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호의 일.고.감] "조선인과 노는 게 뭐가 나쁘냐"…차별받는 사람들 찍은 '과작의 거장' 우라야마 기리오

  • 지쿠호 탄광·오키나와전까지 담아…23년간 아홉 편 중 다섯 편 키네마 준보 베스트텐

  • 데뷔작 <큐폴라가 있는 거리>서 북송사업 담아…국내선 2024년 故서경식 추천작으로 상영

영화감독 우라야마 기리오사진시네누보
영화감독 우라야마 기리오[사진=시네누보]

일본에서 과작의 거장으로 꼽히는 영화감독 우라야마 기리오(浦山桐郎, 1930~1985)는 1962년 데뷔해 스물세 해 동안 아홉 편의 영화를 남기고 쉰넷에 숨졌다. 그는 재일조선인과 탄광 노동자, 오키나와 출신자처럼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거나 밀려난 사람들을 주로 찍었으며 그중 다섯 편은 키네마 준보 베스트텐에도 올랐다.

1930년 12월 14일 효고현 아이오이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열사흘 만에 어머니를 잃었다. 조선소에 다니던 아버지 우라야마 미쓰구는 일본 전통 정형시인 단가를 짓는 사람이었는데, 아이오이시를 상징하는 노래의 노랫말도 그가 썼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아버지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어머니의 고향인 나고야로 옮겨 갔고, 그곳에서 나고야대 문학부 불문과를 나왔다. 훗날 그는 고향의 아이오이만을 두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영화계에 입문하는 과정에는 여러 우연의 교차가 있었다. 쇼치쿠 조감독 공채에 응모해 필기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도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는데, 같은 시험에서 교토대 법학부를 나온 오시마 나기사는 합격했고 도쿄대 법학부를 나온 야마다 요지는 떨어졌다. 당시 오시마는 아사히신문사와 아사히글라스 입사시험에 떨어진 뒤였고, 특별히 영화를 좋아하던 청년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후 시험관이었던 스즈키 세이준의 권유로 이번에는 닛카츠 입사시험을 봤지만, 야마다는 붙고 우라야마는 떨어졌다. 그런데 야마다가 쇼치쿠에 추가로 합격해 빠지면서 우라야마는 1954년 닛카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전후 일본 영화를 이끈 감독들의 진로가 같은 시기 한꺼번에 엇갈린 셈이다.

닛카츠에서는 가와시마 유조와 이마무라 쇼헤이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가와시마 현장에서는 수석 조감독이 이마무라, 차석이 우라야마였다. 1956년에는 자신에게 닛카츠를 권한 스즈키 세이준의 감독 데뷔작 <항구의 건배 – 승리를 내 손에>를 나카가와 노리오와 공동으로 각본을 쓰기도 했다.

우라야마의 감독 데뷔작은 1962년 <큐폴라가 있는 거리>다. 하야후네 치요가 1959년부터 이듬해까지 잡지 <어머니와 아이>에 연재한 동명의 아동문학이 원작으로 이마무라 쇼헤이와 함께 각본을 썼다. 큐폴라는 주철을 녹이는 용해로를 가리키는 말로,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의 주물공장 거리가 배경이다. 

영화는 주물공인 아버지가 부상과 공장 인수,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으면서 고등학교 진학이 불투명해진 소녀 준(요시나가 사유리)과, 북한으로 떠나는 재일조선인 남매의 이야기를 나란히 끌고 간다. 이 작품으로 우라야마는 제13회 블루리본 신인상과 일본영화감독협회 신인상을 받았고, 열일곱 살이던 요시나가 사유리는 같은 블루리본 주연여우상을 당시 최연소로 받았다. 작품 자체도 블루리본 작품상을 받았다. 키네마 준보 베스트텐에서는 2위, 잡지 <영화평론>이 뽑은 같은 해 베스트텐에서는 1위에 올랐다.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배우자 등 약 9만3000명이 북한으로 떠난 이른바 귀국사업(북송사업)은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이어졌다. 영화가 나온 1962년은 사업 시작 2년여 만에 7만 명 넘게 이미 떠난 뒤였다. 부모가 "조선인과 어울리지 마라"고 하자 준은 "조선인과 노는 게 뭐가 나쁘냐"고 되받는다. 남매는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함께 떠나지 않고 일본에 남는다. 떠나는 날 기차역에 모인 사람들이 인공기를 흔들며 조선어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담겨 있다. 

