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국립문화예술기관의 존재 이유를 떠올릴 때 나오는 대답은 대개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또는 '국민 모두의 문화 향유를 위해' 아니면 '국가의 품격을 보여주고자' 정도로 매우 소박한 수준이다. 이렇듯 많은 이들이 국립문화예술기관은 순수한 미의 전당으로, 아름다움을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18세기 말~19세기 들어 국민국가가 성립하면서 국립문화예술기관은 미의 향유보다는 국가의 정당성 조달이라는 정치적 필요로 설계된 매우 정치적인 기관이다. 예전에는 신의 힘이나 무력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했지만, 이도 저도 없는 국민국가는 박물관과 공연장 같은 문화예술기관을 통해 국민이라는 상상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하나의 역사와 미의식을 공유함으로써 상상을 실재화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따라서 총과 법이 아니라 박물관전시장, 극장의 공연을 서사화해서 이를 일반화, 일상화하는, 즉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가 말했던 ‘주도권(Hegemonie)’을 제조하는, ‘문화패권’을 생산하기 위한 필요에 의한 기관이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이들 문화예술기관은 정반대의 얼굴도 가지고 있다. 시장은 팔리는 것만 남기고, 정치는 다수결로 소수를 지우지만, 잘 작동하는 문화예술기관은 주류의 목소리뿐 아니라 사회적 기억에서 지워지거나 외면받은 서사까지 수용함으로써 말과 생각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상식을 강요하는 도구가 상식에 스스로 균열을 내는 반골로 전환되는 두 얼굴, 즉 갈등과 다름을 끌어안아 포용하는 가슴을 지닌 것이 문화예술기관의 성격이자 특징인 것이다. 따라서 국립문화예술기관은 통합의 장치이자 저항의 수단이라는 모순을 원래부터 안고 태어난 존재이며, 이 이율배반은 해소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조건이다.
문제는 이 모순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그 답은 지배구조에서 결정된다. 전문직의 임기보장, 다년도 예산편성 등 말로 대체할 수 없는 제도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전문조직이 행정에 압도당하고, 극장의 장이 정권마다 바뀌는 구조는 문화기관을 헤게모니 생산의 도구로만 쓰겠다는 태도의 증명이며, 반대로 전문직의 자율성을 두텁게 보장하는 구조는 문화기관을 논쟁과 성찰의 공간으로 열어두겠다는 한 국가의 국체와 나라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표명하는 일이다.
즉 국립문화예술기관의 지배구조는 문화정책의 부산물이 아니라 문화정책 그 자체다. 그래서 모든 국가는 설립 목적과 정책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국립문화예술기관의 지배구조를 정치적 독립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팔길이 원칙’을 근간으로 운영의 자율성과 공적책임성의 균형, 다원적 이해관계자의 참여 그리고 공공성과 수월성의 조화를 원칙으로 지배구조를 결정한다. 각각의 국가는 이 원칙을 가장 잘 구현하고자 국가별 정치 체제에 따라 프랑스, 독일처럼 국가가 법을 통해 만든 ‘공법상 법인모델’과 이사회 중심의 분권형 영국식 ‘준자율공공기관 모델', 미국의 ‘민간 주도형 비영리 거버넌스 모델’ 등을 채택하고있다.
◆ 같은 기관, 각각 다른 지배구조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의 문화적 매력을 만드는 공간인 동시에 시대의 파수꾼으로 기능하는 국립문화예술기관의 지배구조가 각기 다르다. 즉 국가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소관이면서도 국립중앙박물관·국립국악원·국립중앙도서관은 일반행정기관으로, 국립현대미술관·국립극장은 책임운영기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별도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0년대 이전에 설립, 개관한 기관과 단체는 일반행정기관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개혁과 효율성 강화, 시장경쟁원리도입, 자율과 책임의 조화를 통해 행정의 효율성과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 및 개혁의 하나로, 책임운영기관제도가 도입되어 2000년 국립극장,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은 법인화를 선호했지만, 책임운영기관으로 지배구조가 변경되었다. 이후 2010년 완전한 특수법인으로 전환을 위해 '국립중앙미술관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논의를 시작했지만, 2018년까지 근 8년 동안 논의만 하다 백지화되었다.
