로 인정해주고, 복귀 후 상담과 커리어 지원을 연계해주는 유연한 학사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청년들은 비로소 자신만의 길을 찾을 용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헀다.
박 부총장은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와 창업지원단 역시 학년별 맞춤형 진로 포트폴리오를 축적하는 거점이자 ‘실패 비용을 낮추는 작은 실험실’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봤다. 1학년의 넓은 전공 탐색부터 2학년의 프로젝트 경험, 3학년의 현장실습, 4학년의 직무 지원서 작성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축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창업동아리나 경진대회에서 겪는 작은 실패와 도전의 기록들은 사회에 나가 부딪힐 큰 실패를 예방하는 가장 훌륭한 예방주사가 되어줄 수 있다는 조언도 귀 기울여 봄직하다.
소설로 그린 ‘2030 미래 대학’…Open Campus와 AI 기반 맞춤 행정
박 부총장은 선배 교수가 건넨 가상의 미국 대학 총장 소설을 읽고 “한국 대학의 미래도 문학적 상상력으로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고민했다. 고민은 실행으로 이어졌다. 박 부총장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처음으로 소설 집필이라는 파격적인 도전에 나섰다. 학자로서의 엄밀한 표와 각주를 벗어나 그가 그린 『2030년, 서울을 대표하는 한 대학의 변화』는 미래 대학교육의 참신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소설 속 핵심 구상 중 하나는 대학의 경계를 도시 전체로 확장하는 ‘SEOUL 플랜’이다. 이는 ▲서울을 대표하는 대학(Seoul‘s University) ▲구성원의 권리 강화(Empower) ▲도시 속으로의 캠퍼스 개방(Open) ▲교육과 연구의 혁신(Upgrade) ▲지속 가능한 변화의 출발(Launch)을 뜻한다.
박 부총장은 “서울시립대는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연구와 교육의 결실이 도시와 시민 삶 속으로 환원되는 것이 정체성의 본질”이라 설명했다. 전농동 캠퍼스의 울타리를 넘어 청량리 상인이 집 근처 학습거점에서 대학 강의를 듣고, 교통·주거·환경 등 서울의 복잡한 도시 현안을 대학 연구진과 지자체가 함께 풀어가는 ‘Open Campus’가 바로 그가 꿈꾸는 미래다.
공간사용률 99.6%라는 빠듯한 캠퍼스 현실에 대한 대안도 구체적이다. 거대한 상징 건물을 무리하게 올리기보다, 수영장이나 체육관처럼 구성원과 지역 주민이 당장 몸으로 누릴 수 있는 체감형 복지 시설을 먼저 열어야 한다는 게 박 부총장의 구상이다. “큰 비전도 좋지만 구성원은 때로 물이 따뜻한지부터 묻는다”라는 소설 속 구절처럼, 복지는 교육과 연구를 지탱하는 기초 체력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재원 확보 역시 시 재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산학협력, 유산기부 등 발전기금의 다변화, AI 기반 에너지 관리로 운영비를 줄이는 스마트한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실제로 그는 스스로 대학 발전기금 유산기부 약정 1호로 참여하며 말보다 행동을 먼저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소설 속에는 가상의 AI 비서 ‘이루매’가 등장해 대학 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단순 서류 작업과 문헌 대조, 중복 행정 입력에 치이던 교수들에게 연구 시간을 되찾아주고, 학생들에게는 맞춤형 학사 가이드를 제공한다. 박 부총장은 “실제 국공립대에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기술 도입에 앞서 파편화된 행정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개인정보 보호라는 ‘신뢰’의 운영체제를 선제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며 “행정 혁신은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판단과 창의가 필요한 고차원적 업무로 옮겨주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AI 시대의 진정한 인재(AX)…“기술을 의심하고 사람을 향하라”
박 부총장은 “AI는 초안을 순식간에 내놓지만, 무엇을 물을지 결정하고, 제시된 수많은 답 중 무엇을 버리고 남길지 판단하며, 그 문장에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질문이 얕으면 답도 얕았고, 질문을 다듬을수록 답이 깊어졌다”고 밝혔다.
박 부총장이 정의하는 AI 전환 시대의 진정한 인재, 즉 ‘AX(AI Transformation) 인재’의 조건은 명확하다. AI 기술 자체를 개발하는 인재도 중요하지만, 회계·도시·세무·철학 등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깊이 있게 갖춘 상태에서 AI라는 도구를 손에 쥐고 자기 일의 방식을 능동적으로 바꿔내는 사람이 진정한 미래 인재라는 것이다.
실제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AI가 풀어낸 세법 문제를 제시하고, 어디가 틀렸는지 오류를 찾아내 검증하는 과제를 부여하곤 했다. AI가 답을 척척 내놓는 시대일수록 그 답을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능력이 인재의 가치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 인재가 가져야 할 세 가지 조건은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활용력, 그 답을 그대로 믿지 않는 비판적 검증력, 그리고 이 기술이 결국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묻는 인간에 대한 이해”라며 “활용력은 기술이 가르쳐주지만, 검증력과 인간 이해는 철학, 문학, 역사 같은 기초학문에서 나온다. 공학 기술과 기초학문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대학의 본질은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데 있지 않다. 단편적인 지식 전달은 이미 AI가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 박 부총장은 대학이 지켜야 할 궁극적 가치로 ‘좋은 질문을 품는 법’, ‘자신의 답에 책임을 지는 법’,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태도를 배우는 공간’을 꼽는다. ‘무난한 보직 교수’라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자유전공학부 초대 학부장, 초대 입학처장, 학계 출신 최초의 국세청 납세자보호관, 유산기부 1호 등 늘 새로움에 도전해온 이력을 제시하며 완곡하게 부인했다.
그는 “시스템의 구조를 잘 아는 사람만이 어디가 굳어 있는지, 어디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가장 잘 안다. 20년 넘게 학생, 교수, 직원, 지자체를 현장에서 만난 경험은 안주함이 아닌 강력한 실천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며 “대학이 외부 순위 경쟁에만 연연하기보다 사회적 약자를 품는 인문학 강좌, 지방 대학과의 상생 협력 같은 ‘공공성’ 지표를 가슴에 품을 때, 비로소 시대를 이끄는 진정한 미래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박훈 부총장은…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대외협력부총장, 조세법·세무학 분야의 연구자이자 정책 전문가로, 세법 이론·조세정책·국제조세·대학행정·청년지원 경험을 함께 갖추고 있다. 학계에서는 한국세법학회 회장, 한국지방세학회 회장,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 한국법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국제조세협회 제21대 이사장으로 재임 중이다. 최근에는 세법을 전문가의 영역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사회 변화와 청년세대의 현실 속에서 풀어내는 저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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