 
큐폴라가 있는 거리 촬영 현장의 단체 사진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큐폴라가 있는 거리> 촬영 현장의 단체 사진[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재일조선인의 삶을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다. 1959년 이마무라 쇼헤이는 <니안짱>에서 사가현 탄광촌의 재일조선인 사남매를 그렸고, 1968년 오시마 나기사는 <교사형>에서 재일조선인 사형수를 다뤘다. <큐폴라가 있는 거리>는 여기에 당시 뜨거운 화제였던 귀국사업을 이야기의 한 축으로 끌어들였다. 훗날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처지가 알려지면서 귀국을 기뻐할 일처럼 그렸다는 비판이 따라붙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비행소녀>(1963)로 제3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금상을 받았다. 같은 해 대상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2분의 1>에 돌아갔다. 이즈미 마사코가 주연한 이 작품은 모리야마 게이의 소설 <사부로와 와카에>가 원작이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지만 번번이 가로막혀 수렁에 빠져드는 열다섯 살 소녀 와카에를 그렸다. 배경은 1950년대 초 미군 시험사격장 설치를 놓고 큰 반대운동이 벌어졌던 이시카와현 우치나다다. 전학련이 가세한 시위 장면이 나오고, 회유에 마을이 갈라지는 가운데 끝까지 반대를 굽히지 않던 소녀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세 번째 작품이 나오기까지는 6년 반이 걸렸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을 옮긴 <내가 버린 여자>(1969)는 시골 처녀를 버리고 출세를 택한 남자의 말로를 좇은 이야기다. 우라야마는 원작과 달리 학생운동에 좌절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엔도도 의사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그러나 당시 닛카츠는 야쿠자 영화로 기울고 있었고, 이 작품은 완성하고도 한동안 개봉하지 못했다. 우라야마는 이 작품을 끝으로 닛카츠를 떠나 프리랜서가 됐다.

일이 끊긴 이 시기에 우라야마는 이마무라 쇼헤이를 따라 동남아시아로 가서 TV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이마무라가 도쿄12채널 <금요 스페셜>에 내보내려고 꾸린 기획이었다. 1971년 가을 싱가포르에 도착한 촬영팀은 두 조로 나뉘었다. 이마무라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돌아오지 못한 일본군 병사, 이른바 미귀환병을 쫓았고, 우라야마는 보르네오섬 쿠칭으로 가 다야크족을 다룬 두 편을 맡았다. 이 작업들은 이듬해 1월 전파를 탔다.

이후에도 그는 차별과 가난을 다룬 작업을 이어갔다. <청춘의 문>(1975)은 이쓰키 히로유키의 대하소설 제1부를 옮긴 영화로, 후쿠오카현 지쿠호 탄전이 무대다. 1918년 쌀값 폭등에 항의한 쌀소동이 지쿠호까지 번지자, 광부 이부키 주조는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군대에 맞서 광부들의 신망을 얻는다. 영화는 그의 아들 신스케(다나카 겐)가 자라는 과정을 따라간다. 신스케의 소꿉친구 오리에 역은 이 작품으로 데뷔한 오타케 시노부가 맡았다. 2년 뒤에는 속편 <청춘의 문·자립편>(1977)이 나왔다. 흥행에 성공했지만 배역과 묘사를 두고 원작자와 우라야마가 충돌했고, 제3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린이를 위한 작업도 했다. 1979년 도에이동화가 만든 애니메이션 <용의 아이 타로>다. 원작은 마쓰타니 미요코가 1960년 펴낸 동화로, 이 책은 1962년 국제안데르센상 우량상을 받았다. 영화는 용으로 변해 버린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나는 소년의 모험을 따라가며, 용의 목소리는 요시나가 사유리가 맡았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소설을 옮긴 <태양의 아이 테다노후아>(1980)는 1970년대 중반 고베가 무대다. 오키나와 출신 부모를 둔 소녀는 오키나와전의 후유증으로 신경증 발작을 앓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오키나와전의 상처와 본토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이 겪는 차별을 알아 간다.

이후 1983년에는 처음 몸담았던 닛카츠로 돌아가, 창립 70주년 기념작으로 요시유키 준노스케의 소설을 옮긴 로망포르노 <암실>을 만들었다.

마지막 작품은 1985년 6월 개봉한 <유메치요 일기>다. 하야사카 아키라가 각본을 쓰고 요시나가 사유리가 주연했다. 어머니 배 속에서 히로시마 원폭에 피폭돼 남은 수명이 반년이라는 선고를 받고도 살고 싶어 하는 여자의 사랑을 그렸다. 개봉 넉 달 남짓 뒤인 10월 20일, 우라야마는 급성심부전으로 숨졌다. 평소 영화 열두 편을 찍겠다고 말했지만 끝내 아홉 편에서 멈췄다. 장례위원장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맡았다. 우라야마의 삶은 평론가 다야마 리키야의 <소설 우라야마 기리오-여름풀의 길>(1993)과, 다큐멘터리 감독 하라 가즈오가 엮은 <영화에 홀려서 우라야마 기리오>(1998)에 정리돼 있다.

2015년에는 탄생 85년과 몰후 30년에 맞춰 오사카 시네누보가 '영화감독 우라야마 기리오의 전모'라는 제목으로 전작을 모아 상영했다. 국내에서는 2024년 5월 제12회 디아스포라영화제가 <큐폴라가 있는 거리>를 상영했다. 2023년 12월 세상을 떠난 재일조선인 학자이자 영화제 자문위원 서경식을 기리는 '이산자의 초상-서경식이 사랑한 영화들' 부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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