처음 법인으로 출범한 국가문화예술기관은 ‘예술의 전당’(1987)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부가 법인화를 두고 탁상공론만 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1986년 설립된 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이나 2015년 특수법인으로 전환한 국립해양박물관(해양수산부), 국립생태원(환경부)처럼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문화부보다 먼저 선진적인 법인형 지배구조를 출범시켰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과학관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과학박물관인 ‘국립과학관’의 법인화를 도입해 2013년 국립대구과학박물관, 국립광주과학박물관, 2015년 국립부산과학박물관, 2020년 국립항공박물관(국토교통부) 등의 박물관은 법인격을 지배구조를 출범했다. 이렇게 타부처에 소속된 국립 문화시설이 개별 특별법을 통해 아예 별도 법인격을 가진 특수법인으로 설립하면서, 같은 ‘국립’임에도 문화부 소속 기관형과 개별 부처 특수법인형이라는 서로 다른 지배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문화정책의 기초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박물관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나 통합 법률이 없다 보니, 각 부처가 저마다 필요할 때마다 개별 입법을 통해 박물관을 만들었고, 그 결과 설립 시기와 소관 부처의 정책 판단에 따라 조직 형태가 제각각 굳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한 국가가 어떤 문화정책을 채택하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정부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 시민을 대하는 태도가 압축적으로 표현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국가의 성격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잣대가 된다. 그럼에도 이렇게 국립문화예술기관의 지배구조가 제각각이란 것은 '국체, 즉 국가의 정체성과 일관된 국가철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음'으로 인식될 수 있는 매우 위중한 문제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은 문화정책목표에 따라 제각각의 문화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문화정책의 원칙을, 캐나다의 저명한 문화 경제학자 해리 힐먼 차트란드와 클레어 맥코이가 '독립성 원칙과 예술: 국제적 관점'
우선 미국처럼 정부가 직접 돈을 주기보다 세제 혜택 등을 통해 민간의 예술 후원을 간접적으로 독려하는 ‘촉진자 모델’과 영국처럼 정부가 재원은 지원하되, 구체적 지원 대상은 독립된 위원회에 일임하는 ‘후원자 모델’, 문화예술 지원을 정부의 거시적 복지 및 사회 정책과 통합해 정부가 직접 관장하며 예술가에게 고용안정과 복지를 제공하는 프랑스식 ‘설계자 모델’ 그리고 과거 공산권 국가들이 채용했던 정부가 예술의 소유권을 가지며, 예술을 국가의 정치적 목적이나 이념을 홍보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통제하는 ‘엔지니어 모델'로 구분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는 이 4가지 유형 중 하나를 원칙, 기본으로 문화예술정책을 펼쳐나왔다.
◆ 방황하는 한국의 문화예술정책
이렇게 1948년 대한민국이 출범한 이후 한국 문화예술정책의 근간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엔지니어, 후원자, 설계자, 촉진자라는 네 모델이 번갈아 가며 등장했다. 이는 단순한 정책 기조나 선택의 차이가 아니라, 국가가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근본 철학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1973년 출범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대표적인 정부가 주도하는 엔지니어 모델의 산물로, 정부가 직접 문화예술정책을 기획, 집행하고 예산을 통제하는 국가 중심적 공급주의 정책이 주를 이루는 개발도상국가형 모델로 ‘도구주의적’ 비전과 당시 한국 행정 전반을 지배한 ‘발전국가’ 모델의 연장선에 있었다.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라는 위원회 방식을 택하면서 영국식 팔길이 원칙, 즉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후원자 모델을 공식적으로 표방했지만, 문화부라는 강력한 중앙 부처가 예산권과 인사권을 쥐고 있어, 완벽한 영국식 모델이라기보다는 프랑스식 관료주의와 영국식 전문 위원회 제도가 혼재된 형태로 독립성은 제도가 아니라 구호라는 지적이 많다.
동시에 정부는 국가 발전 전략, 일자리 창출, 지역 균형 발전 같은 거시적 목표를 세우고 문화예술계를 그 틀에 편입시키려는 ‘설계자’ 같은 태도가 강하다. 따라서 문화예술은 그 자체로 존중받기보다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엔지니어 모델이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사태에서 보듯, 정권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문화예술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반복되었다. 이는 한국 문화정책이 아직 권위주의적 잔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일부 도입하고 있는 촉진자 모델 역시 세제 혜택과 메세나 활동 장려라는 형태로 흉내는 내고 있으나, 민간 기부만으로 예술 생태계가 자립할 수 있는 제도적·문화적 토양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부 재원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는 것도 문제다.
