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24년 만에 다시 근무체계 개편의 시험대에 올랐다. 금융노조가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 도입을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하면서다. 디지털 전환으로 일하는 방식이 달라진 만큼 근로시간도 줄여야 한다는 노조와 생산성·비용 부담을 먼저 따져야 한다는 사측의 입장이 맞서면서 향후 제도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 4.5일제 도입을 산별중앙교섭의 핵심 의제로 내걸었다. 노조는 현행 주 40시간인 근로시간을 주 35시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권이 근로시간 단축 논의를 주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주 5일제 역시 금융권이 다른 산업에 앞서 도입한 뒤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노조는 이번에도 금융권이 선제적으로 주 4.5일제를 도입해 제도 확산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제도가 먼저 자리 잡으면 다른 산업으로도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근로시간 단축에 힘을 싣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시작한 '워라밸+4.5 프로젝트'에는 6월 말 기준 224개 사업장이 참여해 연간 목표인 220곳을 조기에 넘어섰다.
반면 사측은 주 4.5일제가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인력 운용과 인건비 부담, 영업점 운영 방식까지 함께 바꿔야 하는 사안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은행권은 최근 몇 년간 점포 축소와 디지털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어 근무시간까지 줄어들 경우 생산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가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와 지난해 9월 발표한 '임금과 노동생산성 추이, 그리고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생산성(취업자 1인당 국내총생산)은 6만5000달러로 조사됐다.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2위로, OECD 평균(9만7000달러)의 67% 수준이다. 특히 2018~2023년에는 임금이 연 4.0%씩 오르는 동안 생산성은 1.7% 상승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대 은행 직원의 1인당 평균 보수는 1억2275만원으로, 전년(1억1800만원) 대비 약 4% 증가했다.
고객 불편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오프라인 영업점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영업시간까지 단축될 경우 비대면 금융 이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나 대면 금융 수요가 많은 고객의 접근성이 더 떨어질 수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전국 영업점은 2020년 말 4424개에서 2025년 말 3748개로 5년 새 15.3% 감소했다.
카드·보험·증권 등 다른 금융업권과의 형평성도 변수다. 은행권과 2금융권의 상위 노동조합이 달라 같은 그룹 내에서도 은행이 4.5일제를 시행하는 동안 카드·보험사는 기존대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근로시간을 줄이고도 생산성과 고객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주 4.5일제 논의의 핵심"이라며 "시차 출퇴근제나 교대근무, 본점과 영업점별 차등 적용 등 여러 대안을 놓고 충분한 노사 합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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