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반도체 장비 전략물자 통제…장비사들, 납기 지연에 행정 부담 '이중고' 토로

  • 미국 BIS 허가 받아도 국내 수출 허가 별도

  • 전체 거래량 아닌 용도·성능 기준 규제…대중국 수출길 '걱정'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사진=삼성전자]

정부가 첨단 반도체 장비를 전략물자로 대거 지정해 수출 통제를 강화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장비 기업들의 혼선은 오히려 가중되는 모양새다. 해외 현지 반도체 공장에 공급될 직수출 물량이 통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진 데다, 미국 규제와의 기준 불일치로 이중 허가 부담과 대중국 매출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고객사로 복수의 장비 협력사들이 최근 모호한 전략물자 판정 기준과 까다로워진 수출 절차 탓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반도체 기기 업체 관계자는 "한·미 간 통제 사양이 식각 속도나 막질 두께 같은 세부 스펙에서 차이로 대상 여부를 판단하는 전문 판정에만 최소 보름이 걸린다"며 "수일이면 나오던 수출 허가가 관계기관 심사까지 겹치면서 두 달 넘게 지연돼 해외 법인 납기를 맞추기도 빠듯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 역시 "미국 산업보안국(BIS) 허가를 받아도 국내 기준에 맞춘 설명서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해 행정 부담이 두 배로 늘었다"며 "규제를 피하려 부품을 교체하는 우회 설계를 하다 보니 개발 원가가 기존 대비 10~20%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1일 노광·식각·증착장비 등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와 고성능 인공지능(AI) 집적회로를 전략물자로 추가 지정한 개정 고시를 시행했다. 바세나르체제 등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의 합의사항을 반영해 첨단 기술의 무기화 및 유출을 막고 미국·유럽연합(EU) 등 우방국과의 글로벌 통제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업계에서는 당초 국내 장비 업체들의 내수 매출 비중이 높아 전략물자 지정에 따른 파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전략물자 지정은 전체 거래량이 아닌 제품의 '용도·성능'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만큼, 단 한 대의 장비를 수출하더라도 규제 사양에 해당하면 예외 없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해외 생산기지 투자 확장에 따라 국내 장비사의 수출 물량도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이나 중국 공장 내 기기를 납품할 때 회계상 및 관세·무역법 상 내수가 아닌 '해외 수출'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기술적 범주 측면에서도 영향권이 넓어졌다. 산업부가 규제 품목으로 노광·식각·증착 장비 전반을 포괄하면서다. 반도체 업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국내 장비사는 패키징 같은 후공정에만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공정 중 증착 분야는 국산화율이 상당히 높은 영역"이라며 "이번 지정으로 국내 전공정 장비사들의 사업 차질이 불가피해졌다"고 밝혔다. 
 
업체들은 미국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과 국내 고시가 중복 적용되는 행정 부담을 토로한다. 한국이 미국 FDPR 비면제국이라 미국산 기술·소프트웨어가 들어간 장비를 수출할 때 미국 상무부(BIS) 허가를 받아온 상황에서 정부 허가 절차까지 더해졌다.
 
대중 수출 위축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반도체 장비 수출액 중 대중국 비중은 30%대로 중국 의존도가 높다. 대중국 수출길이 막힐 경우 주요 장비사들의 전체 매출이 최대 3분의 1 가량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제도 안착을 위해 현장 맞춤형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첨단 반도체 장비는 국가 경제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국제 공조 차원의 수출통제 참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기업들이 규제 과정에서 과도한 행정 차질을 겪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명확한 세부 가이드라인 제시와 지원 체계 보완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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