이런 모델의 혼재는 정책의 지속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5년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문화정책의 방향이 후원자에서 설계자로, 다시 엔지니어로, 극과 극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문화예술계는 창작의 자율을 말하면서도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먼저 살피고 연줄을 찾으면서 눈치 보는 관행에 익숙해졌다. 공정한 공모 절차라는 형식은 유지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정한 핵심 과제에 부합하는 기획서만 살아남는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물론 이런 혼재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서구가 수백 년에 걸쳐 시민사회와 문화예술 시장을 통해 특정 모델로 정착했지만, 한국은 압축 성장 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하향식 지원과 민간의 급속한 성장을 동시에 겪으면서, 설계자 모델의 강력한 추진력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이런 혼합형 모델의 완전한 폐기보다는 특정한 영국식 모델이나 프랑스식 모델을 원칙으로 삼아, 중심에 두고 미국식 모델의 장점을 택해 정교하게 고도화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한국 문화정책이 기본 원칙의 중심을 잃은 채 각 모델의 단점만 충돌하는 과도기에 머물러 있다는 진단은 부정할 수 없다. 진정한 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게 지켜질 문화예술정책 모델의 대원칙, 즉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법적·제도적으로 굳건히 하는 작업이 더는 미룰 수 없다.
◆컨트롤 타워 없는 박물관 정책
실질적으로 각각의 국립문화예술기관이 각기 다른 지배구조를 지닌 이유는 각각의 기관들이 설립되는 시점마다 각기 다른 시대의 논리가 그대로 화석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해방이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극장, 국립국악원은 대부분 1960~80년대 국가 주도의 근대화 시기에 문교부·문공부 직할 조직으로 태어났다. 이 시기의 국가는 문화를 자율이 아니라 통치의 일부로 이해했고, 그래서 이 기관들은 처음부터 공무원 조직의 문법, 즉 직제, 정원, 계급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반면 세종학당재단, 한국문학번역원, 한국콘텐츠진흥원 같은 기관들은 2000년대 이후 ‘문화산업’과 ‘한류’라는 전혀 다른 어휘가 등장하면서 여기에 맞추어 특수법인 또는 재단 형태로 설립되어 산업 진흥이라는 새로운 임무에 맞춰 상대적으로 유연한 준정부기관 형태를 취했다.
국립박물관 정책을 다룬 양현미(2023) '통합적인 박물관 정책을 위한 거버넌스 개선방안 연구', '문화정책논총' 제37집 제1호(한국문화관광연구원, 245-290쪽)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5개 부처가 6개의 박물관 관련 법률을 각각 운용하고 있으며, 23개 부처가 각각 저마다의 논리로 총 98개 관이나 되는 국립박물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통합적 정책 지배구조의 부재를 문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일이 이렇게 된 더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문화철학’을 총괄할 상위 기구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문화부는 앙드레 말로(1901~1976) 이래로 '문화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라는 원칙으로, 문화적 재화와 서비스를 일반적인 무역 자유화 대상에서 제외하고 국가가 법적으로 보호·지원해야 한다는 정치·문화적 개념의 ‘문화 예외주의’라는 뚜렷한 국가철학 아래 모든 문화기관의 위상을 하나의 원칙으로 설계해 왔다.
미국은 ‘예술·인문학 국가재단(NFAH)’산하에 ‘박물관·도서관 협력재단(IMLS)’을 두어 미국의 박물관, 도서관, 기록관 등을 관장하며 이를 위해 ‘국립박물관 및 도서관 서비스 위원회’를 두어 국가의 박물관, 도서관, 기록관 등을 총괄한다. 영국은 문화미디어서포츠부(DCMS) 산하에 잉글랜드 예술위원회와 국립기록관을 통해 팔길이 원칙에 기반한 분야별 독립 공공기구(NDPB) 체제로 박물관·도서관을 관장한다. 프랑스는 문화부 산하의 문화유산·건축총국(DGPA)의 프랑스 박물관처가 박물관을, 프랑스 기록관처가 정부·공공 기록 관리 체계를 지휘하며, 미디어·문화산업총국(DGMIC) 내 도서·독서처가 도서관과 도서관관련정책을 총괄하며 각국의 문화예술철학에 맞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1990)이나 '과학관법'(1992), '수목원·정원법'(2001), '동물원수족관법'(2017) 등 각 기관의 개별 설립 근거법은 있지만, 국립문화예술기관 전체를 관통하는 단일한 지배구조에 관한 철학, 즉 어느 기관은 왜 공무원 직제로, 어느 기관은 왜 특수법인으로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총괄적 설계 원칙이 명문화된 것은 없다. 다만 각 부처에서 박물관을 건립할 경우, 사전에 문화부의 ‘설립타당성 사전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고작이다.
