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원의 글로벌 렌즈] '미국의 오랜 동맹' 사우디가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AFP연합뉴스]



최근 중동에서 묘한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의 오랜 중동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후티 반군과의 무력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이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장면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사우디가 먼저 찾은 곳은 미국이었다. 사우디는 미국에게 후티 반군에 대한 공격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절했다. 오히려 미국은 후티 반군 대표단과 비밀리에 만남을 가진 가운데 사우디 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고, 대신 후티 반군은 미국과 이스라엘 선박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동안 사우디가 미국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상당 규모의 미국 무기를 구매했음에도 '사우디 패싱'을 당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우디는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중국은 이란에 후티를 자제시키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안 한 혹은 못한 일을 중국이 해낸 것이다. 중국은 2023년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중재하며 중동 내 존재감을 드러냈고, 이번에도 이란과의 밀접한 관계를 바탕으로 중동 외교 무대에서 약화된 미국의 빈틈을 공략하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과 사우디와의 협력 관계는 군사적 측면까지 확대되고 있다. 사우디는 이전부터 중국산 자주포와 무장 드론 및 미사일 등을 도입해 온 가운데, 최근 예멘에서 중국산 DF-15A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잔해가 발견되면서 사우디가 중국산 미사일을 전투에 사용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이에 미국에서는 사우디에 F-35 전투기를 판매하는 것과 관련해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가능성을 우려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우디가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사우디의 주요 안보 파트너이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다. 하지만 큰 문제는 미국의 동맹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미국이 과거처럼 나서줄 것이라는 기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리더십이라는 것은 단순히 전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동맹 및 세계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안보를 맡길 수 있다는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은 '공공의 적' 나치 독일 및 일제에 대항해 맞서 싸우며 승리를 거뒀고, 이후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명실상부한 글로벌 리더 국가로 발돋움하며 '세계의 경찰'로 불렸다. 하지만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우방국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글로벌 리더 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이른바 적대국들에게는 쩔쩔매고 있는 반면 한국, 일본, 캐나다, 유럽 등 전통적 동맹·우방을 상대로는 관세와 각종 위협을 남발하는 모습은 차라리 '골목대장'에 가깝다.

반면 중국의 움직임은 과거와 다소 다르다. '전랑외교'로 일컬어지는 공격적 외교 행보의 모습도 남아있지만, 중동 등 국제 외교 무대에서 중재자로서의 모습을 각인시키려는 행보도 뚜렷하다.

이제 가을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국제 외교 무대의 시즌이 시작됐다. 이번 달 브릭스 정상회의와 유엔총회를 시작으로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12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주요 국제 외교 행사가 줄지어 있다. 특히 미중 양국은 다음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를 포함해 3달 동안 3차례 가량 잇따라 정상회담을 가질 전망이다.

올해 주요 외교 안건은 단연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중동 사태이다. 지난 2월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은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끝나지 않았고, 지금은 예멘 후티 반군과 사우디 간 전쟁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전쟁발 국제유가 및 해운 운임 급등으로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따라서 전쟁을 누가 어떻게 시작했든 간에 이제 조속히 이를 안정적으로 수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그리고 미국이든 중국이든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습하는 국가는 그만큼 전 세계로부터 신임을 받게 될 것이고,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중간선거 전후로 이란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장담해왔다. 실제로 3달간 이어질 국제 외교 무대를 통해 자신이 시작한 전쟁을 성공적으로 종식시키며 그동안 실추된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의 모습을 일부나마 되찾을지, 아니면 '경쟁자' 중국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계속 '골목대장'으로 전락할지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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