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라는 말이 결국 북한 비핵화를 뜻하느냐는 물음에 외교부가 25일 그렇다고 답했다. 전날 한미 외교장관 통화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핵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상황에 대한 설명이었다.
정부 안팎에서 이 단어의 행방을 따지는 분위기는 이달 들어 부쩍 짙어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2019년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을 때의 사진을 SNS에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사이가 좋다고 말하면서 한미 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이 방침을 미리 듣지 못했다고 했다.
닷새 뒤 서울을 찾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남북을 평화롭게 공존하는 두 개의 국가라고 불렀다. 북한이 2023년 말 남한을 별개의 적대적 국가로 못 박고 통일을 목표에서 지운 터라 이 표현에 대한 해석이 엇갈렸다.외교부는 왕 부장의 표현을 두고 별도로 설명하지 않겠다며 중국 측이 이 말을 어떻게 쓰는지 계속 보고 있다고만 했다. 정정을 요구했는지는 답하지 않았다.
중국이 비핵화를 입에 올리지 않은 사례는 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14일과 15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뒤 백악관은 이틀 만에 팩트시트를 내고 두 정상이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공유된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적었다.
같은 회담을 놓고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다음 날 비핵화라는 말 없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정책은 연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고만 했다. 중국은 최근 몇 년 사이 여러 문서에서 이 표현을 덜어냈고 가장 최근 군비통제 백서에서도 뺐다.
외교부는 오히려 이 미중 정상회담을 근거로 삼았다. 그 자리에서 북한 비핵화가 공동 목표로 확인된 만큼 목표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중국과 소통을 강화하며 건설적 역할을 계속 견인해 나가고 있다고도 했다.
외교부 자료에는 조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굳건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히 소통하고 공조하기로 했다고 적혀 있었다. 비핵화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미 국무부가 낸 자료는 토미 피곳 대변인 명의의 두 문장으로, 루비오 장관이 한미동맹 관련 현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외교부는 통화에서 비핵화가 실제로 논의됐다고 확인했다. 근거로는 지난해 10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경주 회담 뒤 11월 14일 공개된 공동 설명자료를 들었다. 이 문서에는 양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안정 의지를 재확인하고 2018년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 이행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명시돼 있다.
박두순 외교부 대변인은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 협력을 넓히고 중국이 비핵화라는 말을 접었으며 미국마저 표현을 누그러뜨리는 마당에 실용외교가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박 대변인은 "그 판단에 전 동의하지 않는다"며 세 나라 모두와 각급에서 소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미 양국의 조치에 북한이 호응해 북미 대화가 재개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지켜보는 쪽이 아니라 피스메이커이자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라는 것이 외교부의 설명이다.
두 장관의 통화는 24일 밤늦게 이뤄졌다. 다섯 달 만이다. 국무부 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하고 있는 루비오 장관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 정세와 역내 평화·안정 회복을 위한 미국의 노력을 설명했고, 조 장관은 이란이 사실상 막아 놓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회복에 한국이 실질적으로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관세와 투자 합의, 조선·안보 협력에서도 호혜적 성과를 내자는 데 뜻을 모았다.
어느 쪽이 먼저 통화를 제안했는지 외교부는 밝히지 않았다. 상호 간에 통화를 희망했다는 것이 답의 전부였다. 미국 측 자료가 짧은 데 대해서도 언급이 적절치 않다며 그 자체로 미국 측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봐 달라고 했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숫자를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말한 내용도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 가능성은 11월에 쏠려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11월 18일과 19일 중국 선전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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