따라서 각 기관은 그저 자신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소관 부처의 협상력에 따라 지배구조를 부여받았을 뿐이고, 그렇게 개별적으로 결정된 구조들이 누적되어 지금의 누더기 같은 체계를 갖게 된 것이다. 정부도 그때그때 시대적으로 또는 관료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별도의 법과 별도의 조직 원리로 기관을 신설했을 뿐, 박물관학적인 의미에서 박물관 건립을 검토하고,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려고 한 적은 없다. 그 결과 같은 ‘문화행정’이라는 우산에도 불구하고 인사 규정, 예산편성 방식, 정치적 독립성의 정도가 기관마다 전혀 다른 채로 층층이 쌓여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되려 이것이 각 기관의 특징으로 자리 잡는 헤게모니가 되었다. 이는 국립문화예술기관이 거시적인 ‘문화철학’이나 하나의 ‘종합계획’아래 설계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이제라도 부처별로 제각각인 국립문화예술기관의 설립과 운영을 총괄하는 권한을 문화부가 관장하고 큰 틀의 문화정책적 차원에서 지배구조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제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전 단계로 세종 국립박물관단지라는 국내 최초의 박물관 클러스터라는 상징성을 살려, 건립 단계부터 행복청·국토부·문화부·국가유산청·행안부 등 6개 기관에 분산되어 있는 사업을 문화부로 일원화해서 박물관학적 통일성을 갖추는 것을 시도해 보자. 현 설립 단계부터 박물관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가 아닌 여러 기관이 각자의 기준으로 시설을 조성하다 보니, 개관 이후 소장품관리시스템의 불일치, 통합 브랜드·통합권 부재, 재정계획의 파편화라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개관이후 운영 통합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건립 단계의 구조적 결함이다.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협회나 프랑스 문화부, 영국 DCMS의 사례가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박물관 정책을 관장하는 단일 주무부처가 처음부터 총괄 책임을 지되 개별 기관의 전문적 자율성은 보장하는 방식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즉 총괄 책임의 주체는 건립 초기부터 명확해야 하며, 이는 개관 이후로 미룰 사안이 아니다.
따라서 박물관 정책의 법정 소관 부처인 문체부가 건립 단계부터 마스터플랜과 전시·수장 표준을 수립·승인하는 총괄 책임을 지고, 행복청은 그 지침에 따라 기반시설 조성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개관 이후의 운영 주체 일원화 역시 이런 건립 단계의 총괄 책임이 전제되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법제 정비, 건립 총괄, 운영조직 설립, 개관·운영으로 이어지는 로드맵 추진 과정에서 부처 간 조직·예산 조정의 어려움과 개별 부처의 전문성 활용 방안은 계속 검토해야 할 과제나, 그것이 문화부의 총괄 책임을 유보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세종 국립박물관단지의 성패는 개별 건물의 완공이 아니라 하나의 박물관으로서의 유기적 기능에 달려 있으며, 이를 담보하는 것은 개관 이후의 봉합이 아니라 건립 단계부터 문화부가 책임을 지고 총괄하는 것이 옳다. 다만 통합이 어려운 것은, 소관 부처 즉 문화부가 산하 국립문화예술기관의 통제력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타 부처들이 산하의 박물관을 문화부에 순순히 관할권을 내어주지 않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 문화부의 대승적인 자세 전환도 필요하다.
