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이 대한민국법에 따라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가 국회의 '진정입법부작위'를 위헌으로 확인한 것은 설립 이후 2번째이자 약 30년 만이다.
헌재는 27일 베트남 국적 A씨와 자녀 B군이 낸 헌법소원심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외국인의 대한민국법에 따른 출생등록에 관해 규정하지 않은 입법부작위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국적이나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국내 출생 외국인 아동에게도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제도를 마련해야 할 국가의 입법 의무도 인정했다.
A씨는 비전문취업(E-9) 체류 자격으로 2008년 입국한 뒤 체류 기간을 넘겨 미등록 상태가 됐다. A씨 부부는 2019년 4월 국내에서 B군을 낳았지만, 대한민국법에 따른 출생등록을 하지 못했다. B군은 이듬해 3월 베트남법에 따라 출생등록됐다. 이들은 관련 제도가 없어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2022년 2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아동이 보호받을 수 있는 최대한 빠른 시점에 국가가 출생 관련 기본정보를 관리하도록 등록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했다. 헌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아동의 인격 발현과 건강한 성장·발달을 위한 독자적 기본권이라는 판단이다.
헌재는 "국적을 떠나 모든 아동은 그 자체로 소중한 생명이자 독자적인 인격체"라며 "출생지 관할 국가가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고 밝혔다. 출생등록에서 배제된 아동은 서류상 존재를 확인할 수 없어 학대·유기나 다른 범죄의 표적이 될 위험이 크다고도 지적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부에는 대한민국 국민만 신분등록을 할 수 있다. 외국인등록 역시 본국 출생등록과 국적 확인이 먼저 이뤄져야 해 출생 직후 등록이 어렵다. 부모가 미등록 상태이거나 본국법에 따른 신분등록이 어려운 아동은 외국인등록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헌재는 보편적 출생등록제가 외국인 아동에게 대한민국 국적이나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출생등록을 막거나 등록 절차가 출입국관리법 위반 단속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장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만 헌재는 A씨가 자신의 기본권 침해를 구체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며 A씨의 청구를 각하했다.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조항에 관한 부자 측 청구도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이나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이번 결정은 헌재가 1994년 사설 철도회사 재산 수용 보상에 관한 입법 공백을 위헌으로 판단한 후 국회의 진정입법부작위를 위헌으로 확인한 2번째 사례다. 헌재는 2023년 인정한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가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에게도 동일하게 보장된다는 점을 이번 결정에서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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