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오른 성당에서 한 커플이 예정대로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2일 AFP와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레이안 리에자 갈랑과 길버트 치코는 전날(1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 북쪽 불라칸주 하고노이의 세인트 존 더 뱁티스트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성당 내부는 계속된 폭우로 불어난 흙탕물이 허리 가까이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성당 측은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이 계속 불어나자 두 사람에게 결혼식을 미루거나 일정을 변경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대로 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성당은 결혼식 당시 이미 약 한 달간 일부가 물에 잠겨 있었다.
두 사람이 일정을 고수한 데에는 사정이 있었다. 중동에서 리거(rigger)로 일하는 치코는 당초 오는 12월 결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취미로 농구를 하다 발목을 다쳐 예상보다 일찍 필리핀으로 돌아왔고, 다시 해외 근무지로 복귀하기 전 휴가 기간을 이용해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다.
공개된 사진과 영상에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갈랑이 탁한 물을 헤치며 성당 안을 걷는 모습이 담겼다. 결혼반지를 든 어린이 역시 허리까지 차오른 물속을 지나 버진로드를 걸었다. 참석자는 15명 미만이었다.
신부는 침수된 성당 안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웨딩드레스의 트레인 부분을 짧게 수선했다. 전기가 끊겨 기존 음향시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성당 측은 휴대용 스피커를 마련했다. 물에 잠긴 성당 좌석에는 꽃 장식도 그대로 설치됐다.
두 사람은 차체가 높은 삼륜차를 타고 성당에 도착했다. 치코는 AFP에 결혼 예복과 드레스가 물에 젖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날 두 사람은 간소화한 오전 예식을 통해 정식으로 부부가 됐다.
결혼식 사진은 성당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빠르게 퍼졌다. 축하가 이어진 한편, 일부에서는 홍수에 직접 들어간 데 따른 건강 위험을 우려하는 반응도 나왔다. 실제 필리핀에서는 최근 집중호우와 홍수가 이어지면서 렙토스피라증 감염 우려가 커진 상태다. 필리핀 보건부에 따르면 올해 필리핀에서 보고된 렙토스피라증 환자는 5835명에 달한다.
지난달 필리핀 북부 지역에는 평년보다 강한 계절성 몬순 비가 이어졌다. 필리핀 당국 집계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산사태와 홍수 등으로 34명이 숨졌다. 하고노이 역시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이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최근까지 침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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