◆관료주의의 탐욕에 희생된 문화예술
관제탑 없는 박물관 정책은 문화부 관료 조직은 물론 각 부처의 기득권 수호 본능과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문화예술기관의 선진화라 할 수 있는 지배구조의 선진적 전환을 가로막는 원인이다. 특히 문화부와 문화부 외청인 국가유산청의 일반행정기관에 대한 사랑은 실로 끝이 없다. 이들은 국가가 직접 관장해야 하는 핵심 명분으로 보존의 공공성과 강력한 집행력을 내세운다. 특히 대체 불가능한 문화유산의 원형보존은 수익성을 좇는 민간 거버넌스 대신 국가의 장기적 관여가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또한 사유재산권 제한 등 강력한 규제와 외교적 대표성을 행사하는 데는 국가 기관의 정통성이 요구된다는 것 그리고 막대한 예산의 안정적 확보와 정책 실패에 대한 무한 책임 역시 일반행정기관이어야 가능하다는 논리로 거버넌스의 변화를 막고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국가 정체성의 근간인 문화를 효율성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국가 책무의 방기라는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우리와 지배구조가 배치되는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이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데, 더욱 효과적이란 점에는 함구로 일관한다.
특히 도서관, 박물관, 국악원 등의 기관은 국민에게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구·전시를 수행하는 기능적 현업기관이다. 그럼에도 일반행정기관의 틀에 묶어두는 것은 규제 기관의 논리를 오 접목한 명백한 관료적 이기주의다. 공권력 집행이 불필요한 현업기관에 국가가 직접 관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순환보직과 관료주의적 통제는 조직의 전문성을 질식시키고 학술·예술적 자유마저 정권의 입맛에 종속시키는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공무원 인사·예산 규정에 묶인 공급자 중심 행정으로는 디지털 전환과 수요자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 특히 선진화된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국가가, 관료가 국민을 지도하고, 끌고 나가야 한다는 자세는 시대착오적이다. 자율성과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글로벌 표준에 맞춰 독립 법인화 등 선진 지배체제로의 조속한 전환이 필요하다.
관료 조직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직접 지휘하고, 자신들의 인사와 관련된 순환보직기관을 손에서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유인 요소의 강도는 기관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예산 규모가 크고 상징성이 강한 기관일수록 부처가 통제력을 쥐려는 힘은 세지고, 상대적으로 신생이거나 산업 진흥 성격이 강한 기관은 준정부기관·재단 형태로 한 걸음 떨어뜨려 놓아도 부처나 관료에게는 손해 볼 것이 거의 없다. 결국 오늘의 각기 다른 지배구조 차이는 철학적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부처와 각 기관 사이에서 벌어진 오랜 힘겨루기가 남긴 흔적인 것이다.
특히 부처 간 관할이 겹치는 영역은 임시방편으로 봉합하기에 급급했다. 재외 한국문화원의예산과 운영은 문화부, 지휘는 외교부 재외공관장 소관으로 나뉘어 있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이것은 애초에 하나의 철학에서 설계된 체계가 아니라, 문화부와 외교부 두 부처의 이해관계를 절충한 산물이다. 해외문화홍보원의 기능이 최근 몇 년 사이 문화부 내 국제문화홍보정책실로 흡수됐다가 다시 차관 산하로 재배치되고, 국립현대미술관이 문화기반과에 소속되었다가 다시 시각디자인과로 배치되는 등 조직이 계속 유동적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반복적 재조정은 근본적인 철학적 정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정리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행정 편의에 따라 계속 임시방편으로 덧대어 온 결과다.
여기에 정부 즉 중앙 부처의 피라미드형 승진 구조는 문제를 더욱 키웠다. 국립박물관장, 국립중앙도서관장, 국립국악원장,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운영단장 같은 자리는 퇴직을 앞둔 관료들에게 명예로운 종착지이자 고위공무원단 승진을 위한 행정적 영토로 기능해 왔다. 물론 행정직 기관장은 지금처럼 일반행정기관인 경우는 예산 확보나 조직 관리에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지배구조의 변화가 더딘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산하 문화예술기관을 독립 법인화하는 순간 행정공무원들의 자리가 통째로 사라지게되어, 조직 차원의 반대와 저항은 예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인사·예산 통제권에 대한 집착도 한몫한다. 팔길이 원칙이라는 선진적 거버넌스로 나아가려면 예산과 인사권을 산하 문화예술기관에 온전히 넘겨주어야 하지만, 관료 조직의 권력은 바로 그 ‘통제권’에서 나온다. 따라서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관료 조직을 기대하기란 애초에 무리였는지 모른다.
