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과 이를 뒷받침할 기술의 융합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임상준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의 말이다. 환경정책은 오랫동안 오염이 생긴 뒤 측정하고 단속하고 복원하는 방식이었다.
AI는 이 순서를 바꾸고 있다. 오염이 생기기 전에 이상징후를 찾고, 사고를 예측하고, 시설을 최적으로 운영한다. 환경행정의 무게중심이 '사후 처리'에서 '사전 예방'으로 옮겨가고 있다.
환경문제는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 이미 상당 부분 진행돼 있다. 미세먼지가 심해진 뒤 원인을 찾고, 불법 투기된 폐기물을 뒤쫓고, 오염된 하천을 복원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기후위기는 더하다. 배출된 온실가스와 훼손된 생태계를 되돌리는 일은 처음부터 막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환경 분야의 가장 좋은 기술은 잘 치우는 기술이 아니라 미리 막는 기술이다. AI가 중요한 이유다.
한국환경공단이 내건 2026년 혁신 방향은 '환경에 AI를 더하는 혁신, 국민 신뢰를 만드는 K-eco'다. AI를 행정 편의 도구로 쓰는 데 그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업 기획과 운영, 데이터 활용, 조직의 일하는 방식까지 바꾸겠다는 것이다. 공단은 미래경영 3대 핵심축으로 ESG, 글로벌과 함께 AX(AI 전환)를 꼽았다.
환경 분야는 AI가 실력을 발휘하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 대기와 수질, 폐기물, 시설 운영에서 데이터가 끊임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일일이 들여다보기 어려운 방대한 데이터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골라내는 일은 AI의 장기다.
대표 사례가 폐기물 관리다. 폐기물은 배출과 운반, 처리 단계를 거친다. 이 흐름에서 정상 거래와 다른 움직임을 데이터로 잡아내면 불법투기나 장기 방치를 미리 막을 수 있다. 공단은 AI 기반 폐기물 이상거래 탐지모델을 구축해 2023년 정부혁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불법 폐기물이 쌓인 뒤 신고를 받고 출동하던 행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제는 거래와 이동 데이터에서 이상징후를 먼저 찾아 현장을 점검한다.
하수처리장도 거대한 데이터 공장이다. 유입 하수의 양과 수질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설비 상태와 전력 사용량도 계속 변한다. 지금까지는 운영자의 경험과 정해진 기준에 크게 의존했다. AI는 수질과 설비 운전,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함께 분석해 가장 효율적인 운영 조건을 찾는 데 쓰일 수 있다. 공단이 추진해 온 AI 기반 스마트 하수처리의 방향이다.
수질 변화를 예측하고 설비 운영을 지원하면 방류수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불필요한 전력 사용도 줄일 수 있다. 전국 하수처리시설이 당장 AI로 자동 운영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데이터로 시설 운영을 지능화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새로운 가능성도 보인다. 하수처리 과정에서 얻는 하수열을 냉각 수요가 막대한 AI 데이터센터와 연결하는 방안이다. 공단은 국제물주간에서 스마트 하수처리와 함께 이 가능성을 논의했다. AI 산업이 커질수록 전력과 물, 열 문제는 환경정책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개별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데이터다. 정확한 환경데이터가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AI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대기와 수질, 폐기물, 온실가스 분야에 쌓이는 공공데이터는 국가의 핵심 AI 자산이 될 수 있다. 공단이 플랫폼 통합과 환경데이터 민간 개방 확대를 추진하는 이유다. 데이터를 공단 안에 가두지 않고,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쓰도록 문을 넓히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모든 AI 서비스를 직접 만들 필요는 없다. 공공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고, 민간은 그 위에서 혁신하면 된다. 환경데이터가 충분히 개방되고 표준화되면 스타트업은 공장 에너지를 최적화하는 AI를 만들 수 있다. 기업은 탄소배출 관리 서비스를, 연구기관은 기후와 환경 변화를 분석하는 모델을 내놓을 수 있다. 공단의 데이터가 일종의 '환경 AI 인프라'가 되는 셈이다.
물론 AI를 많이 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AI가 잘못 판단하면, 학습데이터가 편향돼 있으면, 개인정보가 담긴 데이터를 학습하면 누가 책임지는가. 공단이 AI 활용 확대와 함께 '인공지능윤리 지침'을 마련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침은 AI의 설계부터 개발, 도입, 운영, 활용까지 전 과정에 인권과 개인정보 보호, 다양성, 안전성, 투명성, 공정성 원칙을 적용하도록 했다. AI를 활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라는 사실을 이용자에게 알리고, 생성형 AI로 만든 결과물에도 이를 표시하게 했다. AI 모델은 정기적으로 평가해 오류나 윤리 문제가 드러나면 개선하도록 했다.
이는 단순한 내부 규정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정책은 국민 생활과 기업 활동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AI가 오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는 이유로 기업을 점검하거나 행정 판단에 활용한다면, 그 과정과 근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AI가 판단을 도울 수는 있어도 책임까지 넘길 수는 없다.
그래서 환경 분야의 AI 전환은 두 갈래로 함께 가야 한다. 한쪽에서는 AI를 적극 활용해 오염을 더 빨리 찾고 시설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다른 쪽에서는 AI의 오류와 편향을 관리하고 사람이 최종 책임을 지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기술과 신뢰가 함께 가야 한다.
임 이사장이 AX와 ESG를 함께 미래경영의 축으로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는 환경문제를 푸는 도구이면서, 막대한 전력과 자원을 쓰는 기술이기도 하다. 앞으로 공단에는 AI 시대의 환경비용을 측정하는 역할이 중요해질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력과 물, 내뿜는 열과 탄소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과제다.
AI 산업의 급성장과 탄소중립을 어떻게 양립시킬지도 환경정책의 새 과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AI로 환경을 지키는 동시에, AI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관리해야 한다.
환경행정은 그동안 오염된 공기와 물, 버려진 폐기물을 뒤쫓는 일이 많았다. AI는 그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수많은 데이터 속 작은 이상징후에서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위험을 먼저 알려주기 때문이다. AI가 대한민국의 공기와 물, 폐기물과 환경시설을 24시간 지켜보고, 사람은 그 신호를 바탕으로 더 빨리 판단하는 나라.
한국환경공단의 AI 대전환은 대한민국 환경행정을 '사후 처리'에서 '예측과 예방'으로 바꾸는 일이어야 한다.
환경부 차관과 대통령실 국정과제비서관을 지낸 환경정책 전문가로, 기후·환경정책과 정부 혁신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으로서 ESG·AX·글로벌을 미래경영의 핵심축으로 제시하고, AI와 환경데이터를 활용한 공공서비스 혁신과 기후위기 대응, 조직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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