박물관·미술관 정책이 문화부, 과기부, 해수부, 국토부 등 부처별로 잘게 쪼개진 현실 역시 심오한 국가철학의 산물이라기보다, 각 부처가 퇴직 관료의 낙하산 자리를 확보하려 한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다만 이 모든 문제를 관료의 이기심 하나로 환원하기에는, 한국적 제도 환경이 안고 있는 현실적 딜레마 또한 가볍지 않다.
먼저 법인화에 가장 격렬히 반대하는 주체는 관료뿐 아니라 해당 기관의 학예연구사와 직원들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법인화는 곧 공무원 신분의 상실과 고용 불안, 그리고 관람료 인상이나 협찬 유치 같은 수익성 압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국립현대미술관 법인화 시도가 내부 직원들의 생존권 투쟁으로 좌초된 전례는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민간 이사회 체제의 자정 능력에 대한 회의도 완전히 근거 없는 방어 논리라 보기는 어렵다. 정권 교체기마다 코드인사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실제로 불거졌던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사태와 정파 간 갈등을 통해 이미 현실로 확인된 바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관료들에게 '공무원이 관리하는 편이 그나마 중립적이고 안정적'이라는 방어 명분을 제공해 온 것이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식 민간 자율 모델의 전제 조건인 메세나와 기업 또는 개인의 기부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기부 문화와 세제 혜택이 취약한 토양에서 정부가 법인화를 명분으로 재정 지원을 축소한다면, 그 즉시 기관의 생존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는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정당한 문제 제기다.
결국 한국 문화행정 거버넌스의 정체는 관료의 기득권 수호라는 단일한 원인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관료 조직의 권력 집착이라는 능동적 요인과, 공무원 신분 보장에 대한 현장의 요구, 민간 자율 거버넌스의 시행착오, 그리고 취약한 기부 생태계라는 수동적 제약이 서로 맞물리며 개혁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관료의 기득권을 겨냥한 비판과 더불어, 신분 보장과 자율성을 함께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완충 장치, 그리고 민간 기부 생태계를 함께 키워가는 병행 전략이 요구된다는 것이 균형 잡힌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작금의 각기 다른 국립문화예술기관의 지배구조의 원인을 관통하는 하나의 결론은 한국 문화예술기관의 지배구조가 제각각인 것은 철학의 부재라기보다, 철학이 개입할 틈이 없이 시대별 필요와 부처 간 힘겨루기, 그리고 관료제의 자기 보존 논리가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되어 만들어진 구조적 결과다.
◆ 문화예술기관의 지배구조가 천명하는 문화정책
미술관과 박물관 지배구조는 크게 소유, 재정, 의사결정 권한을 누가, 어떤 형태의 조직에 위임하느냐에 따라 몇 가지 전형으로 나뉜다.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국가가 직접 관장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독립성과 책무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수렴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지배구조이자 선진적이며 각각의 문화예술기관의 자율성이 강한 지배구조는 영국식 ‘비정부공공기구(NDPB)’ 모델이다. 영국 대부분의 문화예술기관은 규모와 상관없이 일정 부분 국가가 재정으로 지원하는 이런 지배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영국박물관의 예를 보면 최대 25명으로 구성되는 이사회의 이사 중 1명은 국왕이, 15명은 총리가, 5명은 이사회에서 임명한다. 영국박물관은 정부로부터 팔길이만큼 떨어져 운영되는 비정부공공기구로 문화미디어체육부의 지원을 받되 의회에 책임을 지는 구조다.
영국의 국립박물관인 제국전쟁박물관(IWM) 역시 1920년과 1955년의 제국전쟁박물관법, 1992년 박물관미술관법 등의 법률에 따라 이사회가 지배하는 구조로 문화미디어체육부를 후원기관으로 둔 비정부공공기구로 운영된다. 이 제도의 핵심은 정부가 예산은 지원하되 컬렉션 관리와 일상 경영은 이사회에 맡겨, 정치적 개입을 줄이면서도 공적 자금을 시용하는 책임은 의회를 통해 지도록 하는 절충적 안이다.
프랑스는 ‘공공기관’ 형 지배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루브르는 단순한 국가의 산하 기관이 아니라 ‘루브르박물관 공공기관’이란 독립 법인격을 갖고 있다. 이는 소유권과 최종 감독권은 국가가 유지하되, 법인격을 부여해 자체 예산 집행과 인사, 전시 기획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국가 직할 행정보다는 유연하지만, 영국의 이사회형보다는 국가의 개입 여지가 큰, 중간 지점의 지배구조라 할 수 있다.
독일은 ‘재단' 형태의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국립문화예술기관이 운영된다. 예를 들면 베를린의 국립박물관들은 개별 기관이 아니라 베를린국립박물관군, 베를린국립도서관, 비밀국가문서고,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 국립음악연구소 등 다섯 개 기관을 산하에 둔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이라는 하나의 재단 아래 통합 소속되어 운영된다. 1918년 이후 왕실 소장품이 공공 재단으로 전환되면서 지금의 체제가 자리 잡았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공동으로 재원을 출연하는 이 재단형 모델은 개별 박물관의 독립 경영권보다 상위 재단의 통합 기획과 자원 배분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영국·프랑스 모델과는 다소결이 다르다. 다만 독일의 제도는 통일되기 전 제후국으로, 각기 자율적으로 유지되어 온 전통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
일본은 ‘독립행정법인(IAA)’을 지배구조로 하고있다. 2001년 ‘효율성 높은 작은 정부’를 실현하고자 하는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한국의 책임운영기관이나 일부 공공기관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지만, 성공했다는 평가보다는 일본 박물관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도쿄국립박물관은 독립행정법인 국립문화재기구가 운영하는 박물관이며, 이 기구는 국립박물관과 문화재연구소들을 묶어 법인화한 조직으로 산하에 교토·나라·규슈의 지방 박물관과 도쿄·나라의 문화재연구소를 거느리고 있다. 독립행정법인 제도는 중앙정부의 조직이던 국립박물관을 법인으로 분리해 예산·인사의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주무 부처가 중기 목표와 평가를 통해 성과를 관리하는 일본 특유의 행정개혁 산물이다. 국가 소유는 유지한 채 경영만 위탁한다는 점에서 독일의 재단형과 유사하다. 다만 일본의 독립행정법인은 지나치게 정부의 지원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지적받고 있다.
특히 2026년 2월, 일본 문부과학성(문화청)은 국립박물관·미술관에 대해 2026~2030년도의 목표를 제시했는데, 2029년까지 전시사업비 대비 입장료 등 자체수입 비율이 40%에 미달하면 폐관을 포함한 재편 대상이 되며, 입장료 인상과 외국인 관광객에게 더 비싼 요금을 받는 ‘이중가격제’를 도입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2031~2035년까지 100% 자립할 것을 요구해, 반발을 사고 있다.
네덜란드는 ‘민영화된 재단’ 형식의 지배구조다. 네덜란드는 민영화 사업이 완료된 뒤 24개 국립박물관 미술관이 모두 재단 형태로 편입됐으며, 이 박물관들은 여전히 교육문화과학부의 보조금을 받는다. 건물과 컬렉션의 소유권은 국가에 남고, 일부는 ‘국립미술관’이라는 명칭은 유지했지만, 국립이나 시립이란 명칭을 아예 없앤 경우도 있다.
1990년대 행정개혁을 거치며 국립미술관은 ‘자율화’됐고, 정부는 운영을 독립 재단에 맡기며 보조금을 줄이는 대신 마케팅과 민간 모금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했다. 국립미술관과 반고흐미술관이 세계적 관광 브랜드로 성장한 배경에는 이런 재단화라는 지배구조의 개혁이 바탕이 되었다. 이들 미술관은 전체 예산의 70% 이상을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며, 향후에도 장관의 책임을 계속 담보하기 위해 모든 재단의 정관은 장관의 승인 없이는 수정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립문화예술기관의 미래와 지배구조
국립문화예술기관의 지배구조 문제는 단순한 조직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부가 문화와 예술을 어떤 철학과 비전으로, 대한민국 미래의 문명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에 관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국립극단,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박물관, 예술의전당, 세계문자박물관등 주요 문화예술기관은 저마다 다른 법적 지위와 지배구조 아래 놓여 있어, 일관된 방향성있는 정책을 세우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 지배구조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문제인 동시에 정면으로 짚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면 앞서 살펴본 지배구조 모델 가운데 어느 하나를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대륙법적 전통 위에 중앙집권적 행정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영국식 신탁이사회형이나 네덜란드식 민영화형을 무리하게 도입할 경우, 기부금 문화와 시민사회 이사회 전통의 부재로 오히려 재정 불안정과 문화적 부정합만 낳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국가 직할 행정 체제를 고수할 수도 없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기관장 임명과 프로그램 방향이 흔들리고,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태와 같은 정치적 개입의 상처가 반복되어 온 것이 지난 시절의 뼈아픈 교훈이다. 무엇보다 대다수 국립문화예술기관은 민간 재원만으로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는 구조여서, 정부의 재정 지원은 당분간 불가피한 전제 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을 종합할 때, 한국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프랑스식 공공기관형 법인을 기본 틀로 삼고, 여기에 일본식 성과관리 요소를 결합한 혼합형 모델을 조심스럽게 상정해 본다. 그 이유는 공공기관형 법인은 정부가 재정 책임을 지면서도 법인격과 독립 이사회를 통해 인사와 프로그램 결정에서 정부나 관료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어, 정부 의존적인 재정 구조와 정치적 독립성 요구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
둘째, 법인화만으로는 기관장 임명의 정치화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만큼, 일본식으로 중기 경영목표와 외부 평가위원회를 법제화해 임명과 평가의 기준을 투명하게 고정한다면 정권 교체와 무관한 운영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독일식 상위 재단 통합형처럼 전체 국립기관을 하나의 재단으로 묶는 방식은 정책의 일관성 면에서는 매력적이나, 공연·미술·박물관·도서관 등 성격이 이질적인 다수의 기관을 이미 거느린 한국의 현실에서는 관리 조직의 비대화와 경직화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개별 기관을 우선 법인화하되, 필요에 따라 시각예술, 공연예술 등 부문별로 소규모 협의체를 두는 수준에서 조율하는 것도 합리적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론에 이견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한국의 관료 통제 관행이 뿌리 깊은 만큼 법인화라는 형식만으로는 실질적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절충을 한다면 영국식 이사회 모델을 도입하되 이사 추천 과정에 예술계와 시민사회의 실질적 참여를 법제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더 근본적인 해법도 일리 있는 방법이다. 반대로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이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처럼 이미 일정한 관람객을 확보하고 자체 수익 기반을 갖춘 기관에 한 해 네덜란드식 재단화를 단계적으로 시도해 볼 필요도 있다. 이런 의견은 단일한 정답을 요구하기보다, 기관별 재정 자립도와 정치적 민감성의 차이를 반영한 차등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하지만 국립문화예술기관의 지배구조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한국의 국립문화예술기관들이 통일된 지배구조를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가 문화정책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입을 열 때마다 김구의 ‘나의 소원’에 나오는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구절을 즐겨 입에 올린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소양, 그리고 실천 의지는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
그들의 말이 상당 부분 허언처럼 들리는 것은 바로 국립문화예술기관의 지배구조조차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경기 호황으로 세수가 넘쳐나 그 쓰임과 배분을 고민하는 정부가, 유독 문화예술 부문에는 인색하고 인력 양성에는 주저하는지, 문화복지는 왜 개인에게 미루는지 쉽게 이해가 안 간다. 물론 정부는 복지·안보 등의 우선하는 예산 순위와, 문화예술 투자의 성과를 계량하기 어려운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충이 지배구조 개편조차 미루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명확한 지배구조 체계야말로 예산의 효율적 집행과 성과관리를 가능케 하는 전제 조건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소극적 태도는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 처사에 가깝다.
결국 국립문화예술기관의 지배구조 개편은 한국을 문화국가로 “그저 훌륭함으로써 다른 문명으로부터 강요 없이 무의식적으로 끌어내는 감탄 또는 존경심”을 끌어내는 일로 어느 한 나라의 모델을 그대로 옮겨 온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행정 전통과 재정 현실, 그리고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절실한 요구를 함께 담아낼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프랑스의 공공기관형 법인 또는 영국의 비부처공공기관형 신탁이사회를 골격으로 성과관리 체계로 투명성을 더하며, 기관의 성격에 따라 자율성의 정도를 달리하는 정교한 접근이야말로 지금 한국 문화예술 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그간 국립문화예술기관의 거버넌스를 80여 년간 땜질식으로 이끌고 온 책임을 통감한다면 이제라도 통일된 지배구조를 갖추어, 지금 당장 세계에서 대중문화로 소비되는 K-컬처에 취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겠다는 공직에 나설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매력있는' 국가 대한민국의 모습을 갖추는 국립문화예술기관 지배구조의 ‘혁신’을 통해 ‘대체 불가한 문화국가 대한민국’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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